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희주기자
사진. 이진혁
편집. 장경진
“[공주의 남자] A팀은 콘티가 점잖고 유려한데 비해 B팀은 비교적 명랑하다”
사극이라는 점에서 촬영이 현대극과 다른 점이 있을 텐데, 일단 큰 틀에서도 전작인 <화이트 크리스마스>처럼 구도나 색감에서 다양한 실험을 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이윤정: 정말 다르다. 특히 <공주의 남자>는 정통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퓨전 사극도 아닌, 좀 점잖은 사극이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때는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해볼 수 있어 좋았는데 사극은 그런 게 안 되더라. 일단 편안하게 잡아야 한다. 한옥이라 앉아서 얘기하는 게 많기 때문에 세트 촬영이 제일 어렵다. 촬영하면서 느낀 건데 우리나라 전통 가옥이 부감과 잘 어울리지 않고. 사극이라 중요한 대사들은 앉은 자리에서 이뤄지는 게 많아서 편전은 물론 대청마루에 앉아있을 때도 편안한 아이 레벨(eye level)로 가야하고 카메라 무빙도 복잡하면 안 되고. 그래도 관습적인 아이 레벨로 인물들을 왔다 갔다 하는 게 아니라 대화 장면에서도 조금씩 움직임이 느껴져서 제약 속에서도 다른 시도를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이윤정: 일단 한복을 입고는 걸어가거나 뛰어갈 수가 없지 않나. 주로 서서 대사를 하니까 어떻게 하면 지루함을 탈피할까를 생각하는데서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 같다. 특히 팬이나 줌을 많이 쓰는 것 같다. 15회에서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양위를 결심하며 궁에서 달을 보는 장면을 뒤에서 전체를 먼저 잡은 뒤 정면에서 바스트, 클로즈업 순으로 다가가니 느낌이 확 살았다. 이윤정: 기본적으로 콘티가 그렇게 짜여 있다. 점점 더 몰아주는 느낌으로 가자고. B팀 연출하는 박현석 선배의 콘티 스타일이 씬마다 지향하는 바가 명확해서 설명을 듣고 맞는 건 그대로 찍고 그렇지 않은 것은 변형을 주는 식으로 진행한다. 나도 아직 경험이 적어서 치기어린 것들을 많이 해보는데 그걸 연출력으로 튀지 않게 커버해주신다. <공주의 남자>는 멜로 사극이지만 은근 액션씬도 많다. 액션은 에너지와 볼거리를 전달해야 하고 멜로는 섬세한 감정선을 전달해야한다는 점에서 모두 화면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은 작업이다. 이윤정: 액션이 많더라. (웃음) 액션과 멜로는 되게 다른데 사실 찍다 보니 나는 액션이 아직은 더 쉽다. 멜로는 감정선을 따라가는 것이라 배우의 연기를 팔로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걸 콘티나 앵글로 메워줘야 하는 굉장히 정교한 작업이다. 그런데 액션은 현장 호흡을 따라 가면 된다. 무술 팀이 전문가라서 그 씬에 가장 맞는 각도의 콘티를 짜오기도 하고, 실제로 배우마다 액션이 몸에 붙는 게 다르고 합을 살리는 게 달라서 현장에서 보고 잡는 게 맞는 것 같다. 특히 승유 같은 경우는 액션을 드라마틱하게 살린다. 옷자락이 퍼지는 것까지 굉장히 멋있게 잘 살린다. 컷이 많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윤정: 특히 B팀 연출 감독님의 콘티 스타일이 많이 잘라가는 편이다. 어떻던가. 화면이 단조롭지 않고 역동적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이윤정: 다행이다. 기본적으로 A팀은 진중하다. 불필요한 인서트는 안 쓰고 감정 위주로 가는데, 우리는 이것 저것 많이 한다. 부감도 많이 하고 바닥도 낮게 가져가고. 내부적으로 좀 세다, 좀 더 편안하게 갔으면 좋겠다고 지적해주시기도 해서 찍으면서 걱정도 좀 했다. A, B팀의 연출, 촬영 감독 성향이 좀 다른데, 특히 나랑 박현석 선배랑 우린 너무 B급 정서라 A팀에 누가 되는 게 아닌가 모르겠다고 농담도 한다. (웃음) 조명도 제약이 많을 것 같다. 이윤정: 기본적으로 사극이 현대극과 다른 건 밤 씬의 경우 큰 크레인으로 월광을 하나 띄우고 나머지는 기본 조명으로 가는 건데 A팀에 비해 우리 팀은 월광이 조금 덜 푸르다. 개인적으로 파란 빛보다 유럽 드라마 밤 씬의 초록빛을 더 좋아한다. 유럽 영화랑 한국 영화의 색감이 다른데 이건 대기의 영향이나 피부 톤의 차이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그 청록색을 좋아해서 <화이트 크리스마스> 때는 그걸 기본으로 맞춰서 갔다. B팀 조명 감독님과 따로 상의하진 않았지만 둘 다 너무 블루 톤인 걸 싫어해서 블루는 세지 않게 가는 정도로 합의를 했다. 세트에서도 노 라이트로, 창문 라이트만 두고 역광으로 풀 샷을 잡는다든지 전체에 누가 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약간씩 반항한다. (웃음) <H3>“<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죽을만큼 힘들었지만 정말 좋았던 작품”</H3>“[화이트 크리스마스]의 경우 공간이 제 9의 캐릭터였다”
