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만에 만난 ‘동지’와 마지막 나눈 대화는···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생전인 1980년대 포항제철소 현장에서 '동지'라 불렀던 직원들과 환하게 웃으며 기념 촬영하고 있다.
[아시아경제 채명석 기자] “여러분과 함께 도전했던 세월은 가장 아름다운 날들이었습니다.”지난 13일 별세한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생전 “창업 1세대들이 어렵게 사는 분들이 많아 안타깝다”는 유언을 남겼다.함께 고생한 ‘동지’들에게 감사하고, 그들과 많은 시간을 갖지 못한 점이 마지막 생을 앞두고 고인에게 견디지 못할 짐으로 여겨졌던 것으로 보인다.지난 9월 19일 포항 지곡동 포스코 한마당 체육관에서 재직시절 함께 근무했던 퇴직 직원들과 19년 만에 마련한 만남의 행사에서 박 명예회장이 던진 첫 인사도 “미안합니다”였다고 한다. 이어 환영사를 하는 내내 그의 눈가에는 내내 감격의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박 명예회장이 재직했던 당시인 1993년 2월까지 포항제철소에 근무했던 직원들 중 현재 포항에 거주하는 만 55세 이상의 퇴직자를 대상으로 초청된 당시의 자리에는 총 370여명의 동지들이 참석해 ‘보스’를 환영했다.이날 박 명예회장의 환영사는 ‘동지’들에게 던진 마지막 인사가 됐다. 다음은 포스코측이 밝힌 박 명예회장의 환영사 전문이다.정말 오랜만입니다. 정말 보고 싶었소!오늘 이 자리에서는 여러분을 그냥 ‘직원’이라 부르겠습니다. 그 앞에 ‘퇴직’이란 말을 달고 싶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저를 그냥 ‘회장님’이라 부르기 바랍니다. 보고 싶었던 직원 여러분.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도록 건강을 허락해주신 조물주에게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이게 얼마 만입니까? 제가 회장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난 때가 1992년 10월이었으니 어느덧 19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19년만의 재회입니다. 지금 저는 만감이 교차하고 감정이 북받쳐 오릅니다. 친애하는 직원 여러분. 오늘 저녁에 우리는 추억 속으로 걸어가게 됩니다. 우리가 영일만 모래벌판에서 청춘을 불태우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여러분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우리는 희생하는 세대다”, “우리의 희생과 헌신으로 조국 번영과 후세 행복을 이룰 수 있다.” 여러분은 그 외침에 공감하고 기꺼이 동참했으며, 저는 솔선수범으로 앞장섰노라고 자부합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그때의 대한민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그 바탕, 그 동력은 바로 여러분의 피땀이었습니다. 우리 임직원들에게 희생과 헌신을 요구한 저에게 위안이 있었다면, 자녀교육과 주택문제, 후생복지와 문화혜택을 당시 한국에서 최고 수준으로 보장하는 가운데, 어려운 시대에 안정된 직장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남들이 갖지 않은 특별한 것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연봉이나 복지보다 더 소중한 정신적 가치, 그것은 제철보국이었습니다. 기필코 회사를 성공시켜서 조국 근대화의 견인차가 되자는 투철한 사명의식을 가슴에 품고, 실패하면 영일만에 빠져 죽자는 ‘우향우 정신’으로 무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그 열정, 우리의 그 헌신, 우리의 그 단결이 마침내 ‘영일만의 기적’을 창출하고 ‘영일만의 신화’를 쓰게 되었습니다.그러나 우리의 힘만으로는 그 기적, 그 신화를 이룰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언제나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분들을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가장 먼저 기억할 것은, 회사의 종잣돈이 조상들의 피의 대가였다는 사실입니다. 대일청구권 자금, 그 식민지 배상금의 일부로 포항 1기 건설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외친 제철보국과 우향우는 한층 더 우리의 가슴을 적시고 영혼을 울렸을 것입니다. 고 박정희 대통령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제철소가 있어야 근대화에 성공할 수 있다는 그분의 일념과 기획과 의지에 의해 포항제철이 탄생했고, 그분은 저를 믿고 완전히 맡겼을 뿐만 아니라 온갖 정치적 외풍을 막아주는 울타리 역할도 해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역사회의 이해와 협력도 기억해야 합니다. 포항제철을 위해 수많은 주민이 정든 고향을 떠나야 했고, 신부님과 수녀님들은 귀중한 시설을 포기했으며, 포항시민은 인내와 협조를 보내주었습니다. 그래서 지역사회와 포항제철은 공생공영의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해병사단은 포항제철의 듬직한 이웃이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도 해병 의장대가 우정 출연을 하고 있습니다만, 국가 안보가 요즘보다 훨씬 더 불안하던 그 시절부터 해병사단은 우리 회사를 잘 지켜주었습니다. 일본에도 포스코를 위해 진심으로 협력해준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두 분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이미 오래전에 고인이 되신 신일본제철의 이나야마 회장과 양명학의 대가 야스오카 선생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간직해야 할 이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현장에는 위험이 상존했고,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조금 전에도 그분들을 위한 묵념이 있었습니다만, 조업과 건설 중에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은 우리의 마음과 포스코의 역사 속에 영원히 살아 있어야 합니다. 친애하는 직원 여러분. 인생의 황혼에 들어선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인생은 짧다’는 생각을 해보기 마련입니다. 저도 그런 생각에 잠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사람이 세운 큰 뜻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짧은 것은 아닙니다. 이 자리에 모인 우리는 제철보국이라는 큰 뜻을 함께 이룬 동료들입니다. 저의 인생에서 여러분과 함께 그 큰 뜻에 도전한 세월이 가장 보람차고 가장 아름다운 날들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저의 인생에 가장 보람차고 가장 아름다운 선물을 안겨준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여러분과 함께 청춘을 바쳤던 그날들에 대해 하느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사랑하는 직원 여러분. 우리의 추억이 포스코의 역사 속에, 조국의 현대사 속에 별처럼 반짝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그것을 우리 인생의 자부심과 긍지로 간직합시다. 여러분, 부디 건강해야 합니다. 부디 행복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의 건승과 모든 가정의 행복을 빌면서, 포스코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11년 9월 19일 포스코 명예회장 박 태 준채명석 기자 oricm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산업부 채명석 기자 oricms@ⓒ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