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詩]황진이 시조 (3) '내 언제 신이 없어'

내 언제 신(信)이 없어 임을 언제 속였관대
월침삼경에 올 뜻이 전혀 없네추풍에 지는 잎 소리야 낸들 어이 하리오황진이 시조 (3) '내 언제 신이 없어'■ 황진이는 깜짝 놀랄 만큼 주체성이 강한 여자였다. 어떤 남자가 마음에 든다 싶으면 직접 러브콜을 했다. 대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너무 좋아 잠을 이룰 수 없습니다. 부디 석달만 동거하도록 허락해주소서." 첩으로 들어가겠다고 해도 될터인데, 굳이 그녀는 시한부 동거를 제안했다. 그리고 사내의 집에 들어가면서 석달 동안의 살림도구와 비용을 모두 준비해 갔다. 나는 다만 사랑만 필요한 것이니, 그것만 제공하시면 됩니다. 나머지 일체는 미스황 부담입니다. 석달을 살고난 황진이는 이렇게 말한다. "그간 잘 지냈으니, 오늘 보따리를 싸려합니다." 뒤늦게 사내가 눈물을 흘리며 버선발로 뛰어나가 치맛자락을 붙잡았으나 황은 칼같이 끊고는 샤악 떠난다. 그녀는 신용 하나만큼은 틀림없이 지키지 않았던가. 이 가차없는 사랑과 이별의 기획들은, 그러나 황진이의 외로운 방에서 가끔 저렇게 회한으로 터져나왔을 것이다. 달이 지는 한밤 가을바람 불 때 혹시 이 남자가 와 있나 싶어서 슬그머니 문을 열어보는 것이다. 이럴 때, 바보같이, 남자는 하나도 없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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