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친구들 학부모 상대로 투자 권유
초반에 수익금 보장해주다가 돌연 잠적
피해자 주장 합치면 피해액 30억 육박
"파산 신청해 실질적인 구제받지 못해"
자녀를 같은 학교에 보낸 인연으로 가깝게 지낸 학부모들 사이에서 수십억원대 사기 사건이 발생했다. 원금을 보장하는 투자 제안에 속은 이들의 피해 규모는 수십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북부지법 민사11부(부장판사 신명희)는 A씨가 B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24일 밝혔다. 재판부는 "B씨는 A씨에게 돌려주지 않은 12억3582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재판 과정에 출석하지 않고 실질적인 반박도 하지 않은 B씨의 행동을 전부 자백한 것으로 간주해 A씨의 청구를 모두 받아들였다.
50대 여성인 A씨와 B씨는 2005년부터 서울 성북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자녀를 함께 둔 학부모로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후 학부모 모임을 계기로 친분을 쌓았고, 가족끼리 여행을 함께 다닐 만큼 가까운 사이로 발전했다. 자녀들 역시 대학 입시설명회에 동행할 정도로 가까웠다.
투자 권유는 두 사람이 알고 지낸 지 11년째 되던 2016년에 시작됐다. B씨는 학부모 모임 자리에서 "투자증권회사에 다니는 사촌오빠가 200억원대 자산가"라며 투자 이야기를 꺼냈다. 사촌오빠를 통해 투자하면 원금을 보장받고 월 4~7% 이상 돈을 불릴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B씨는 실제로 수익금 명목의 돈을 정기적으로 보내며 신뢰를 쌓았고, 점점 더 큰 금액의 투자를 권유했다. 자신도 이미 2억원 상당의 원금을 투자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피해자에게 "(사촌오빠가) 식구들 돈인 줄 아니까 원금은 보장해주는 것"이라며 안심시키기도 했다.
이런 피해는 A씨 한 명에 그치지 않았다. B씨는 자녀가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에 다닐 때 형성한 학부모 인맥 전반을 상대로 비슷한 방식의 투자를 권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에 여러 피해자의 고소가 잇따랐고, 서울북부지검은 지난해 9월 특정경제범죄법 위반 등 혐의로 B씨를 구속 기소했다. 이 사건 수사 과정에서 B씨가 피해자들로부터 가로챈 금액은 150억원으로 조사됐고, 별도 고소를 진행한 피해자들의 주장을 감안하면 모두 합쳐 280억원에 육박한다. 이 가운데 30억원에 달하는 규모가 현재까지 반환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A씨가 B씨에게 속아 보낸 금액은 8년간 32억원, 이 중 12억원 이상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B씨는 '사촌오빠가 근무하는 투자증권회사에 대한 감사로 매도 시기가 늦어졌다' 등 이유를 대다 연락이 두절됐다고 한다. 민사 판결 이후에도 B씨가 파산을 신청한 상태여서 실질적인 구제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A씨의 자녀는 통화에서 "부모님은 모임이나 외출을 모두 끊었고 지금도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약을 복용하고 있다"며 "집과 가게를 내놓은 뒤 생활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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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B씨에 대한 형사 재판의 선고기일은 다음 달 16일로 예정됐다.
이지예 기자 eas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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