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대]쪽방촌의 겨울나기'악취 나도 여기서 살겠다'

쪽방촌, 그리고 겨울

무너져가는 쪽방. 집주인의 무관심으로 바닥이 터져 나오고 있다.

[아시아경제 황준호, 박충훈 기자] 돈의동, 영등포 등 쪽방촌은 겨울 준비가 한창이다. 여름내 잠자고 있던 보일러는 쿨럭이며 검은 연기를 내뿜었다. 사람들은 밖으로 나와 헤진 보도블록을 다듬고 하수도 정비에 여념이 없었다. 반면 집주인의 무관심으로 집이 쓰러지기 일보직전임에도 내팽개쳐진 집도 많았다. 주거 생태계의 최전방에 위치한 쪽방촌의 한 면을 살펴봤다. ◇ 이씨의 쪽방촌 함께 살기= 이해완씨는 아침 일찍부터 복지회관으로 향했다. 그는 종로구 돈의동에 위치한 '돈의동 사랑의 쉼터' 지하에 목욕탕에서 간단히 샤워를 마치고 쪽방촌내 어르신들께 문안인사를 하러 돌았다. 점점 사나워지는 날씨에 밤새 감기라도 걸리지 않았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휠체어에서 먹고 잔다는 홍씨의 방안. 1층에 위치한 홍씨의 방은 불투명한 유리가 달린 철제 슬라이드 도어를 사이에 두고 위치해 있다.

이날도 그는 휠체어 홍승준씨가 그의 손길을 찾았다. 급하게 이씨가 홍씨의 방문을 열자 홍씨의 등이 바로 보였다. 홍씨는 0.8평되는 방에 tv와 식기만을 두고 휠체어 위에서 생활했다. 휠체어 위에서 밥을 먹었고 그 위에서 잠을 잤다. 휠체어를 목숨보다 아꼈다. 홍씨는 이날 휠체어가 말을 듣지 않자, 급하게 이씨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씨가 AS센터에 전화를 하는 것으로 응급조치는 이뤄졌다. 홍씨는 휠체어에서 살면서도 쪽방촌이 좋다고 말한다. 장애인 요양원 등을 전전했지만 아는 사람도 없고 술친구도 없었다. 몸이 편하더라도 사회적으로 결여된 생활은 더 힘들다는 판단이다. 특히 오늘처럼 휠체어가 말을 듣지 않으면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이씨와 돌아오는 길 쓰러져 가는 한 쪽방이 눈에 띄었다. 집주인의 관심 밖에서 멀어진 쪽방 중 하나였다. 주민들은 앞으로 내릴 눈을 걱정했다.

이씨가 거주하고 있는 쪽방의 모습. 방은 냉방이었다. 이씨는 밤이 되면 불이 들어온다고 했다. 양 벽면은 판넬로 이뤄져 있다.

이씨는 어릴적 소아마비 증세가 있었다. 이후 초등학교 때 계모라는 사실을 알고 집을 나왔다. 종로 거리에서 구걸도 하면서 어렵게 삶을 지탱했다. 외환위기까지는 그래도 직업이 있었다. 하지만 나이도 많고 장애도 있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는 노숙인으로 전락했다. 2005년 장애인협회에서 주선해 박스를 쌓는 일을 하며 100만원이 넘는 돈을 벌었지만 허리를 다치면서 쪽방촌으로 흘러왔다. 기초생활수급 지원금 43만원이 그가 한 달간 벌어들이는 돈의 전부다. 교회를 다니며 술도 먹지 않는 그는 지금도 직장을 구해 자립하고 싶다고 말한다. 다만 이제는 가족같은 주민들을 떠나 살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말한다. ◇쪽방 "이곳에서 삶을 정리"= 영등포 쪽방촌 골목에는 공사가 한창이다. 폭이 1m 남짓한 골목길에 자갈을 깔고 시멘트를 부어 다지는 공사다. 영등포구청이 이번 달부터 하수도 개보수 등 정비사업을 시작했다. 대부분 낡은 목조 건물로 1평도 채 안되는 방들이 빼곡히 들어찼다. 보통 건물의 외벽 두께 정도에 방을 만든 건물도 존재한다.쪽방촌 중간에 위치한 M식당은 건물 뒤편에 베니어 합판으로 겨우 구분만 해둔 방을 만들어 놓고 숙박업도 겸하고 있다. 세입자들은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아 방세를 내고 식당에서 술도 사먹는다. 식당 주인은 이들의 생활 수급비 통장을 대신 관리해주기도 한다. 기초생활수급비는 고스란히 월세와 술값으로 바뀌어 주인 손에 쥐어진다.쪽방촌이 아예 무법천지인 건 아니다. 근 40년에 걸쳐 형성된 곳이니만큼 눈에 띄지 않는 규율이 존재한다. 방에서 유난히 악취가 나는 이는 이웃들로부터 배척받는다. 갓난아기가 있는 집은 이웃들로부터 아기 울음소리가 시끄러우니 쪽방촌 외곽으로 이사하라는 권유를 받기도 한다.주민 노양훈씨(52)는 쪽방촌 입구에 있는 광야 교회가 신앙심이 깊은 주민에게 '특별공급'한 건물에 산다. 이 5층 건물에는 약 100여명이 산다. 교회가 지원해주는 곳이라 다른 곳보다 가격이 저렴하다. 보통 비슷한 수준의 방이 20만원이 넘는다고 한다. 노씨는 3.3㎡ 남짓한 방에 2만원짜리 전기매트를 깔고 구호단체에서 받은 PC도 설치했다. 인터넷은 월 1만7000원의 요금을 내고 연결했다.노씨는 젊은 시절 영등포와 가리봉 일대를 주름잡던 건달이었다. 가족과 헤어진 후 필로폰과 대마초에도 손을 댔고 수차례 자살시도까지 했다. 지금은 교회 집사다. 노씨는 더이상 바라는 것도 없고 여기서 생을 정리하는 곳으로 삼겠다고 말한다. 노씨는 쪽방촌에 머물며 쟁쟁한 사회인사를 만났다. 올해만 해도 김황식 국무총리를 비롯해 수많은 인사들이 다녀갔다. 그는 12년째 여전히 쪽방촌에 살고 있다.황준호, 박충훈 기자 rephwang@ ,parkjovi@<ⓒ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건설부동산부 황준호 기자 rephwang@ⓒ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