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퍼드大 '데이트 드롭' 열풍
노벨상 '매칭이론'이 연애 설계
최적화된 커플…실종된 설렘
요즘 미국 스탠퍼드대 기숙사에선 화요일 밤 9시마다 수백 명이 동시에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연인이 될 만한 사람을 소개해 주는 애플리케이션(앱) '데이트 드롭(Date Drop)'이 그 시각에 단 한 명의 운명의 상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앱을 만든 건 학생회장 마다브 프라카시와 컴퓨터공학 석사과정의 헨리 웽 등 재학생 4명이다. 그중 앱 개발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웽의 전공은 '매칭(짝짓기) 이론'이다. '가격'이 아닌 '선호도'를 우선한 알고리즘으로 '장기 이식자 연결' '학교 배정' 등 현실 문제를 해결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매칭 이론'이 '연애 대상 찾기'에도 힘을 발휘한 셈이다.
데이트 드롭은 출시한 지 반년 만에 스탠퍼드대 학부생 7500명 중 5000명이 가입했다. 지금도 하버드·컬럼비아·MIT 등 미국의 명문대로 유행이 번지고 있다. 벌써 30억원의 초기 투자금을 유치했고 제2의 페이스북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이 앱의 구조는 단순하다. 가치관·정치 성향·인생 목표·소통 방식 등 66가지 질문에 답하면, 알고리즘이 매주 화요일 밤 9시에 앱 사용자 중에서 딱 한 명을 추천한다. 상대의 얼굴은 실제로 만나기 전까지 알 수 없고 일주일 동안 그 한 명과만 대화할 수 있다. 틴더 같은 기존 데이팅 앱들은 외모를 보고 좌우로 사진을 넘기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더 많은 상대를 보려면 돈을 주고 무제한 선택권을 구매해야 했다. 웽은 "외모 자랑하기 프로필과 무제한 선택권의 피로를 없애고 싶었다"고 했다.
왜 이렇게 인기를 얻는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요즘의 젊은 세대에게 연애는 하나의 거대한 리스크이자 비용이다. 고백 한 번 잘못했다가 학과 생활이 어색해질 수도 있고 헤어진 연인과 얽힌 인맥이 거슬릴 수도 있다. 데이트 폭력, 로맨스 피싱 등 범죄도 걱정이다. 무엇보다 학업, 스펙 쌓기에 바쁜 대학생들에게 '자연스러운 만남 추구'는 이미 사치이리라. 그런데 'AI 알고리즘이 적당한 상대를 매주 화요일에 골라준다'는 일상 루틴이 생긴다면 연애는 충분히 관리 가능한 수행 과제가 된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대화를 나누던 이들이 실제로 만나는 장면에서 머릿속 상상은 일시 멈춤 된다. 알고리즘이 골라준 상대를 최적의 인연이라 부를 수 있는 건지 사실 모르겠다. 66개 질문에 성실히 답하며 자신을 프로파일링하는 행위가 '나를 올바르게 표현하는 것'인지, 또 다른 방식으로 '나를 포장하려는 것'인지도 헷갈린다. 성격, 취향이 다르지만 찰떡같이 잘 사는 커플도 실재하지만 이같은 알고리즘에선 불가능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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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마저 최적화하려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정작 부족한 것은 더 나은 알고리즘이 아니라 불완전한 나 자신을 들고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용기다. 연애란 불합리와 불편을 필수적으로 동반한다. 앞뒤 재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보여줬다 거절당하는 좌충우돌식 경험이 '비효율'로 필터링되는 세상에서 우리가 진짜로 잃는 것은 무엇일까. 질문을 통해 검증한 인연, 거절당할 확률이 계산된 만남에서 '설렘'이라는 걸 찾을 수 있을까. 생각할수록 좀 씁쓸하다.
박충훈 콘텐츠편집2팀장 parkjov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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