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소연 기자]상저하고(上底下高)의 낙관론으로 시작한 2012년 패션시장은 하반기로 갈수록 오히려 상고하저(上高下低)로 불황의 늪은 더욱 깊어졌다. 판매부진을 떨쳐내지 못하고 재고소진을 위한 할인판매가 이어지면서 위기에 빠지거나 영업 중단을 선언하는 브랜드가 속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간소화된 소비로 멋을 추구하거나 마음의 힐링을 얻는 문화예술 분야의 지출은 꾸준히 이어졌다. SPA 브랜드는 복종을 불문하고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는 강자로 자리했으며, 아웃도어는 도시 라이프스타일에 초점을 맞추고 확장했다. 유통업계는 스마트한 알뜰 소비자들을 위해 온, 오프라인 채널을 상호보완하는 멀티채널 전략을 강화했다. 27일 삼성패션연구소는 2013년을 준비하는 현 시점에서 올해 화제가 됐던 패션 산업의 10대 이슈를 정리하고, 향후 패션 산업의 변화 방향을 전망했다.삼성패션연구소는 올해 패션 부문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 '인문학적 소통'을 꼽았다.소비자들은 쉽게 지갑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불황의 스트레스를 인문학적으로 ‘힐링’하고자 하는 바람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작가, 혜민 스님을 국민적 멘토로 만들었고, 가족을 돌아보는 계기가 돼 전국이 캠핑 열풍에 빠졌다. 합리적 가격으로 요약할 수 있는 '칩시크의 지배'도 돋보였다.침체된 경제환경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소득마저 제한되면서 소비자들은 가격에 더욱 민감해졌다. 그러나 무턱대고 소비를 줄일 수 만은 없는 일. 적은 돈으로 최상의 만족을 느끼고자 하는 효율적인 소비에 대한 욕구가 강해지면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스타일을 살릴 수 있는 제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 '자발적 간소화'와 '소비수준의 고도화'가 두드러진 한 해였다.금융위기 이후 몇 년째 소비 트렌드의 화두였던 '가치소비'는 어느새 사람들의 생활 방식으로 자리잡았다. 소비 여력이 있는 중산층도, 소비를 이끌던 2030 소비자도 소량 구매와 PB 상품 선호 등의 소비행태를 보이고 있다. SPA 제품 구매로 세이브한 금액을 고가의 브랜드 아우터에 쓰거나 의류제품이 아닌 다른 카테고리 제품에 투자하는 등 크로스오버 소비행태가 정착한 한 해였다. 올해는 '가격할인 전성시대'였다.반값할인, 창고대방출, 땡처리, 패밀리세일 등 유통가는 일년내내 세일 중이다. 지난 추동시즌부터 매출부진에 시달렸던 백화점이 파격적인 가격인하와 창고대방출, 땡처리라는 자극적인 판촉문구와 함께 역대 최장 기간의 여름세일을 진행했지만 매출이 늘지는 않았다. 하반기 들어서도 이미 90일 이상 세일을 진행했지만 가을 세일도 부진을 면치 못했다. 유통업체들은 연말 특수와 때이른 한파, 반값행사로 시작된 겨울 세일에 기대를 걸고 있다.또 도심에서 즐길 수 있는 '어반 라이프스타일 아웃도어'가 대세인 한 해였다.경기불황에도 아웃도어 시장은 순항 중이지만, 지난해의 등골브레이커와 같은 기형적 광풍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아웃도어 시장은 빅 3 브랜드가 주도하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다양한 니즈를 반영하여 차별화시킨 브랜드와 제품들이 선택을 받고 있다. 스타일면에서는 부피감을 줄이고 도심에서 착용해도 무리없는 어반 아웃도어룩이 인기를 얻고 있다. 온오프라인의 상호보완, 복합쇼핑몰 등 '하이브리드 채널 전략'도 대두됐다.스마트한 소비가 일상에 자리잡게 되면서, 오프라인 매장에서 제품의 품질을 살펴본 뒤 구매는 저렴한 인터넷 쇼핑에서 하는 쇼루밍(Show-rooming)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응하는 유통업체들도 오프라인 유통과 온라인 몰의 시너지를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펼치고 있다. 특히 백화점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몰은 경기침체 속에서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오프라인 쇼핑에 있어서는 복합쇼핑타운이 오프라인 쇼핑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패션, 엔터테인먼트, 레스토랑 등 전세대를 아우르는 컨텐츠의 힘이 쇼핑몰을 불황의 무풍지대로 만들었다. '모바일 커머스'도 본격 시작을 알렸다.최근 발표된 유명 IT 애널리스트의 2012년 연말 보고서에 의하면, 국내 스마트폰 이용자수는 3200만명으로 세계 7위인 것으로 나타났고 보급률은 2위를 기록했다. 모바일쇼핑 이용자가 1000만명을 넘어서고 거래액이 2년새 30배가량 뛰면서, 패션업계에서도 모바일 쇼핑몰이 차세대 쇼핑 채널로 각광받고 있다. SPA는 '전천후 플레이어'로 등극했다. 가치소비의 갑(甲), 복종의 경계를 없애면서 백화점의 위기를 몰고 왔다. SPA 브랜드들은 불황 속에서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최근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유니클로는 2005년 한국 진출이후 매년 60%를 웃도는 매출 신장률을 기록하고 있다.올 봄 런칭한 에잇세컨즈도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뤄내고 있다. 국내외 SPA 브랜드들이 끊임없이 론칭중에 있으며, 최근 이랜드는 내년 전 부문에 걸쳐 10개의 SPA 브랜드를 내놓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합리적 가격의 '잇 아이템'들이 돌풍을 일으켰다. 쿠론, 프로스펙스 워킹화, 유니클로 히트텍 등 잇백, 잇슈즈 등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라는 타이틀도 ‘합리적 가격’이라는 기준을 통과해야만 얻을 수 있었다.김연아 운동화로 불리며 300만족 이상이 판매된 프로스펙스 W 워킹화는 10만원 이하의 합리적인 가격대와 장기 불황 속에서 지친 몸과 마음에 위안을 주는 ‘힐링’ 트렌드가 맞물려 잇 아이템으로 등극했다. 전년대비 240% 성장해 매출 400억원을 넘길 것으로 전망되는 쿠론은 해외 잡화 브랜드 백에 비해 저렴한 가격대와 디자이너 감성을 담은 심플한 디자인, 색감 등을 장점으로 소비자의 선택을 받았다. 침체된 내수시장에 불어온 한류열풍으로 중국인 관광객들이 국내 패션업계의 매출을 견인했다. 세계 곳곳에서 ‘강남스타일’을 외치는 한해를 보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유투브 조회 9억건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하고, 슈퍼주니어는 태국 교과서에 등장하는 등 세계 속 한류열풍은 더욱 거세졌다. 한류 열풍과 더불어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연간 1000만명을 넘어서고 있으며 쇼핑, 여행 등 관련 분야의 영향력 또한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 중국 국경절 동안 12만5000명의 중국인들이 한국을 찾아 2700억원을 소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패션 브랜드가 중국을 중심으로 해외에 진출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랜드는 중국내 6400개 매장, 2조1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순항중이고 SK네트웍스, LG패션, 제일모직 등의 대기업도 중국을 중심으로 보유 브랜드의 해외 진출을 공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박소연 기자 mus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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