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일 금융부장
1. 네번에서 한번으로 줄인다. 연봉 5억원 이상 상장법인 등기임원 보수를 공개하는 횟수다. 금융위원회는 매 분기 공개하던 것을 연 1회로 줄이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하지만 그 정도로 보도자료를 뿌릴 리 없다. 내부적으로 이미 '확정했다'고 보는 게 옳다. 금융당국은 재계의 주장을 근거로 들었다. ①불필요한 공시부담 ②투자자 혼란 ③상장 회피 ④해외보다 잦은 공시.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해서 그렇지 재계는 또 다른 속내가 있다. 고액 연봉에 대한 대중의 저항, 네티즌들의 거친 댓글을 피하고 싶은 것이다. 고액 연봉자 중에는 '샐러리맨 신화'가 더러 있다. 신종균 삼성전자 IT모바일(IM)부문 사장이 대표적이다. 학연, 지연, 혈연에 기대지 않고 오로지 실력과 근성으로 저 자리에 올라 애플과 당당히 겨루고 있다. 누군가는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와도 비교한다. 그런 그에게 연봉 62억원은 과한 것일까. 연봉이 공개되자 그를 향한 댓글은 신랄하고 사납고 모질었다. '장그래 궤적'도 정상참작이 되지 않았다. 연봉이 많을수록 불편한 대한민국이었다. 2. 올릴 때마다 불편한 것도 있다. 최저임금 시급이다. 오랜 진통 끝에 내년 최저임금 시급이 6030원으로 결정됐다. 올해보다 8.1%(450원) 올랐다. 월급으로 환산하면 126만270원(주 40시간 기준). 전체 근로자 18.2%에 해당하는 저소득 근로자 342만명이 혜택을 받는다. 언론은 '8년 만의 최고 인상 폭'에 방점을 찍었다. 재기발랄한 네티즌들은 냉소적으로 반응했다. '6030원 시급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삼각김밥(800원) 7.5개, 스타벅스 아이스 아메리카노(4100원) 1.5잔'. 그러니 저 342만명의 삶은 행복해질까. 저들의 지갑은 두툼해질까. 저들의 노동을 구매하는 사업자들도 반발한다. '건물 임대료에 카드 수수료까지 허리가 휘는데 450원이나 올리다니….' 3. 많이 받아서 죄인이 되기도 한다. 2006년 일이다. 한국은행의 경비원이 연봉 1억원을 받는다고 알려지면서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신의 직장'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난처해진 한국은행은 부랴부랴 경비 업무를 외부용역으로 돌렸다. 그 무렵 인터넷에 올라온 글이다. "연봉 1억원은 근무 경력 25년 이상은 돼야 가능하고 퇴직을 얼마 남기지 않는 분들이나 받는다.(…)평생 경비직을 업(業)으로 살아온 사람들이고 70~80년대 입사해 지금까지 일해온 몸값으로 치면…." 글을 쓴 사람은 한국은행의 비정규직 경비원이었다. 그의 연봉은 2500만~3000만원. 자신보다 3배 이상 더 버는 정규직 경비원들의 '합당한 노동의 대가'를 편들었다. 행간은 우리 사회의 편견을 따져 물었다. 대한민국에서는 경비원이 고액 연봉을 받으면 안 되냐고. 저 유명한 '1만시간의 법칙'(하루 6시간씩 5년)이 연봉으로 치환되기가 그리 어렵냐고. 1~3이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우리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노동의 대가는 과연 어느 정도인가. 불협화음 없이 다수가 수긍할 수 있는 대가는 얼마인가. 자유경제 사회에서 연봉은 능력의 바로미터다. '연봉과 성과는 비례한다'는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의 주장에 100% 동의하지 않더라도 연봉은 조직에 대한 충성심과 자부심에 대한 숫자다. 개개인의 수입은 또한 내수와 직결되는 것이어서 장하준 교수는 "내수가 걱정이라면 저소득층에 돈을 많이 주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엥겔지수가 높은 저소득층의 수입은 곧 지출로 이어진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렇다면 고액 연봉자는? 불로소득은 조롱받아도 싸다. 회사는 적자를 내는데도 나홀로 호의호식하는 몰염치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샐러리맨의 성공신화까지 손가락질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신분 상승 사다리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입신양명(立身揚名)의 길이 좁아진 마당에 샐러리맨의 성공신화는 그나마 '개천에서 용이 날 수도 있다'는 희망과 꿈을 남긴다. 덜 받는 사람이 충분히 더 받아야 하는 것처럼, 남들보다 더 받는 것이 비난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노동의 대가'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상향 평준화인가 하향 평준화인가. 답은 정해져 있다.이정일 금융부장 jayle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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