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포럼]과학기술정책 경쟁력, 정부 일하는 시스템 혁신해야

이민형 박사

맹위를 떨치던 한여름의 무더위는 끝을 보이고 초가을 바람의 선선함에 새삼 계절의 빠른 변화를 실감하게 되는 요즘이다. 인터넷기술시대를 넘어 인간의 뇌를 능가하는 인공지능, 사람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무인자율자동차와 무인드론, IT에 기반한 개인 맞춤형 정밀의료 등 4차 산업혁명으로 일컬어지는, 놀라우면서도 다소 마음에 불편한 기술들도 계절의 변화만큼이나 성큼 다가오고 있다.  거대한 기술변화와 그에 따른 사회적 변화에 대응해 무엇을 준비하고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은 국가뿐만 아니라 모든 조직의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행위이다. 그러나 많은 나라와 기업이 유사한 정책과 전략으로 대응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는 판이하게 달랐다는 점을 지금까지 익히 봐온 터다. 그 까닭은 변화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역량 차이, 그리고 혁신을 설계하고 추진하는 역량의 질적 차이에서 비롯된다.  최근 필자가 둘러본 일본 과학기술정책시스템에서는 선진국의 과학기술정책의 경쟁력이 관료주의 폐해를 넘어서는 시스템의 질적 혁신에서 비롯됨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과학기술정책 경쟁력은 새로운 혁신을 향한 구조 및 제도의 변화뿐만 아니라 정책의 방향과 목표, 그리고 방법의 혁신을 통한 정책내용의 질적 혁신을 통해 결실을 맺을 수 있음을 확인시켜 준 것이다. 즉, 정책시스템을 구성하는 구조와 내용, 방법을 모두 포함한 종합적인 혁신이 이루어질 때 실질적인 정책경쟁력이 확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변화와 혁신을 위한 우리의 대응은 중복과 비효율을 개선하기 위한 거버넌스 구조 개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구조적 변화가 중심이 되다 보니 정책시스템의 질적 변화를 위한 노력과 시도는 찾아보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일본 사례에 비추어 우리나라 과학기술정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개선되어야 할 시스템 요소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대증적 단기 요법에서 벗어나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관리방식이 필요하다. 다양한 현장문제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누적된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임에도 여전히 단기적인 대증적 방안 중심으로 정책이 마련되고 있다. 과학기술분야의 기본계획에도 철학과 전략이 담겨야 하나 관련 부처들의 계획과 정책들을 종합적으로 수렴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어 일본에 비해 전략성이 명확하지 못하다.  둘째, 과학기술정책의 범위와 영역이 기술 중심의 편협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선진국들이 혁신을 강조하여 과학기술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에 비해 우리의 혁신정책은 과학기술정책 내부에 충분히 투영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혁신을 강조하는 '과학기술혁신회의'를 설치하여 기술혁신과 경제사회와의 구조적 연계혁신을 전략적으로 다루고 있다. 최상위 혁신정책을 이끄는 실질적인 정책리더가 과학기술과 경제, 사회의 포괄적 혁신을 다루는 경제학자라는 점도 새겨봐야 할 부분이다.  셋째, 부처이기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개혁적인 정책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 정책과제의 융합적 해결이 크게 요구되는 상황에서 부처별로 일부 소관영역을 중심으로 계획을 수립하고 제각기 정책을 추진하는 체계가 관행처럼 지속되고 있다. 최근 일본 정부는 문부과학성, 후생노동성, 경제산업성의 보건의료분야 사업을 통합관리하는 기구로서 의료연구개발기구(AMED)를 설치하였다. 부처이기주의를 넘어서는 개혁적 조치를 취한 것인데 여기에 정치권의 강력한 지지가 중요하게 작용했음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넷째, 정책결정과정에서 전문정보와 분석된 지식의 활용을 높이고 비전문가인 관료에 의한 세세한 개입을 줄여야 한다. 정부는 전략목표만을 제시하고 해당 목표 달성에 필요한 기술 발굴과 세부전략은 전문적인 정보 분석과 지식을 축적해온 산하기관이 담당하는 일본의 방식을 눈여겨 봐야 할 것이다. 관료와의 수직적 관계 속에서도 정보와 지식의 전문성은 물론 신뢰에 기반한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정책 경쟁력은 정책시스템의 총체적인 변화에서 비롯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행정구조 개편뿐만 아니라 일하는 방식도 전면적으로 개편되어야 한다. 변화와 불확실성 시대에 대응해 선도형 연구개발(R&D)이 필요하듯 정책과 관리도 단기성과 중심체계에서 벗어나 질적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를 지배해온 개발시대의 성공 방식이 변화와 융합의 시대에는 오히려 장애가 되는 것이다. 거대한 4차 산업혁명 변화와 혁신을 수용해야 할 과학기술혁신정책의 경쟁력 확보에는 무엇보다 정부의 일하는 시스템 혁신이 선결과제가 아닐까 한다. 이민형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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