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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 에셜론과 화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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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 냉전시대의 괴담으로 여겼던 '에셜론(ECHELON)'의 실체가 드러난 것은 1988년이다. 냉전시대 공산권 도감청에 이용하기 위해 만든 이 시스템은 전 세계 통신망에서 '테러' '폭탄' 등의 특정 키워드를 수집한 뒤 도감청을 실시한다. 10년 뒤인 1998년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에서는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당시로서는 최첨단 기기인 위치추적 및 도감청 장치를 총동원하는 장면이 등장했다.


'에셜론'은 2013년 6월 NSA에서 근무했던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기정사실화된다. 스노든은 NSA가 '프리즘'이라는 프로그램으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불법 사찰을 진행해왔다고 폭로했다. 미국 정부가 구글, 애플, 페이스북의 서버에 접근해 개인정보를 열람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함께 공개된 NSA의 도감청 기밀문서로 에셜론은 무려 25년 만에 그 실태가 드러났다.


당시 스노든의 폭로를 가장 먼저 보도한 탐사 저널리스트 글렌 그린월드는 저서 '스노든 게이트'를 통해 "미국 정부는 인터넷을 자유로운 소통의 장이 아닌 전방위적 감시, 통제 체제로 바꿔 놓았다"고 비난했다. 과거 통신보다 더 방대한 양의 정보를 공유하고 자신의 일생, 일거수일투족을 스마트폰을 통해 구글이나 애플의 서버에 저장하고 있는 스마트폰 사용자들에게는 공포에 가까운 일이다.


6년이 지난 현재 미국 정부는 화웨이의 5G 장비를 놓고 보안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화웨이가 5G 장비를 비롯한 네트워크 장비 제품에 백도어를 심어 놓고 정보를 빼돌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화웨이는 증거가 없다며 맞서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네트워크 장비에서 백도어를 찾아내는 일은 직접 만든 사람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백도어가 없다고 해도 장비, 또는 단말기 제조 업체가 마음만 먹으면 보안을 해제하고 데이터를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과거 에셜론을 음모론으로 치부했던 미국 정부는 "현재 기술로는 그런 수준의 도감청이 불가능하다"고 답변했지만 스노든의 폭로로 모든 것을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화웨이 네트워크 장비의 보안 논란은 백도어 유무와는 큰 관계가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오히려 현 시점에서는 화웨이가 어떤 회사인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다. 화웨이의 실질적 주인, 중국 정부와는 어떤 관계인지가 문제의 핵심이다.


지구상 대부분의 회사는 주인이 명확하다. 개인이 소유하고 있거나 주식시장에 상장돼 주주들이 소유하는 형태다. '회사의 주인이 누구냐는' 어느 것보다 더 쉬운 질문에 화웨이는 제대로 답변을 못하고 있다.


최근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로스쿨의 도널드 C 클락 교수가 베트남 풀브라이트 대학 크리스토퍼 볼딩 교수와 함께 작성한 '도대체 화웨이의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화웨이는 비상장회사로 창업자인 런정페이 회장은 단 1%에 불과한 지분만 갖고 있다. 직원들로 구성된 무역노조위원회가 나머지 99%를 갖고 있다지만 실체가 불분명하다. 화웨이 노조는 중국 선전 지방정부의 노조에 등록돼 있다. 조합원은 회사를 떠날 때 지분 전량을 노조에 팔고 떠나야 한다. 외부인이 주식을 소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화웨이는 직원들이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직원들은 단지 지분을 보유만 할뿐 경영상의 어떤 권한도 없다. 창업주 런정페이 회장이 1%의 지분으로 화웨이를 지배할 수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화웨이는 중국 정부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마저도 석연치 않다.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의 사례를 보면 중국 정부는 외자 기업들의 경영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중국 최대 ICT 기업인 화웨이가 중국 정부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해명 자체를 신뢰할 수 없는 이유다




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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