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절단 엔터·콘텐츠 수장 집결
문화 교류 복원 '속도 조절' 공감대
韓 "단계적 교류" vs 中 "질서 있게"
2016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로 촉발된 중국의 '한한령(한류 제한령)'이 10년 만에 걷힐 조짐을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의 국빈 중국 방문에 국내 문화·콘텐츠 업계 수장들이 대거 동행하면서다. 단순한 인적 교류를 넘어 10년간 단절됐던 한중 문화 산업의 파이프라인이 다시 연결될지 업계의 이목이 쏠린다.
7일 재계와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따르면 이번 방중 경제사절단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4대 그룹 총수 외에도 문화 콘텐츠 기업과 연예기획사 대표들이 이름을 올렸다. 손경식 CJ그룹 회장, 장철혁 SM엔터테인먼트 대표, 김창한 크래프톤 대표, 최용호 갤럭시코퍼레이션 대표 등이다.
CJ와 SM은 한한령 이전 중국 시장에서 전성기를 누렸던 전통의 강호다. 크래프톤은 게임 '배틀그라운드'로 중국 내 막대한 이용자층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신흥 강자인 갤럭시코퍼레이션이 합류하며 사절단의 무게감을 더했다. 이는 '문화강국 실현'을 핵심 국정 과제로 내세운 현 정부의 기조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가요계 중견 관계자는 "과거 경제사절단이 제조업 위주였다면 이번에는 콘텐츠 기업 비중이 눈에 띄게 늘었다"며 "중국 역시 내수 경기 부양을 위해 한국의 고품질 콘텐츠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분석했다.
특히 주목받는 인물은 1989년생(37세)인 최용호 갤럭시코퍼레이션 대표다. 사절단 내 최연소 최고경영자(CEO)인 그는 이번 방중에서 기존 한류와는 차별화된 전략을 제시했다. 단순히 소속 아티스트를 중국 무대에 세우는 방식이 아닌 인공지능(AI)과 메타버스 기술을 결합한 '엔터테크(Enter-tech)' 모델을 앞세웠다. 중국이 최근 국가적으로 육성 중인 AI 로봇 산업과 한국의 창의적 지식재산권(IP)을 결합하겠다는 복안이다.
갤럭시코퍼레이션은 지난해 10월 중국 최대 음악 플랫폼 '텐센트뮤직엔터테인먼트'와 가수 지드래곤의 중화권 월드투어 계약을 체결하며 실질적인 성과를 냈다. 최 대표는 전날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비즈니스 포럼에서 중국 현지 파트너사들과 AI 아바타 기술 제휴 등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차원의 지원 사격도 이어지고 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2일 한중 정상회담 브리핑에서 "양국 정상이 문화 콘텐츠 교류를 점진적, 단계적으로 복원해 나가기로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정상 차원에서 '문화 교류 복원'을 공식화한 것은 이례적이다.
중국 정부 역시 원론적 차원에서 보조를 맞췄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6일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 문화 콘텐츠 수입 확대 여부를 묻는 취재진에게 "한중 양국은 건강하고 유익한 문화 교류를 질서 있게 전개하는 데 동의한다"고 답했다. 급격한 개방보다는 질서와 단계를 강조하며 양국이 속도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낙관은 시기상조다. 중국 정부는 "한한령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K팝 공연 허가 지연 등 보이지 않는 장벽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은 5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한한령이 이번 방문으로 즉시 해제되느냐'는 질문에 "약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중국 측과 신뢰를 쌓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며 "이번 방문이 그 신뢰의 첫 단추가 될 것이며 신뢰가 두터워지면 장기적으로 문이 완전히 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장의 전면적 개방보다는 민간 교류를 통한 단계적 회복에 무게를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방중을 계기로 중국 콘텐츠 전략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과거처럼 한국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수출해서 수익을 내는 구조는 이제 유효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장철혁 SM 대표가 이번 방중 기간 중국 현지 합작 법인 설립 가능성 등을 타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크래프톤 역시 중국 텐센트와 기술 협력을 강화하며 현지 규제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다.
이번 경제사절단의 방중 성과는 향후 수개월 내에 가시화될 전망이다. 중국 당국이 한국 대형 가수의 스타디움 투어를 허가하고 한국 게임에 대한 판호(서비스 허가권) 발급을 대폭 확대할지가 한한령 해제의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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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기획사 관계자는 "중국 엔터 시장은 지난 10년간 자체 아이돌 육성 시스템을 갖추며 성장했다"며 "단순히 한국 가수가 가서 노래하는 방식보다는 기술을 매개로 한 고도화된 협력 모델이 한한령 돌파의 열쇠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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