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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시대]"내 꿈은 건강한 부자 할머니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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⑬'홀로 노후' 준비하는 비혼 2030
비혼인 모여 부동산·재테크 공부
비혼 커뮤니티 소모임 만들기도

편집자주결혼이 필수가 아닌 세상. 비혼을 선택한 이를 만나는 것은 낯선 경험이 아니다. 누가, 왜 비혼을 선택할까. 비혼을 둘러싼 사회의 색안경만 문제는 아니다.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막연한 시선도 존재한다. 이른바 '비혼 라이프'의 명과 암을 진단해본다.
[비혼시대]"내 꿈은 건강한 부자 할머니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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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을 결심한 사람들의 삶은 어떨까. 사실 20·30세대 비혼인들의 일상은 직장을 다니고 가족, 친구, 애인과 여가를 보내는 등 결혼을 앞둔 다른 사회 초년생들과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혼자 사는 미래를 대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20·30세대 비혼인들은 "젊을 때야 좋지, 늙으면 후회할 것"이라는 비판적인 시선에 맞서며 무사히 할머니·할아버지로 늙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비혼을 결심한 정지현씨(30)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집을 구매하는 일이었다. 다달이 월세가 나가는 집은 집주인의 배만 불릴 뿐 돈을 모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치하거나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 코인 투자를 한 것도 아닌데 집값이 비싼 서울에서 월세로 사는 것만으로도 지현 씨는 거지가 되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청약과 대출 등 주거 정책은 주로 신혼부부와 다자녀 가정에 유리했지만, 다행히 지현 씨는 성실한 직장인이었다. 30년 만기 대출을 받아 경기 지역에 25평짜리 아파트를 구매했다. 자가는 주거의 목적과 함께 자산으로서의 가치도 갖고 있다고 본 것이다.


"저에게 25평 아파트를 샀다는 건 앞으로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과도 같아요. 결혼이나 출산 같은 변수가 없다 보니까 미래가 분명히 그려졌어요. 결혼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누구랑 살게 될지도 모르고 상대방의 니즈랑도 맞춰가야 하고, 그러다 보면 지금 나이에 집을 매수하겠다는 결정을 쉽게 하지는 못했겠죠."

[비혼시대]"내 꿈은 건강한 부자 할머니 되기" 지현 씨는 자신의 25평 아파트에서 제일 큰 방을 사무실로 꾸몄다. [이미지제공=지현 씨]

자신만의 공간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도 있었다. 자기를 '낀 딸'이라 소개하는 지현씨는 유년 시절 언니와 동생에게 방을 빼앗겨본 애달픈 기억이 있다. 그래서 3인 가구에 적합하게 설계된 방 세개짜리 아파트를 1인 가구에 맞게 구성하는 일조차 즐거웠다. 재택근무를 하는 데다 새로운 취미로 글쓰기를 시작한 지현씨는 가장 큰 방을 사무실로 꾸몄다. 그는 혼자만의 방에서 비로소 내가 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그리고 집을 갖고 싶은 비혼 친구 다섯이 모여 재테크 공부를 시작했다. 이른바 '큰 그릇 유니온'이다. 이름은 멤버 중 한명이 집을 사고 싶다고 말하자 "네 그릇을 알아야지!"라고 잔소리한 친척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큰 그릇 유니온 멤버들은 이른바 '금융맹'이었다. 주식에 투자하면 막대한 빚을 지고 거리로 나앉을 것만 같았고, 빚이라면 무조건 나쁜 것인 줄로만 알아왔다. 지현 씨는 그 흔한 학자금 대출도 받아본 적 없었다. 사회초년생 딱지를 뗄 때가 돼서도 돈 굴리는 법을 모른다는 게 원통했다. 간장 종지처럼 콩만한 심장을 가졌던 이들은 이제 "내 그릇은 내가 정하겠다"는 당찬 포부와 함께 재테크를 배워가고 있다.


"막상 집을 사려고 하니까 부동산을 좀 알아야겠는데 처음엔 아무것도 모르겠더라고요. 혼자 하면 느슨해지기 쉬우니까 의욕을 다지기 위해 실거주용 주택을 사고 싶어하는 친구들을 모았죠. 부동산에 대한 관심을 넘어 경제 전반에 관심을 잃지 않으려고요. 지금은 대부분 멤버가 집을 샀어요."
[비혼시대]"내 꿈은 건강한 부자 할머니 되기" '큰 그릇 유니온' 멤버 조조(닉네임)가 부동산 관련 서적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이미지제공=지현 씨]

고독사? 비혼인도 '나만의 가족' 만들 수 있어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은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때론 외로울 수 있지만, 1인 가구에 고립이 치명적인 위협인 것은 사실이다. 혼자 살던 사람이 문이 고장 나는 바람에 화장실에 갇힌 채 숨졌다는 뉴스를 보면 심장이 선득해지기도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화장실에 갈 때는 늘 문을 열어두는 게 습관이 됐다거나 화장실에 망치를 갖다뒀다는 글도 종종 올라온다.


그래서 비혼인들은 느슨한 연대를 강조한다. 고립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생존의 방법이다. 올해로 21년째 비혼 공동체 생활을 이어간다는 전북 전주의 '비비'(비혼들의 비행), 70대 노년 여성 세 명이 함께 사는 '노루목향기' 등 기혼이 주류인 시대에 결혼 안 하고도 잘 살아온 선배 비혼인들이 훌륭한 롤모델이 되어줬다.


수도권에 사는 직장인 김모씨(28)는 '나만의 가족'을 만드는 게 꿈이다. 다만 그 결합 수단이 결혼은 아니다. 지금은 혼자 사는 생활에 만족하고 있고, 혼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고 있지만 언젠가 마음이 맞는 누군가와 함께 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비혼이라고 해서 꼭 혼자 살 필요는 없잖아요? 결혼하지 않더라도 애인과 동거할 수도, 친구와 함께 살 수도 있겠죠. 혈연이 아니어도 평생을 함께할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면서 점차 가족이 되어 가는 거죠."

[비혼시대]"내 꿈은 건강한 부자 할머니 되기" [이미지출처=픽사베이]

비혼인들만의 커뮤니티도 있다. 비혼 여성들을 위한 애플리케이션 'Femily'(페밀리)에서는 '축구 클럽', '독서 모임', '개발자·코딩러 모임' 등 다양한 소모임이 운영되고 있다. '비혼 메이트' 게시판에서 함께 살 동거인을 모집할 수도 있다.


지현씨도 페밀리를 통해 농구 친구를 사귀었다. 인근에 사는 주민 여럿이 모이니 동네에 초급 농구 수업도 생겼다. 비어있는 농구 코트와 "농구는 신장이 아니라 심장으로 하는 것"이란 명대사가 이들의 마음을 끌었다. 지현씨 꿈은 언젠가 '160 농구단'을 결성하는 것이다. 가입 조건은 '신장 160㎝ 이하 여성'이다.


누군가는 비혼을 결심한 이들이 초라하고 외로운 노년을 보낼 것이라고, 언젠가는 후회하게 될 것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비혼인들은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린 이들이 철저한 노후 대비도 없이 말년을 보내다 객사할 리 없다고 믿는다.



이들의 꿈은 건강하고, 부유한, 멋진 노인이 되는 것이다.




박현주 기자 phj032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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