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사고로 건물주에게 보험금을 지급한 보험사가 해당 건물의 임차인을 상대로 구상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임차인이 동일한 보험사에 '화재배상책임보험'을 가입했다면, 보험사가 구상권 채권자인 동시에 배상 의무를 지는 채무자의 지위를 겸하게 돼 권리가 소멸한다는 취지다. 대법원 민사3부(주심 노경필 대법관)는 11월 20일 A 보험사가 B씨를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 소송 상고심(2024다324200)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에 환송했다.
[사실 관계]
A 보험사는 2022년 건물 소유주 C 씨와 화재보험 계약을 체결했다. 같은 건물에서 식자재 도소매업을 하던 임차인 B씨 역시 A 보험사와 화재배상책임 특약이 포함된 보험 계약을 맺은 상태였다.
2022년 8월 B씨가 운영하던 마트 내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해 건물이 소실됐다. 이에 A 보험사는 건물주 C 씨에게 임차인 보험금 명목으로 약 5억 원을, 소유자 보험금 명목으로 약 2억 원을 지급했다. 이후 A 보험사는 "건물주에게 지급한 소유자 보험금 2억 원은 임차인의 과실로 발생한 손해를 대신 갚은 것이니, 임차인 B씨가 이를 반환해야 한다"며 구상금 소송을 냈다.
[하급심]
1심과 항소심은 임차인 B씨의 손해배상 책임을 전체 손해의 60~70%로 제한하면서도, 보험사가 건물주에게 지급한 소유자 보험금 중 임차인의 책임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구상할 수 있다고 판단해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판단]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임차인 보험계약에 피고의 손해배상책임을 보상하는 책임보험이 포함되어 있다면, 보험사는 소유자 보험금 지급을 이유로 임차인에게 보험자대위권을 행사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보험사가 소유자 보험금을 지급함으로써 임차인에 대해 가지게 되는 손해배상채무는, 임차인이 가입한 책임보험의 보험자로서 보험사가 부담해야 할 채무와 연대채무 관계에 있다"며 "보험사가 채권자인 동시에 채무자가 되므로 혼동으로 인해 그 권리가 소멸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이어 "임차인이 보험사에 구상금을 지급하더라도 다시 보험사에 책임보험금 지급을 청구할 수 있게 되는데, 이는 소송경제에 반하는 순환소송을 인정하는 결과가 된다"며 "결국 반환해야 할 돈을 청구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추어 보더라도 타당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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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명 법률신문 기자
※이 기사는 법률신문에서 제공받은 콘텐츠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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