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투사선발 초창기에는 강제징집
입력2009.11.25 11:23
수정2022.03.08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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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카투사(KATUSA)는 주한 미8군 미군들과 함께 생활하며 임무를 수행하는 한국육군소속의 장병을 말한다.
카투사제도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한국정쟁 당시 미군의 우수한 무기와 한국군이 가지고 있는 지리적 지식 등을 조화시키는 게 필요하다고 느껴 도입했다. 최초의 카투사는 1950년 8월에 강제 징집됐다. 313명의 장병들은 미군 7사단, 1기 병사단, 2사단, 24사단, 25사단에 배치됐다.
카투사가 전쟁에 본격 참가한 것은 인천상륙작전이 개시된 1950년 9월 15일이다. 카투사는 6·25 전쟁 후에는 한국 육군의 기간과 신병 중에서 선발됐다. 이어 1982년 이후에는 선발시험을 통해 공개모집했다. 현재는 육군종합행정학교가 공개모집으로 선발하고 있다.
미군과 카투사 장병들은 체육관을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으며 농구 등 스포츠를 같이 즐긴다.
이들은 신병교육기관인 육군훈련소와 미군훈련소 KTA(Katusa Training Academy)에서 3주간 기본교육을 받는다. 이어 미군의 각급 부대에 배치돼 전투병 등으로 복무한다.
카투사제도를 주관하는 부서는 육군직할부대인 한국군지원단과 미8군 본부다. 한국군지원단과 미8군은 각각 카투사의 인사행정권, 지휘권을 나눠가지면서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카투사장병들과 미군장병들로 구성된 태권도시범단은 정기적으로 미국에서 시범공연을 한다.
카투사장병들이 미군장병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다.
카투사 장병이 미군들과 함께 3단 옆차기 시범을 보이고 있다.
한 미군장병은 “처음 한국에 왔을때 한국군이 미군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신기했다”며 “이제는 나와 같은 군인으로써 자랑스럽다”고 설명했다.
카투사장병 절반이상은 맨츄(MANCHU)마일 행군 2회 이상 완주자들이다.
비글 대대장이 완주한 카투사장병들에게 코인을 전달하고 있다.
미군과 카투사는 5평크기의 방에서 공동생활을 한다. 미군과 카투사장병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국적이 다른 사람이 아닌 같은 군인으로 전우애를 느낀다고 했다.
제대를 앞둔 카투사 장병들이 제대후 입을 군복을 보며 흐뭇해 하고 있다.
4층 건물인 배럭은 숙소 외에 10평 크기의 부엌과 당구, 탁구를 할 수 있는 방이 있었다. 이곳은 카투사와 미군이 일과 외 시간에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사진제공=KODEF 손민석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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