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한 인생2막 50+]“잘 사는 것만큼이나 잘 죽는 것도 중요합니다”

‘잘 죽는 법’ 가르치는 웰다잉 전문강사 이정옥씨

[사진:이코노믹리뷰 이미화 기자]

어찌 보면 암울한 얘기일 수 있겠다. ‘이승과 저승’ ‘지옥과 천국’ ‘마지막’ ‘영안실’… 죽음에 대한 이미지는 이렇듯 어두운데다 한편으로는 무섭기까지 하다. 아마도 삶의 끝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생명이 다하면 어디로 가는지 모르니 두렵기 때문이리라. 그래서인지 죽음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꺼릴 만큼 터부시하는 이들이 많다. “죽으면 죽었지, 절대 그건 안 해” “죽어야 정신 차릴래?” 뭐, 이런 말을 했다가는 재수 없는 소리 말라며 연세 지긋한 분들에게 야단맞기 일쑤다. 한데 여기에 반기를 든 여인이 있다.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일부분이라고 말하는 이정옥(74) 씨다. 일흔이 가까운 나이에 도전한 제2의 인생. 전업주부에서 웰다잉(Well-dying) 전문강사로 변신, 잘 죽는 방법 알리기에 나섰다. “따르릉,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그는 여느 날과 똑같이 곧 유치원에서 돌아올 아들을 위해 집에서 간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수화기를 들자마자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 “빨리요, 빨리 오세요. 아이가 미끄럼틀에서 넘어져 많이 다쳤어요” 제대로 설명을 들을 새가 없었다.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옷을 걸칠 여유도 없이 맨발로 뛰쳐나와 유치원으로 달려갔다. 곳곳에 선혈이 낭자한 현장 모습에 다리가 후들거리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리고 병원으로 옮겨진 아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는 첫 아이를 그렇게 보냈다. 그로부터 20여 년 후, 그는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어야만 했다. 허망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둘이나 떠나보낸 혹독한 삶의 시련을 그는 고스란히 혼자 감내해야 했다. 그의 나이 쉰넷이었다.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 가족의 죽음은 남겨진 5남매에게 크나큰 충격이자, 상처로 남았다. 다시 훌쩍 20년이 지난 2012년 현재, 일흔네 살의 이정옥 씨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에게 상실의 고통을 안겨 줬던 ‘죽음’을 화두로 하는 ‘웰다잉(well-dying) 전문강사’가 돼 있었다.  두 번 경험한 죽음이 인생2막 열어장맛비가 갠 지난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사회복지법인 각당복지재단에서 이씨를 만났다. ‘인터뷰하기로 한 사람 정말 맞나’할 정도의 고운 ‘동안’ 외모. 나이에 비해 족히 10년은 젊어 보였다. 각당복지재단, 이곳은 자신의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된 특별한 장소이기에 인터뷰도 여기에서 하고 싶었단다. 자세한 사연은 차차 들어보기로 하고 맨 먼저 웰다잉의 개념부터 물었다. “당하는 죽음이 아닌, 준비를 통해 맞이하는 편안한 죽음을 뜻해요. 잘 죽는 방법을 의미하는 거죠. 진정한 웰빙의 완성이 ‘웰다잉’이예요.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잘 살았다는 건 보람되고 가치 있는 삶을 보냈다는 것이고, 그래서 잘 죽게 됐을 때는 인생을 아쉽지 않게,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다는 거죠.”

[사진:이코노믹리뷰 이미화 기자]

