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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판사 검사 위에 해운 선사"[특파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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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판사 검사 위에 해운 선사"[특파원 칼럼]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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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뉴욕=백종민 특파원] "의사·판사·검사 위에 해운 선사가 있다." 얼마 전 만난 한국 기업 뉴욕 법인장이 한 말이다. 그는 현재의 해운 물류 상황을 보여주는 데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없다면서 이 표현이 해운 업계 관계자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전했다.


기자도 이 말을 듣고 최근의 물류난으로 인해 선사 관계자들의 위상이 ‘금값’으로 치솟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한 공기업 관계자도 국내 관련 산업 수출 지원을 위해 선사 관계자와의 만남에 특히 공을 들였다고 했다. 예전 같았으면 공기업이 선사의 ‘갑’이었을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계기로 나락에 빠졌던 해운업은 지금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한국 대표 컨테이너선사 HMM을 비롯해 전 세계 1위인 덴마크의 머스크, 2위인 스위스 MSC, 3위 중국 COSCO, 4위 프랑스 CMA GSM은 쏟아지는 돈다발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다.


반대로 수출과 수입 기업들은 가슴이 타들어 간다. 코로나19 사태로 곳곳에서 공급망이 무너지는 중에 항만 물류까지 병목 현상을 빚으며 운송 차질은 물론, 엄청나게 치솟은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한 굴지의 국내 대기업 법인장이 치솟은 물류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며 차라리 항공 운송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언급한 것이 현지 지상사 모임에서 화제가 됐을 정도다.


해운 물류비는 철저히 자본시장의 논리가 적용됐다. 해운 물류비는 2008년 이후 국제 무역 감소와 선박 과잉 현상 속에 원가 이하에 형성됐다. 철저히 매수자 우위의 시장이었다. 선사들은 철저히 을의 위치로 밀려났다.


코로나19 이전까지 수천 달러대이던 중국~미국 서부까지의 컨테이너 운임이 2만달러까지 치솟은 것이 과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한 관계자는 "그동안 원가 이하의 낮은 운송비를 생각해 달라"고 말했다. 10년 이상의 위기 극복 노력 끝에 맞이한 기회라고 설명한다.


그렇다고 선사들의 지위가 영원히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하기 힘들다. 지금의 상황은 극히 이례적이다. 코로나19가 만들어낸 ‘회색 코뿔소’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선사들의 입지도 축소될 것이 분명하다. 인간계를 벗어나 신계로 접어들었던 선사 관계자들의 위상도 다시 인간계로 돌아올 것이다.


이미 변화의 조짐이 목격된다. 해양 조사 회사인 드루어리에 따르면 독일계 하파크로이트와 프랑스계 CMA CGM은 지난 9월 운임을 동결했다. 하파크로이트는 운임이 정점에 도달했기 때문에 동결했다고 밝혔고, CMA CGM은 유례 없는 상황을 고려할 때 고객과의 장기적인 관계를 우선시했다고 전했다. 선사들이 스스로 달라진 위상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고객과 공생하지 않고는 선사들의 미래도 언제든 역전될 수 있다. 상황은 돌고 돌기 마련이다.


원양 항해를 하는 컨테이너 선박에 탑승한 승무원들은 고독하기 마련이다. ‘마도로스’들의 숙명이다. 고객들이 생산한 화물을 배에 선적하고 험한 파도와 세찬 바람을 헤쳐가며 다른 대륙으로 나르는 그들은 지금껏 전 세계 경제와 물류를 잇는 근간이라는 자부심으로 버텨왔다.


그들의 노력에 적절한 보상을 하는 건 당연한 이치다. 어찌 보면 우리가 지금껏 마도로스들도 희생을 지나치게 낮게 평가해온 것일 수 있다.



신계에 입적한 마도로스들이 인간계로 내려와 화주들과 함께 소주 한잔을 할 수 있는 날이 전 세계 경제가 정상화하는 날이 아닐까.




뉴욕=백종민 특파원 cinqang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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