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조직·눈치에 갇힌 법정
법관들 “절차 더 늘어질 것”
판결도 ‘위험 관리’ 대상
이미 길어진 법정의 시간
지연된 정의…피해는 국민 몫
"□□지법은 2월 검사 인사 직후 무죄 선고가 많습니다. 계속 얼굴 보던 검사에게 무죄를 선고하긴 부담스럽지 않겠습니까."
A검사는 공판검사 시절 '무죄율 관리' 압박을 받았다고 했다. 무죄율이 전국 평균을 웃돌자 지청장은 이를 낮추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는 '유죄 철통방어'를 했다. 판사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쟁점을 설명하고 공소유지에 힘을 쏟았다. 그해 3월부터 12월까지 무죄는 단 한 건도 나오지 않았다.
판결은 법전 위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인사, 조직, 통계, 여론까지 다양한 변수들이 작용한다. 법조계에서는 1·2월 선고 건수가 눈에 띄게 줄어드는 현상을 우연으로 보지 않는다. 전보 인사와 맞물린 시기엔 KTX역에서 먼 법원으로 발령난 판사에게 로펌 영입 제안이 쏟아지고, 고등부장보다 초임 어쏘 변호사(로펌에 고용된 변호사)의 보수가 더 높은 현실 속에서 법원을 떠나는 선택도 이어진다. 판사 역시 위험과 보상을 계산한다.
'사법개혁 3법'이란 대형 변수가 더 생기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판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절차가 무한정 늘어질 것"이라며 "기일을 뒤로 미룬다고 처벌을 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했다. 법관 입장에서 보면, 민원이 많거나 정치적 파장이 큰 사건, 상급심에서 뒤집힐 판결은 저어하게 된다. 법왜곡죄를 피하기 위해서다. 다음 인사 때까지 사건을 미루고 또 미루는 것이다. 소신 있는 판결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재판 지연을 처벌할 수 있을까. 이미 법정은 증거 서면 수백 쪽, 증인 대량 신청, 재판부 기피, 갱신 절차 반복 등 으로 '절차적 정의의 늪'에 빠져있다. 실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 남용 1심은 재판부가 전원 교체된 뒤 박병대 전 대법관 측이 기존 증인신문 녹음파일 전부를 재생하자고 요구했다. 약 7개월이 재생 절차에만 소요됐다. 재판은 사실상 멈췄다. 재판소원까지 도입되면 종국적 처분까지 가는데 10년은 거뜬히 걸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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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을 14명에서 26명으로 늘리면 상고 적체가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그러나 상고 허가 기준이 완화돼 사건은 폭증할 거란 예상이 많다. 사법부 신뢰 저하는 일리가 있다. 다만 제도가 또 다른 가치를 약화시키지 않을지, 냉정한 판단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1심 재판에 소요되는 시간은 민사 420.1일 형사 223.7일이다. 10년 만에 민사는 반년, 형사는 2개월 더 늘어났다. 판결을 더 엄격하게 통제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지연된 정의를 부른다면, 그 비용은 국민이 부담해야 한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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