살면서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다소 낯선 이론이긴 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를 죽음에 관한 이야기꾼으로 만들었을까. 1992년, 남편을 잃었을 무렵이었다. “죽음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이 있는데 한 번 들어보지 않겠느냐”는 지인의 권유에 그는 ‘죽음학(學)’을 공부하게 됐다. 운명이었을까. 죽음을 두 번이나 경험한 그로서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교육생 중에서 내가 제일 나이가 많았어요. 함께 공부하면서 이야기를 나눠 보니 10명 가운데 8명이 남편이 없더군요. 마침 윤보선 전 대통령의 부인과 같은 팀이 돼 교육을 받았는데 이 분도 남편과 사별했잖아요? 비슷한 처치의 우리는 두루두루 친구가 됐죠.” 처음엔 남편이 없다는 게 무척 부끄러웠단다. 하지만 자신만 아픔을 겪은 게 아니라는 사실이 큰 위안이 됐다. 서로 위로를 주고받으며 따뜻함을 배웠고 덕분에 죽음에 대해서도 즐겁게 공부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상실, 고통, 상처로 각인됐던 죽음이란 존재는 그에게서 점점 멀어져 갔다. 죽음을 갑자기 다가온 사건이 아니라 준비하고 맞이하는 게 현명한 지혜라는 점도 깨달아가고 있었다. 그랬다. 죽음과 관련해 뭔가 새롭고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전업주부로서 그저 자식들에게 받은 용돈과 남편이 벌어다 준 돈으로 겁 없이 쓰고 살았던 지난날을 돌이켜 봤어요. 노후엔 내 힘으로 벌이하면서 보람 있는 일을 하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어르신에게 죽음 잘 준비하는 방법 설파20년 가까이 공부해온 죽음학. 세상에 펼쳐 보일 기회가 필요했다. 2007년 초, 각당복지재단 산하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가 국내 처음으로 웰다잉 전문강사 과정을 시작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1기 과정을 등록했다. 70~100명 가까이 되는 수강생의 대부분이 55세 이상이었다. 이씨는 69세였으니까 나이가 많은 편에 속했다. 퇴직자, 복지사, 목사, 수녀, 승려 등 직종도 다양했다. 교육은 3개월간 진행됐다. 유서 쓰기를 비롯해 존엄사, 상실과 슬픔 치유, 화해와 용서, 호스피스(환자의 임종을 지켜주며 존엄하게 떠날 수 있도록 하는 의료 시스템), 편안한 죽음. 나의 장례 예전, 인생관. 재산 정리, 웃음 치료 등을 배웠다. 이 중에서 그의 전문 분야는 화해와 용서다.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화해하고 용서해야 해요. 증오와 분노를 내려놓고 자유로움을 얻어야 합니다. 용서는 다름 아닌 나 자신을 위한 일이죠. 화해와 용서야말로 가장 중요한 죽음에 대한 준비예요.” 이씨는 과정 수료 후 민간자격인 웰다잉 전문강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자격증이 있으니, 복지기관으로부터 강의 요청이 여럿 들어왔다. 양로원, 복지관, 노인대학, 경로당, 시니어타운을 누비며 그는 웰다잉 강의를 펼쳤다. “한 복지사가 그러더군요. 이런 강의가 있는지 몰랐다고. 어르신들이 노인정에서 음식을 드시고 춤추고 놀다 그냥 가시는 것보다는 죽는 연습을 할 수 있게 해 드리는 게 더 의미가 있겠다고 말하더라고요. 어떤 복지사들은 저를 홀대하기도 해요. 죽음을 주제로 강의한다는 게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일 테죠.”‘이정옥’표 웰다잉 강연 프로그램은 보통 1~2시간씩 일주일에 3~4회를 한다. 주제는 다양하다. 제3의 인생-당당한 노년, 편안한 죽음 준비, 용서와 화해, 노인의 의무, 존엄한 죽음 준비, 유서 쓰기, 상실의 아픔 다루기, 사전의료의향서 쓰기 등이다. “존엄한 죽음 준비를 주제로 한 강의의 경우, 우선 ‘고향의 봄’ 노래에 맞춰 청중과 함께 가벼운 스트레칭을 합니다.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임종자들의 모습을 소개하고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했던 사람들의 예화를 들려줘요. 호스피스나 용서와 화해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알려줍니다.” 또 ‘존엄한 죽음을 위한 선언서’를 소개하고 ‘나의 장례 예전’을 작성해 청중이 서로 나눌 수 있게 한다. 특히 사전의료의향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죽음이 임박한 상황을 대비해 생명 연장과 특정 치료 여부에 대해 자신의 의사를 서면으로 미리 표시하는 공적 문서를 사전의료의향서라고 해요. 이 문서를 미리 작성해 두면 훗날 죽음이 임박했을 때 본인 스스로도 존엄하게 죽을 수 있고 가족들이 평소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데도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죠. 최근 사전의료의향서 작성이 확산되는 추세입니다.” 강의를 들은 청중들의 반응은 어떨까. 아직 죽음에 대해 드러내놓고 이야기하는 것에 익숙지 않은 사회 분위기 탓에 “기분 나쁘게 왜 죽는 얘길 하느냐” “자꾸 죽는다는 말을 하면 재수가 없다” 등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하지만 강의를 듣고 궁금한 점을 물어오며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더 많고, 개중에는 웰다잉 전문강사 과정을 교육받고 싶다는 이들도 여럿 된다고 했다. 