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사이 대통령 2명 탄핵
민주주의 운영 방식에 경고음
내란 프레임이 지배하는 선거
사라진 협치…흑백정치 심화
개헌 없는 반성 또 다른 위기
"윤석열을 무기징역에 처한다." 12·3 비상계엄 이후 443일 만에 내려진 법원 판결이다. 이로써 사법적 판단은 일단락되는 듯 보이지만 정치·사회적 파장은 계속될 전망이다. '내란'은 이미 거대한 정치적 프레임이 됐고, 그 향방은 6·3 지방선거에서 다시 한번 터질 것이다.
수천 개 자리를 놓고 만 명도 훌쩍 넘는 후보가 난립해 경쟁하는 전국 단위 선거에서 이보다 단순·강력한 이슈가 또 있을까. 흑백논리가 판치고 감정과 선동이 이성적 판단을 뒤엎는 선거판에서 이슈를 선점한 쪽이 유리한 것은 당연하다. 국면 전환의 비장함을 보여주긴커녕 '내란'에 대한 입장으로 집안싸움이나 하는 야당도 한몫 거들고 있다.
문제의 직접적 발단은 분명 비상계엄이다. 몇 시간 만에 종료된 '허술한' 조치였지만 후폭풍은 정권 붕괴와 국가 질서 재편으로 이어졌다. 대통령이었던 사람과 그가 감옥에 보내려던 사람의 위치가 한순간에 뒤바뀐 일은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보기 드문 장면이다. 그것도 G20에 속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열을 자랑하는 나라에서 말이다.
이미 우리는 두 차례 대통령 탄핵이란 전례를 갖고 있다. 탄핵소추까지 포함하면 세 번째다. 자료를 뒤져봐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 최고 지도자가 실제로 탄핵 파면된 사례는 20명도 안 된다. 237년째 대통령제를 유지해 온 미국과 서구 의회민주주의 국가들에서도 예를 찾기 어렵다. 한국이 10년 사이에 두 차례나 이런 일을 겪었다는 건 엄중한 경고다. 특정 인물의 실패라기보다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과 제도 운영에 문제가 있다는 증표다. 잘못된 굴레를 벗어던져야지 언제까지 남 탓만 하고 있을 것인가.
한국 정치의 특징은 극단적 대립이다. 갈등을 완화하고 타협을 이끌어내야 할 정치가 오히려 갈등과 대립을 증폭시키는 장치처럼 작동한다. 특히 대통령 선거는 모든 수단이 총동원된다. 5000만 국민이 격렬한 대립의 늪으로 빠져들어 심리적 내전 상태를 방불케 한다. 선거가 끝나면 이긴 자는 입으로만 통합을 외칠 뿐 모든 것을 독차지한다. 패배한 쪽은 정치적 배제와 상실을 곱씹으며 설욕 기회만 노린다. 승자독식 구조는 국민을 갈라놓는 진영대결의 극심한 원천이다.
이 구조는 국회에서도 반복된다. 집권당이 다수를 차지하면 의회는 정부의 거수기나 심부름센터로 전락하고, 반대로 여소야대가 되면 국정은 마비 상태에 빠진다. 국가의 두 축인 입법부와 행정부가 사사건건 대립하고 어깃장을 놓는 모습이 어제였다면, 입법을 군사작전하듯 밀어붙이며 반대 의견을 원천봉쇄하는 일은 오늘의 현실이다. 협치의 제도적 기반과 정치 문화가 취약한 상황에서 다수결은 곧 힘의 논리로 변질된다. 대권을 (계속) 잡고 집권하기 위해서라도 국회는 반드시 이겨야 할 전략적 승부처가 됐다. 민족·종교 분쟁이 없는데도 갈등지수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면 정치 갈등을 유발하는 잘못된 제도 탓이다.
그 핵심엔 한국 특유의 5년 단임 대통령제가 있다. 서구식 의원내각제도, 연방제 국가인 미국식 대통령제도 아니다. 한 번의 선거로 모든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결되지만 견제 장치와 보완 조치, 책임을 묻는 절차는 미미하고 미비하다. 임기는 성과를 내기엔 짧고, 권력을 행사하기엔 충분하다. 초반엔 전임 정권과의 단절에 매달리고, 후반엔 차기 권력 구도 형성으로 레임덕에 빠진다. 안정적으로 국정을 추진할 수 있는 기간은 2년 남짓이다. 그 사이 총선이나 지방선거가 치러지면 국정은 또 포퓰리즘에 휩쓸린다.
이러한 구조는 대통령 개인의 성향과 무관하게 제왕적 권력과 조급한 정치 행태를 낳는다. 장기 비전보다 단기 성과에 집착하게 만들고, 정치적 위기나 그 반대 상황에선 극단적 선택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계엄령, 비상조치, 집권 연장책 모두 같은 범주에서 이해할 수 있다.
결정적 책임은 개인의 판단 오류에 있지만, 권력 집중의 폭이 지나치게 큰 제도가 문제다. '대통령은 내 손으로'란 국민적 열망을 급히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권력 설계에 대한 치밀한 성찰이 부족했다.
대통령을 견제할 국회가 역할을 포기하면 민의는 왜곡되고 대통령은 제왕적 권한을 행사한다. 재판이 걱정인 대통령 심기를 헤아려 사법부를 옥죄는 법안들이 국회에서 속속 처리된다. 대법관 수를 임기 내에 늘려 대법원을 대통령 사람으로 채우고, '잘못된' 판결에는 책임을 묻겠다는 법왜곡죄로 판사가 양심보다 정치 눈치를 보게 하고, 불복 판결은 다시 헌법재판소로 가져가는 4심·5심제 추진으로 삼권분립의 근간이 흔들린다. 대통령사건의 공소 취소 요구도 마찬가지다. '수권법'으로 삼권을 장악했던 나치 히틀러 시대가 아닌, 오늘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제왕'의 권한을 누렸던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불행한 말년을 맞았다. 권한이 클수록 더 그랬다. 정치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행태들을 이미 다 보아왔다. 대통령의 불행은 개인의 비극을 넘어 국가의 불행으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집권한 대통령들이 스스로 권한을 축소하는 '착한' 개헌을 추진할 담대함이 없었다. 권력이 약해진 임기 말에야 개헌론이 등장하지만 정치적 동력이 받쳐주지 못했다. 이래서 대한민국은 미래를 잃고 서서히 저무는 것이다.
이제 질문은 분명하다. 우리는 또다시 같은 비극을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제도를 바꿀 것인가. 핵심은 '제왕적 대통령제와의 결별'이다. 권력을 분산하고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헌정 구조를 재설계하지 않는 한,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갈등과 충돌, 비극은 불가피하다. 국회 역시 권한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세계 대부분의 민주국가가 권력 분산형 체제를 택한 이유는 한 사람에게 집중된 권력은 언제든 국가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특정 정치인의 실패로만 치부한다면 우리는 또 다른 위기를 예약하는 셈이다.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구조다. 핵심은 놔둔 채 주변만 고치자는 주장은 순진하고 위험하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권력구조가 민주적으로 제대로 배분돼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제와 작별할 때, 제왕은 사라지고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오래 받는 참 지도자가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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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 전 국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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