<화이트 크리스마스>에서 복도에서 학생들이 얘기하는데 머리 위로 형광등 하나만 있는 장면의 그 청록색 톤이 기억난다. 이윤정: 개인적으로 되게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다. 다른 씬들은 내가 미리 얘기하고 조명 감독님이 만들어주신 장면이 많은데, 이건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결정한 게 되게 잘 나와서 기분이 좋더라. 세팅하려고 먼저 가서 보고 있는데 불이 꺼진 느낌이 좋은 거다. 형광등을 켰더니 그린(green) 느낌이 나고. 그래서 이걸 좀 활용해 보자고 했다. 조명을 맡으신 윤명석 감독님이 본인은 굉장히 점잖으신데 조명은 굉장히 날카롭게 나온다. 입봉작으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한 게 즐겁고 의미 있는 경험이었을 것 같다.이윤정: 진짜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돌아보니 정말 좋더라. 엊그저께 뒤늦게 DVD를 받아서 펼치는데 가슴이 쿵쾅 쿵쾅하더라. 지금 보면 창피하기도 하지만 하고 싶은 걸 많이 시도해봤던 것 같다. 카메라를 잡은 지 6년 정도 됐는데 계속 교양, 예능 팀에 있다가 드라마 팀으로 옮긴 지 두 달 만에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맡아서 처음에는 내가 잘 할 수 있을지 다들 걱정했다. 콘티가 어렵고 테크니컬한 면이 많기도 했고. 하지만 8부작을 해내고 나니 평가가 좋았다. 일단 체력적으로 문제가 없구나, 아직 숙련된 것은 아니지만 고민한 룩(look)이구나라고 인정 해주셔서 회사 생활이라는 면에서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해준 작품이다. 사실 그렇게 마니아가 많은 줄은 후반에 가서야 알았다. 처음에는 스토리가 대중적이지 않으니까 누가 보나 했다. 배우들도 대부분 현실감이 없는 모델들인데다 드라마가 전체적으로 기이하게 아름답다는 느낌이었다. 이윤정: 대본 자체가 굉장히 비주얼적으로 쓰여 있었다. 대본 자체에 이거구나 하는 답이 있었다. 떠오르는 이미지들도 명확해서 관련된 레퍼런스도 많이 찾아보고. 고립된 공간의 이야기라 영화 <샤이닝>도 봤고. 눈이 많이 와야 하는데 어떻게 하지 고민하다 <파고>도 봤다. 김용수 감독님의 전작들을 모니터링 했었는데 무빙이 많고 테크니컬한 부분이 커서 옛날 유럽 영화나 히치콕 감독 작품도 많이 봤다. 앵글도 굉장히 과감한 것 같았다. 앵글을 비롯해서 첫 작품이니까 보는 사람이 몰라도 나만의 느낌을 넣고 싶은 부분이 있었을 것 같다. 이윤정: 색깔이다. 얘기했듯 밤 씬의 기본적인 톤을 약간 그린으로 깔고 갔다. 사실 말이 촬영감독이지 아직 내 걸 못 찾은 상태라 앵글로 승부하기는 어렵고, 욕심 안 부리고 원래 관심이 많았던 게 색이었다. 거의 매주 색 보정실에서 선배랑 같이 씬 대 씬으로 콘셉트를 잡으면서 얘기를 했다. 보통은 선배들이 방송에 맞게 잡아주시지만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일반적인 KBS 방송 톤으로는 너무 색깔이 눌려 있고 셌다. 그래도 드라마 내용도 그렇고 시간대도 그러니까 “좀 세게 가보시죠” 라고 말씀드렸다. 내러티브적으로 괴물이 탄생하는 공간으로 학교가 중요한 의미로 등장하는 것도 있지만, 건물을 인물처럼 찍었다는 느낌도 강했다. 이윤정: 공간이 제 9의 캐릭터였다. 일반적인 풀 샷보다 더 와이드한 그림을 많이 잡고 되도록 선도 많이 살렸는데 이건 로케 역할이 컸다. 김용수 감독님이 단순히 멋있고 예쁜 게 아니라 직선이 쫙 쫙 있고, 굉장히 크고 이런 걸 신경 써서 잡았다. 로케가 워낙 공들여서 되었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그걸 정리하기만 하면 됐다. 촬영할 때도 되도록 기본 건물의 선을 그대로 살렸고. 보통 드라마 찍을 때는 공간을 속여 잘라 찍어도 잘 모르는데 있는 공간이나 구조를 살려서 찍는 걸로 얘기를 했다. 1,2회 때는 단렌즈로 한 컷 한 컷 다 따서 찍었다고 들었다.이윤정: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웃음) 처음 대본 봤을 때 너무 좋아서 정말 잠도 못 잤다. 선배들이 보기에는 이게 뭐야, 대중성도 없고 라고 할 수 있지만 내 또래 사람들이 보면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모델들을 한꺼번에 찍어 볼 수 있는 기회가 평생 어디 있겠는가. 나한테 이걸 왜 줬지? 왜 하라는 거지? 너무 좋기는 한데 다른 사람이 하면 더 명작이 될 수 있는데 평작 되는 게 아닐까 하는 부담도 많이 가졌다. <H3>“얌전한 정통 드라마보다 B급 드라마가 더 좋다”</H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