경력 3년 차에 접어든 아직은 새내기지만 20년 죽음학 공부로 축적된 탄탄한 배경지식과 귀에 쏙쏙 박히는 화술, 청중을 사로잡는 능력은 일품이다. 90분 강의가 30분짜리를 보는 것처럼 후딱 지나가는 데다 원고도 한 번 안 보고 어떻게 술술 내용을 풀어내느냐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주제가 암울한 내용이기 때문에 강의가 슬프거나 우울해지지 않도록 시와 유머를 활용하고 미술이나 뮤지컬 소재도 중간 중간에 녹여 분위기를 통통 띄우는 것도 이씨만의 노하우. 그러나 그는 “죽음을 화두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 같다”고 털어놨다. “‘죽음학’의 대가인 정신과 의사 퀴블러 로스가 제시한 ‘죽음의 5단계'가 있어요. 사람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단계는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이라고 합니다. 죽음과 맞닿은 이의 단계가 어디쯤이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태도와 정도가 달라지거든요. 죽음학은 다 같이 공감하기 매우 어려운 학문이에요. 젊은 층보다는 아무래도 노년층이 더 쉽게 이해하고 공감하죠.” 웰다잉 문화 확산, 전망 밝아이씨는 강의뿐 아니라 ‘웰다잉 연극단’ 단원으로도 활동했다. 노인단체와 교회, 사회기관 등을 찾아다니며 무료 공연을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문 연기자에게 2~3개월간 연극 지도도 열심히 받았다. “‘춤추는 할머니’란 작품에 출연했습니다. 역시 죽음을 소재로 했고요. 제가 맡은 역할은 죽은 사람을 데려가는 천사였어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연기에 도전했는데 즐거운 경험이었죠. 또 이런 연극 봉사를 통해서도 죽음의 의미를 표현하고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를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어 좋았어요.”‘나는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을까’에서 시작한 여정. 편안한 죽음 준비를 하다가 웰다잉 전문강사까지 됐고 다른 사람들의 아름다운 죽음 준비에 일조할 수 있으니 기쁨과 보람이 크다고 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건 각당복지재단과의 인연 때문이란다. “처음엔 ‘엄마는 왜 매일 죽음을 다룬 책들만 보느냐, 우울하지 않으냐’고 걱정스러워하던 제 아이들도 지금의 활기찬 엄마의 모습을 보고 좋아합니다.” 이씨는 “수의도 이미 만들었고 노인정에서 영정 사진도 찍었다”며 죽음 준비를 거의 다 해놨다고 웃으며 말했다. 웰다잉 전문강사 1세대인 그가 바라본 시장 전망은 밝았다. “강의료는 교통비 정도 수준이지만 돈벌이보다는 노후를 의미 있게,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일입니다. 보람이 엄청나거든요. 웰다잉 문화를 제대로 알리는 데 앞장선다는 사명감마저 들어요. 앞으로도 웰다잉 분야는 계속 확산하는 추세예요. 국가에서도 장려하기 때문에 이 분야에 대한 전문강사 수요는 점점 많아질 겁니다.” 이씨는 “죽음을 부정적인 것이 아닌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죽음과 삶을 함께 생각하는 인식을 심는 데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그가 취재기자에게 읊어준 시 하나가 뇌리에 남았다. “이미/ 떨어질 꽃이라/ 하찮게 여기지 마라/ 씨앗을 품고 있다/ 이미/ 늙어질 몸이라/ 하찮게 여기지 마라/ 인생을 품고 있다/ 그대/ 내 삶이 부질없다/ 하찮게 여기지 마라/ 내 발걸음이 역사가 된다.”(존재의 이유 - 이상희)웰다잉 전문강사 되고 싶다면 각당복지재단을 노크하세요1991년 우리나라에 웰다잉 문화를 처음 소개한 각당복지재단 산하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는 죽음학 강좌와 슬픔치유 모임, 웰다잉 전문가 배출, 웰다잉 연극단을 통해 죽음준비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국내 처음으로 개설한 웰다잉 전문강사 양성 과정은 이론과 실제, 멘토링, 철저한 학사 관리에 의한 웰다잉 교육 특화 프로그램이다. 분야별 전공교수들이 강의를 진행하며 웰다잉 강사의 감성 세우기 캠프활동과 같은 특별 교육 과정도 포함돼 있다. 50세 이상의 전문직 은퇴자로서 죽음 교육 전문강사로 활동하고자 하는 이들이 참여할 수 있다. 웰다잉 교육 전문강사 과정 수료 후, 노인복지시설 및 기관에서 죽음 교육을 지도하는 강사 활동을 지원한다. 웰다잉 강사들은 선배 강사들과 멘토링으로 연결돼 경험과 정보를 얻고 멘토의 격려와 지원을 받아 노인복지 현장에서 강사 활동을 펼칠 수 있다. 지난해까지 5기 수료생을 배출했으며 올해 하반기(9월 19일~11월 29일) 6기 모집이 예정돼 있다.이코노믹 리뷰 전희진 기자 hsmile@<ⓒ 이코노믹 리뷰(er.asiae.co.kr) - 리더를 위한 고품격 시사경제주간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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