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뇌연구, 선진 연구자뿐 아니라 저변 확대에도 나서야
▲뇌 신경전달물질의 신호를 받아 인간은 갈 방향성을 정한다.[사진제공=KIST]
[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인간의 뇌(腦)는 우주를 닮았다. 벗기면 벗길수록 더 큰 비밀이 숨어 있는 곳이 뇌이다. 최근 인간의 뇌에 대한 연구가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가장 큰 목적은 뇌에 대한 정확한 정보 지도를 그리겠다는 것이다. 또 최근 급증하고 있는 기억장애, 즉 치매와 무관치 않다. 기억이 사라지는 순간, 인간의 삶은 전혀 다른 곳으로 진행된다. 어릴 때부터 겪어 온 기억은 한 인간의 삶을 총망라하는 '인생의 총체'이다. 인간은 기억의 동물이다. 생각하는 사람, 기억하는 사람, 추억하는 사람이 인류 생존의 가장 큰 선물이다. 인간은 기억을 통해 삶을 이어가는 생명체이다. 기억은 뇌 세포와 직접적 연관이 있다. 뇌 속에 있는 신경세포가 기억을 저장하고 때론 삭제하고 혹은 복원시킨다. 영화 '노트북' '내 머릿속의 지우개' 등은 기억을 잃어버린 연인에 대한 안타까운 내용을 담았다. 남의 일이 아닌 듯 최근 기억장애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노인인구가 증가한 탓도 있는데 무엇보다 뇌 속의 신경세포가 특정한 물질의 증가에 따라 죽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이는 연령대를 따지지 않는다.뇌연구를 통해 기억장애와 싸우는 연구는 간단치 않다. 우주만큼 복잡한 뇌와 한바탕 씨름을 해야 한다. 인간의 뇌를 연구하는 인류의 도전이 시작되고 있는 상황이다. ◆뇌신경세포, 한 번 죽으면 복원 불가능=국내연구팀이 기억장애에 대한 원인을 규명해 관심을 모은다. 국내 연구팀이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에서 쉽게 발견되는 반응성 성상교세포가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인 가바를 생성, 분비해 이를 통해 기억장애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밝혀낸 것이다. 알츠하이머병은 치매를 일으켜 인지장애를 일으키는 치명적 난치병이다. 미국에서는 65세 인구 여덟 명중 한명에게 발병한다. 우리나라도 최근 인구 고령화와 함께 그 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국내 연구팀은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반응성 성상교세포 내에서 도파민을 산화시키는 효소로 알려진 마오-B의 작동원리를 규명했다. 마오-B 작용으로 생성된 억제성 신경전달물질 가바가 베스트로핀이라는 특정한 음이온 채널을 통해 외부로 방출돼 신경세포의 정상적 신호전달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오-B의 생성을 억제한다면 기억장애를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 연구팀은 알츠하이머 생쥐에서 마오-B 혹은 베스트로핀의 억제를 통해 반응성 성상교세포내 가바의 생성과 분비를 제한했고 신경세포의 발화능력과 시냅스 가소성이 회복됨에 따라 기억력도 회복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행동실험을 위해 사용된 생쥐는 본능적으로 어두운 장소를 좋아하는데 한 번 어두운 장소에서 전기적 자극을 경험한 생쥐는 다시 어두운 장소에 들어가지 않는다. 반면 알츠하이머에 걸린 생쥐는 전기 자극을 경험했던 장소를 기억하지 못하고 또 다시 어두운 방에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연구팀은 이런 생쥐에게 마오-B 억제제를 투입해 반응성 성상교세포의 가바 생성을 억제했고 생쥐가 다시 어두운 방에 들어가지 않는 행동 변화를 통해 기억력이 회복됐음을 증명했다. 이번 연구를 이끈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뇌과학연구소 이창준 박사는 "알츠하이머가 발병했을 때 기억력이 감퇴하는 원인을 규명했고 가바의 생성과 분비 억제가 기억력을 회복시키는 새로운 치료방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한계도 있다. 마오-B가 만들어지면서 가바 생성이 높아진다는 것은 밝혔는데 정확히 왜 그런지에 대해서도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관련된 신약개발도 10년 넘게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연구결과로 신약이 개발되더라도 초기 환자에게 유용할 뿐 이미 상당히 진행된 치매환자에게는 큰 효과가 없다. 이에 따라 혈액이나 영상 등으로 조기에 치매 여부를 검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내 뇌연구 선진국 예산의 2%에 머물러=지난 6월초에는 알츠하이머, 파킨슨, 해면양뇌증(광우병) 등을 일으키는 아밀로이드 섬유화 억제방법이 국내 연구팀에 의해 발견돼 큰 관심을 모았다. 퇴행성 질환의 화학적 작용 과정을 이해하고 치료제 개발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김준곤 포스텍(POSTECH) 화학과 첨단재료과학부 교수팀이 아밀로이드 섬유화로 몸속에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단백질이 특정한 생리적 작용을 통해 커다란 덩어리(응집체)를 형성하는 현상을 파악해 낸 것이다. 덩어리는 체내의 정상 세포들을 망가뜨려 비정상적 상태로 만들고 각종 퇴행성 질병을 불러일으킨다.김 교수는 "인간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각종 퇴행성 질환들이 사회 문제로 부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관련 연구와 치료제 개발은 부족하다"며 "아밀로이드 단백질의 섬유화와 관련된 퇴행성 질환의 화학적 작용과정을 이해하고 치료제 개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기억장애에 대한 원인이 세계 최초로 우리나라 연구팀에 의해 규명됐는데 국내 뇌연구는 초기단계에 있다. 전 세계적으로 뇌 연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연구여건이 열악하다. 올해 뇌연구와 관련된 예산은 1000억원. 미국의 2%에 불과하다. 임현호 한국뇌연구소 연구본부장은 "뇌연구는 기초연구와 응용연구로 나눠 볼 수 있는데 기초연구 분야에서는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며 "몇몇 뛰어난 연구자는 있는 반면 저변 확대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연구력은 뛰어난데 연구비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다 보니 속도를 내기 어렵다는 현실이라고 분석했다. 임 본부장은 "뇌연구의 선도과학자의 집중지원으로 뛰어난 연구 성과를 내는 것과 함께 여러 곳에서 연구를 함께 하는 저변확대에도 본격 나서야 한다"고 진단했다. 뇌연구는 앞으로 기초과학은 물론 응용과학 분야에서 새로운 도전의 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분야이다. 국내 우수한 연구자는 물론 저변 확대에 적극 나서야 하는 순간에 우리는 지금 서 있다.
▲마오-B가 생성되고 가바를 증가시키면서 신경전달물질에 장애가 일어나는 것으로 밝혀졌다.[사진제공=KIST]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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