성남 판교서 열려, 주최측 드레스코드는 '러블리'...영하 날씨에 안입던 블라우스 꺼내입고 갔는데
[아시아경제 부애리 기자]'한 살이라도 젊을 때 눈부시게 사랑하라' 혹자는 말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실업난, 경제불황은 젊은이들에게 연애마저 사치로 만들었다. '7포세대로 불리는 2030세대는 포기해야 할 것도 참 많다. 그 중 하나가 연애다. 이 때문에 청춘들은 연애에 있어서도 '효율성'을 중시하기 시작했다. 소개팅도 점심시간을 쪼개서 하는가 하면, 또 친구에게 아쉬운 부탁을 하기보다 소개팅 어플로 간단하게 이성 상대를 찾는다.최근 인기가 높아진 '직장인 단체미팅 솔로대첩'도 같은 맥락이다. 3시간이라는 시간을 정해두고, 번갈아가며 여러 상대를 만나는 대규모 미팅이다. 남녀 300명 모집이 10일 만에 완료됐다. 지난 신촌 솔로대첩은 하루 만에 1000명이 꽉 찼고, 200명 추가 모집도 한 시간 만에 매진될 만큼 인기였다고 한다. 소개팅을 하자니 시간이 없고, 연말이 다가오자 괜스레 마음이 싱숭생숭해진 미혼 여기자가 직접 솔로대첩에 참여해봤다. 이날 주최 측에서 정해준 드레스코드는 '러블리' 영하의 날씨에 안입던 블라우스까지 꺼내 입었다.
지난 10일 오후 2시 경기도 성남시 판교 아브뉴프랑 1층 광장에는 추운 날씨에도 긴 줄이 이어져 있었다. 차례가 되자 신분증 확인과 함께 형광 파란색 팔찌를 채워줬다. 미팅 참가자임을 알리는 일종의 표식이었다. 페스티벌이나 클럽에선 자연스럽던 팔찌가 왠지 솔로대첩에서 차고 있으려니 애인을 찾겠다는 목표의식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기분이 들어 괜히 민망했다.단체미팅은 주최 측에서 지정해놓은 맛집 5군데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식사를 하고, 이성을 만나는 방식이었다. 부지런히 움직이면 한 테이블당 2명 총 10명의 상대를 만날 수 있었다. 이 단체미팅에선 반드시 미리 동성의 파트너와 짝을 지어 2명씩 움직여야했다. 혼자 참가하면 주최 측에서 미리 같이 다닐 짝을 정해준다. 주최 측 스태프로부터 "남녀 비율을 맞춰야하니 첫 번째로 5번 식당을 방문해 주세요"라는 말을 듣고 쌀국수 집인 5번 식당을 찾았다. 창문 너머로 식당 안을 슬쩍 보니, 남성들이 2명씩 짝지어서 여러 테이블에서 여성을 대기 중인 모습이 보였다. 들어가기도 전에 어색함이 등 뒤에서 밀려왔다.
비어있는 기자의 앞 자리. 주변은 다 화기애애 대화 중인 모습. 종종 이렇게 상대를 기다려야 하는 텀이 생긴다.
밖에서 서성거리다가 그만 타이밍을 놓쳤다. 식당에 들어가니 이미 다들 짝을 이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기자를 제외한 모두가 즐거워보였다. 잠시 상대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했다. 괜히 멀쩡한 숟가락 젓가락 셋팅을 다시해가며 뻘줌함을 달래고 있는 찰나 상대가 도착했다. 쌀국수와 함께 대화가 시작됐다.이번이 벌써 세 번째 참가라는 이모(30·남)씨는 "여자친구 만들기에 성공하지 못해도 그냥 여러 사람들이랑 대화할 수 있어서 놀러오는 기분으로 온다"라고 말했다. 곧이어 음식이 나왔다. 메뉴는 정해져있었다. 결정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좋지만, 뭘 좋아하냐고 물어볼 그나마의 대화기회가 사라져버렸다.김모(30·남)씨는 "내성적인 성격이라 1:1 소개팅은 부담스럽다. 직장인이다보니 미팅할 기회도 마땅치 않은데, 2:2로 짝지어 만난다는 점이 좋은 것 같다. 옆에 분은 원래 아는 사이가 아니라 오늘 여기서 만난 동성파트너다"라며 수줍어했다.
20~30분쯤 대화를 했을까. 식사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자리는 파하는 분위기였다. 오래 머무르는 테이블도 간혹 눈에 띄었지만 대부분 1시간은 넘기지 않았다.회사 동료들과 단체로 참가했다는 서모(32·남)씨는 "지인에게 추천받아서 왔는데, 솔로대첩이나 대규모 미팅엔 대체 어떤 사람이 참가하나 궁금해서 왔다. 사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괜찮은 사람이 많아서 놀랐다"고 전했다. 같이 온 최모(25·남)씨는 "처음엔 선배 때문에 끌려오다시피 했는데 와보니 즐겁다"라며 "이전의 식당에서 맥주를 마시느라 1시간 넘게 있었더니 눈치가 보였다. 대화하기에 좀 시간이 짧은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기회는 스스로 만드는 자의 것. 맛집을 이동하는 중간 중간에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2시간쯤 지났을 무렵, 대기인원도 발생했다. 식당 앞에서 기다리는 순간에도 서로를 흘깃거리는 눈짓은 계속됐다. 세 번째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을 무렵 "행사 종료 1시간 전입니다"라는 문자가 왔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는 법. 그렇게 누군가에게는 짧고, 누군가에게는 길었던 솔로대첩이 끝났다. 이날 기자는 2명의 남성과 연락처를 교환했으나 그 후 아무런 진전은 없었다…행사를 주관한 손승우 새미프(새마을 미팅 프로젝트) 대표는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이후에 연락이 이어지면서 결혼까지 이어진 커플도 있다. 최근엔 상견례를 한다고 고맙다고 연락이 온 경우도 있었다"라고 말했다.이어 그는 "일본에서는 이미 대규모 거리미팅(마치콘)이 익숙한 개념이다. 2004년부터 일본에서 전국적인 열풍인 마치콘은 이미 14000회 진행됐고 1년에 200만명이 참여할 정도다. 이 과정에서 20개 회사가 생겨났다"며 "저출산과 일자리 창출을 정책적으로 해결하는 것도 맞지만, 직장인 남녀가 바쁘고 시간도 없는 점을 고려한 단체미팅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사족-음식비를 지불하지 않는다는 점(미리 참가비를 내고 입장)에서 계산할 때 껄끄러운 상황은 면할 수 있다. 소개팅 시켜준 지인 때문에 원치 않는 애프터 등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다. 마음에 안드는 상대가 내 앞에 앉아있어도 밥만 먹고 쿨하게 헤어질 수 있다. 단, 망설이다가 상대의 연락처를 못 받으면 다시 만나기가 힘들다. 빠른 판단력이 생명. 짧은 시간관계상 동선을 미리 짜두는 세밀한 전략(?)도 필요해 보인다.부애리 기자 aeri345@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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