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사람의 길

 "본디 현생인류에게 다른 동물들의 삶과의 경계란 죽은 자에의 애도이고 죽은 자에 대한 경건한 예의를 다한다는 사실, 그래서 죽은 자를 방치하지 않고 매장했다는 사실에 있지 싶네." 고은 시인이 소설가 김형수씨와 나눈 대담집 '두 세기의 달빛'에 나오는 구절이다. 고은 시인은 공동묘지에 사로잡혀 전국의 묘지들을 찾아다닐 정도였는데, 제주 한라봉 공동묘지에서는 술에 취한 채 잠이 들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죽은 자에의 애통과 추도야말로 인간의 신성한 사명"이라고 말했다.  장례는 남은 가족들의 몫이다. "아내가 먼저 눈감을 때 남편의 아픔과 허망감 그리고 지아비가 죽었을 때 지어미의 그 절망과 비통이야말로 가족이 설정하는 조건이기까지 하지 않은가. 모자 사이에서도 어미 잃은 고아의 삶이나 아이 잃은 어미의 애 끓이는 아픔은 그 무엇에 견주겠는가." 한국 사회는 죽음의 그림자에 덮여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900일이 지났건만 아직 9명이 수습되지 못했고 '왜 그렇게 허망하게 사라져야 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 찾기는 바리케이드에 막혀 있다.  그리고 고 백남기씨가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지 317일 만에 숨을 거뒀다. 죽음 이후에도 '애통과 추도'가 있어야 할 자리를 사인(死因)과 부검 논란이 채우고 있다. 고인의 몸과 영혼은 여전히 안식을 얻지 못했다. 급기야는 극우성향 단체가 소극적 연명 치료만 했다면서 유족들을 살인 혐의로 고발할 것이라고 한다. '애 끓이는 아픔'에다 소금을 뿌리고 발로 밟는 격이다.  유족은 "저희들은 이미 충분히 아프고 슬프다. 부디 '사람의 길'을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불행이 닥쳤을 때 그 원인을 철저히 따져내 책임을 묻는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회복 쪽으로 방향을 잡아 조금씩이라도 나아갈 수 있다. 원인 규명과 책임을 회피하려는 이는 누구인가.  '비록 아무도 찾아오지 않으나 그대 자손은 차례차례로 오리라/(…)/그대들이 살았던 이 세상에는 그대들의 뼈가 가마귀 깃처럼 운다 하더라도/이 가을 진정한 슬픈 일은 아니리라/그대들은 이 세상을 마치고 작은 제일(祭日) 하나를 남겼을 뿐/옛날은 이 세상에 없고 그대들이 다만 옛날의 예감을 이루고 있다/(…)/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데 그대들은 이 무덤에 있을 뿐 그대 자손들은 곧 오리라'(고은 '묘지송(墓地頌)' 중에서)  고인의 묘지에 자손들이 차례차례로 오는 날이 속히 찾아오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뼈저린 말, 우리 사람은 못 되더라도 최소한 괴물은 되지 말자.  박철응 금융부 차장 hero@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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