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사실상 지난 달 '경주 선언'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한 채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폐막될 것으로 보인다. 의장국인 한국은 세계 환율 전쟁이 파국으로 치닫던 와중 브레이크를 잡는 역할을 했지만, 결국 방점은 찍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남기게 됐다. 하지만 동아시아 최초의 G20 의장국으로 회의를 무리없이 치렀다는 점, 개발과 글로벌 금융안전망을 양대 축으로 삼은 '코리아 이니셔티브'를 주도해 G20 비회원국들을 아울렀다는 점, 선진국과 신흥국 사이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받을 만한 대목이다.
▲미국 '찬물'… 냉랭한 개막12일 오후 4시 이명박 대통령이 발표할 서울 선언문에서 초미의 관심사였던 '경상수지의 예시적인(indicative) 가이드라인 설정'은 수치를 밝히는 대신 구체적인 합의 시한을 내년도 프랑스 G20 정상회의로 정하는 선에서 절충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합의한대로 국제통화기금(IMF)이 조기경보체계를 마련하는 데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참가국들은 아울러 '시장 결정적 환율제도를 이행하되 경제 펀더멘털이 반영될 수 있도록 환율의 유연성을 늘린다'는 수준의 문구를 정해 각 국에 운신의 폭을 넓혀주자는 데 의견 접근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회의는 미국의 추가 양적완화(돈 살포)로 각 국이 잔뜩 날을 세운 상태에서 개막됐다. 지난 3일(현지시각) 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는 내년 6월까지 총 6000억달러를 풀어 국채를 사들이겠다고 발표했다. 로이터 통신은 7일 "이번 회의는 G20이 아니라, G19+1(미국) 형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환율 전쟁 휴전 선언으로 읽혔던 경주 합의의 빛이 바랬다는 자조도 나왔다. 이런 분위기는 서울 선언문 조율 과정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정상회의에 앞서 바지난 8일과 9일 각각 G20 재무차관, 셰르파 회의가 시작됐지만, 11일 오후까지 협상은 답보 상태에 머물렀다. 협상에 참석한 정부 관계자는 "판을 깨서는 안 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맑은 날씨 속에 바람이 부는 건 사실"이라며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독일 등 전통적인 수출강국들이 경상수지 밴드 설정에 강력히 반발했고, 시장에 환율 맡기자던 경주 선언을 미국이 퇴색시켰다는 지적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자리걸음이던 조율 작업에 속도가 붙은 건 11일 오후 정상들이 만난 뒤부터다. 업무 만찬과 함께 공식 개막된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각 국 정상의 양보와 대리인(Deputy)회의 체크"를 주문했고, 각 국 정상들은 대리인들에게 이런 뜻을 전했다. G20 준비위 김윤경 대변인은 "이후 싸늘하던 분위기가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다"며 "12일 오전 8시 현재 환율 문제 등에 '합의 전망 밝다'까지는 아니어도 '긍정적'이라고는 말할 수 있다"고 했다.
▲공은 이제 프랑스로업무 만찬과 대리인 회의를 통해 작은 걸음을 내디딘 각 국 정상들은 12일 오전에도 '환율'을 첫 메뉴로 올렸다. 오전 8시 20분부터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속속 코엑스 회의장에 들어선 각 국 정상들은 3층 라운지에서 목을 축인 뒤 하루 전보다 한결 누그러진 분위기에서 회의를 시작했다. 전일 업무 만찬때와 같이 '세계경제와 프레임워크Ⅱ'를 주제로 열린 1세션에서 이 대통령은 "G20의 상호평가를 통한 국제공조 강화"를 주문했다. 파리에서 1차 세계대전 종전 행사를 열고 가장 늦게 날아온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도 첫 세션에 합류했다. 2세션에서는 지난 경주 회의와 이달 초 IMF 이사회를 통해 사실상 결론이 난 국제금융기구 개혁과 글로벌 금융안전망을 다뤘다. 회원국들은 IMF 지분 개혁과 국제 금융규제안에 대한 환영 의사를 밝히며 2세션을 마무리했다. 정상들은 2세션 뒤 '패밀리포토(공식 기념촬영)'를 찍으며 잠시 머리를 식혔다. 오전 마지막 일정인 3세션에서는 '코리아 이니셔티브' 중 하나인 '개발' 의제를 다뤘다. 개발 이슈는 이미 100대 행동계획 발표를 통해 성장 친화적인 개발도상국 지원책을 내놓자는 데에 합의가 이뤄져 큰 무리없이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점심 시간에도 회의는 계속된다. 정상들은 전채와 메인, 디저트로 이뤄진 단출한 양식 코스를 즐기면서 비교적 민감도가 덜한 무역과 기후변화·녹색성장 주제에 대해 의견을 모은다. 이 대통령이 거듭 강조해온 '스탠드스틸(Standstill·추가적인 무역보호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 원칙이 재천명되고, 보호무역주의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주류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이후 4세션에서는 금융규제 개혁이, 5세션에서는 에너지·반부패·비즈니스 서밋 결과가 회의 테이블에 오른다. 이 가운데 4세션은 2008년 G20 정상회의 출범의 직접적 배경이 된 금융 위기 종합처방을 다루는 자리다. 앞서 국제기구를 통해 합의를 이룬 '바젤Ⅲ'를 최종 승인하는 시간도 겸하게 된다. 5세션에서는 하루 전 폐막된 비즈니스 서밋 결과를 점검하면서 빈곤층과 중소기업의 금융서비스 접근성 향상에 노력하자는 데에 의견을 모을 전망이다. 모두 5개 세션에서 다룬 논의 내용은 이날 오후 4시 이명박 대통령이 발표할 서울 선언문에 녹아든다. 이어 내외신 기자회견이 진행되면 세계 경제사에 남을 서울 G2O 정상회의가 마무리 된다. 한편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 등은 폐막 후 별도 브리핑을 예정하고 있다. 대부분의 정상은 바로 출국하지만 하루 뒤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 참석하는 일부 정상들은 출국을 미루고 정부가 준비한 특별만찬에 참석하기로 했다. 박연미 기자 chang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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