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2000년대 초부터
인력부족 해소하겠다 공언
작년 기준 공정인력 1810명
연구·설계 1013명 부족 추산
배터리 생태계 전반 인력수급상황
내달까지 사실상 첫 전수조사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주요 임원진이 먼 이국까지 날아가 리크루팅 행사를 연다. 회사의 장점을 알리고 다양한 유인책도 내놓는다. 20년도 더 된 외환위기 이전 국내 대학가에서 볼 법했던 리크루팅 풍경이다. 최근에는 대학이 손잡고 따로 학위 과정을 만드는 것은 물론 아예 따로 교육기관을 만든 기업도 생겼다. 구인난에 허덕이는 배터리업계가 쥐어짜내고 있는 고육책이다.
짧은 기간에 산업이 급격히 성장할 때 인재를 구하기 어렵다는 호소는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다. 1990년대 후반 일본 기업을 중심으로 2차전지를 본격적으로 개발·상용화하고 이내 가전 산업을 중심으로 커진 배터리 산업은 최근 전기차·에너지저장장치(ESS) 산업 성장에 힘입어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다.
기후변화·탄소중립에 대처하기 위해 전기차 보급에 소매를 걷은 데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커지면서 전력을 저장했다 가져다쓰는 ESS 수요처가 급증하면서다. 시장조사기관 IHS마킷에 따르면 2025년이면 2차전지시장이 메모리반도체를 넘어설 전망이다. 메모리반도체 단일품목 하나가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2.5%(2020년 기준) 수준인데, 앞으로 우리나라의 차세대 먹거리로 배터리가 수위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관건은 인재공백을 얼마나 빨리 메울 수 있는지다. 한국전지산업협회장으로 있는 전영현 삼성SDI 사장을 비롯해 주요 기업 CEO는 그간 공식·비공식석상에서 인력 확보를 위해 정부가 적극 나서주길 요청했다. 기본적으로 화학물질을 다루는 까다로운 분야인 데다 다양한 분야에 걸쳐 연구개발이 뒷받침돼야 해 단기간 내 숙련된 인력을 여럿 배출하기 쉽지 않은 분야로 꼽힌다.
폐배터리 재활용, 배터리 원료 등 상대적으로 국내 기반이 약한 분야도 성장세가 큰 만큼 인력수급은 전방위에 걸쳐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전지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부족한 인력은 연구·설계인력(석박사급)이 1013명, 공정인력(학사급)이 1810명 정도로 추산됐다. 정부는 지난 7월 범정부 차원의 배터리산업 지원대책을 내놓으면서 연간 1100명+α 수준으로 전문인력을 키워내겠다고 했다.
배터리 업계의 시선은 우려 반, 기대 반이다. 걱정하는 쪽은 정부가 2000년대 초반부터 배터리 산업 인력을 늘리겠다고 공언했으나 20년 가까이 인력부족이 해소되기는커녕 더 나빠진 점을 든다. 앞서 정부는 2003년과 2010년 2차전지 산업 육성을 위해 대규모 인력양성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당시에도 전체 종사자를 수천, 수만 명 수준으로 늘린다거나 전문인력을 10년간 1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했었다.
반면 시장 규모가 과거에 견줘 훨씬 커진 만큼 이번에는 인재를 끌어들일 만한 여건이 나아졌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LG·SK CEO가 최근 미국에서 진행한 채용설명회엔 수백 명이 참석해 관심을 보였다. 구회진 전지산업협회 사무국장은 "아직 초기 분야인 만큼 인력 수요와 공급 불일치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며 "전문교육과정을 감안하면 일선 현장에 투입하기까진 1~2년이 걸리는 만큼 빨리 적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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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업계 차원에선 인력 현황을 더욱 샅샅이 파악하기 위한 실태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각 산업 분야별로 인력양성을 돕는 인적자원개발협의체(SC, Sector Council, SC)에 최근 2차전지를 선정한 후 첫 과제로 국내 배터리 생태계 전반의 인력 수급상황을 구체적으로 따져보기로 한 것이다. 배터리 생태계 인력과 관련한 사실상의 첫 전수조사다. 이명규 전지산업협회 팀장은 "협회 회원사를 비롯해 전·후방 산업 전반에 걸쳐 기초현황을 비롯해 향후 전망 등 다각도로 살펴볼 것"이라며 "조사 결과는 내부 논의를 거쳐 내년 4월 전후로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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