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넘긴 홈플러스 사태…또 매각 불발
최대 채권자 메리츠 판단에 이목
홈플러스가 회생계획안을 제출하면서 운명의 향방이 메리츠금융그룹의 손으로 넘어갔다. 회생계획안에 일부 사업 분리매각, 기존 채권자가 후순위로 밀리는 DIP파이낸싱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지면서 회생 성패가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 측의 판단에 달려있다는 분석이다.
30일 유통업계와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전날 서울회생법원에 '구조혁신형 회생계획안'을 제출했다. 이 안에는 기업형슈퍼마켓(SSM)인 홈플러스익스프레스 사업부 분리 매각, DIP파이낸싱을 통한 자금 조달, 인가 후 인수합병(M&A)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모든 방안이 채권자들의 동의(회생담보권자 4분의 3 이상·회생채권자 3분의 2 이상) 없이는 실행될 수 없다는 점이다. 메리츠금융그룹(증권·화재·캐피탈)은 지난해 5월 홈플러스에 약 1조2166억원을 대출했다. 지난해 말 기준 홈플러스의 장·단기 차입금의 약 60%를 차지하는 최대 채권자다. 올해 5월까지 원금과 이자를 포함해 2561억원을 회수했지만 아직 받을 돈이 1조원가량 남아있다. 메리츠가 사실상 모든 방안에 제동을 걸거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캐스팅보트'인 상황이다.
메리츠의 셈법은 더욱 복잡해졌다. 1순위 채권자인 만큼 현재 담보권을 당장 실행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 여러 점포를 폐점 후 매각해야 한다. 홈플러스 사태가 정치권 의제로까지 번진 만큼 자칫하면 MBK파트너스를 향했던 비난의 화살이 메리츠를 겨냥할 수도 있다. 이를 감수해도 문제다. IB 업계 관계자는 "나름 알짜 사업부가 떨어져 나가면서 홈플러스의 기업가치가 떨어지고, 추후 매각도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리 인하나 채무 재조정 같은 '대승적 양보'를 택하기도 어렵다. 상장된 금융회사로서 주주에 대한 선관주의·배임 리스크가 남기 때문이다. 선례를 남길 경우 향후 다른 구조조정 건에서도 유사 요구가 이어질 수 있다.
DIP파이낸싱 실행도 메리츠가 흔쾌히 찬성할지는 미지수다. DIP파이낸싱은 회생절차 기업에 신규 자금을 지원하는 주체에 변제 순위 최우선권을 부여하는 금융기법이다. 각종 세금과 공과금이 밀리고 직원 월급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할 정도로 유동성이 바닥난 홈플러스에는 단비가 될 수 있다. 다만 변제 순위가 후순위로 밀린다는 점은 메리츠로서는 아쉬울 수 있다. 메리츠 입장에서 최고의 선택지는 남은 채권을 온전히 회수할 수 있는 청산이지만, 홈플러스 파산 책임론이 메리츠로 향하는 것은 부담이다.
결국 메리츠가 강경 기조만 고수하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홈플러스의 상징성과 회생 실패 시 파급력이 큰 만큼 채권단 역시 사회적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메리츠가 원칙적으로는 반대한 뒤 조건부 세부 협상으로 이어지는 방향이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일 것"이라며 "결국 메리츠가 어느 수준까지 양보하고, 그 대가로 어떤 것을 보장받을 수 있을지에 달려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민우 기자 letzw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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