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수도이자 긴 역사 갖춘 서울
문화유산 보존·도시개발 타협 필요
상업지구 분리로 대응한 런던·파리
한양 도성 특별 관리방안 고민해야
종묘 개발 논쟁, 전망이 우선 순위
지난 11월 초, 대법원은 서울 종묘 앞 고도 제한을 완화한 서울시 조례가 유효하다고 판결했다. 이후로 거센 논쟁이 시작되었다. 국가유산청, 학계, 시민단체 등에서는 초고층 빌딩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의 경관과 고유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라며 반대에 나섰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약 70%가 초고층 건물을 반대하고 개발 제한을 지지했다.
논쟁은 종묘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중요한 질문이 대두되었다. 즉, 서울에서 역사적 경관을 어떻게 정하고 보존할 것인가. 여기에 대한 답을 찾으면 보존과 개발을 둘러싼 갈등을 완화할 수 있는 방법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역사적 경관을 잘 보존해온 세계 대도시 가운데 서울의 위상을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 서울은 1392년 새로운 왕조의 수도로 출발, 일제 강점기 외세의 지배 거점을 거쳐 1945년 해방, 한반도 분단을 겪은 뒤 남한에 세운 대한민국 수도로 그 위상을 자리매김했다. 서울은 명실상부 권력의 중심이었고, 그 영향력은 지속해서 커졌다.
비슷한 곳으로 런던과 파리를 들 수 있다. 두 도시는 영국과 프랑스의 국가 형성 초기부터 권력과 문화의 중심이었다. 서울은 그렇지 않다. 그 이전 개성과 경주가 권력과 문화의 중심이었다. 그 때문에 서울은 한국사 전체를 대표한다기보다 역사의 한 시기인 조선왕조와 매우 깊은 관계가 있고, 종묘는 이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문화유산 가운데 하나다.
서울과 함께 자주 소환되는 도쿄는 어떨까. 일본은 국가 형성기의 마지막 시기라 할 수 있는 794년 교토를 새로운 수도로 계획적으로 건설했다. 교토는 그 이후로 1868년 메이지유신 이전까지 일본 수도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문화의 중심지로서 기능했다. 하지만 12세기 무렵 이후 왕조는 힘을 잃었고, 군사력을 가진 세력들이 권력을 잡고 자신들의 거점을 여러 지역에 두기 시작했다.
1603년 일본 전역을 지배하게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권력 거점은 에도(현재 도쿄)였다. 메이지 유신을 단행한 정부는 새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매우 강했고, 이들은 오래된 문화적 중심지 교토를 벗어나 상대적으로 역사성이 낮은 에도로 수도를 옮겼다. 도시 명칭은 에도가 아닌 도쿄가 되었다. 그 뒤로 도쿄는 일본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로 발전했지만, 교토는 여전히 일본의 문화와 역사를 대표하는 도시로서의 위상을 지키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만 해도 교토에는 17개 곳이 있지만, 도쿄에는 르코르뷔지에가 1959년 설계한 국립서양미술관 한 곳뿐이다.
런던과 파리, 도쿄와 교토 등과 서울의 역사를 비교하면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다. 서울은 런던과 파리처럼 한국 역사의 유일한 권력 문화중심 도시는 아니지만, 도쿄보다는 역사가 길고 교토처럼 왕국의 오랜 수도로서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대표하는 인상이 강하다. 그렇게 보면 서울은 도쿄보다는 오히려 교토에 가깝다.
각 도시의 역사는 역사 보존의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친다. 런던과 파리의 역사성은 매우 중요해서 보존 역시 중요하다. 두 도시 모두 오늘날 국가의 수도이자 금융과 상업 중심 도시이기 때문에 개발 역시 필요하다. 보존이냐, 개발이냐를 놓고 런던과 파리는 다소 차이는 있지만, 역사적 가치가 높은 건물과 주변의 역사적 경관을 잘 유지하면서 시대에 맞게 새로운 건물의 필요성을 인정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새로운 건물을 산발적으로 짓지 않고, 지정된 상업 지구에 모여 짓는다. 보존과 개발 사이에서 타협한 결과다. 고전적인 보존주의자들 눈에는 마땅치 않다.
도쿄와 교토는 다르다. 도쿄는 1923년 간토 대지진, 제2차 세계대전 말 폭격으로 상당수 파괴되었다. 큰 지진에 대한 공포로 건축 규제가 바뀌면서 오래된 건물이 위험하다는 인식이 확산했다. 그래서 도쿄는 항상 공사 중이다. 보존은 경관보다 유명한 건물에만 국한한다. 도쿄 시민들은 역사적 경관을 보고 싶을 때 교토 같은 역사적 도시를 찾는다. 도쿄는 서울의 보존 방향에 참고할 만한 내용이 그리 많지 않다.
교토 역시 서울처럼 보존과 개발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하지만 서울과 큰 차이가 있다. 교토의 주요 문화유산은 대부분 시내 한복판이 아니라 주변 산기슭에 있다. 자연보호지역 아래로 연장이 이루어져 문화유산 인근 경관이 자연스럽게 보존이 된다. 이에 시내 한복판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보존 규제가 생각보다 약하고 역사적 경관은 계속 훼손되고 있다. 2010년대 관광 붐 이후 특히 그렇다. 서울은 종묘와 창덕궁 같은 세계 문화유산이 시내 한복판에 있어서 개발압력에 맞서고 있다.
그렇게 보면 도쿄보다는 런던, 파리, 교토를 통해 서울의 역사적 경관 정의와 보존 방향에 대한 다면적 조언을 얻을 수 있다. 런던과 파리에서는 역사적 경관을 해치는 대규모 개발을 억제하고 따로 상업 지구를 만들었다. 역사적 중심 문화유산 인근을 엄격하게 관리하면서 저층 개발을 허용하고 있다. 교토는 반대로 시내 밖 역사적 경관을 보존하고 있어 문화유산 인근에서의 대규모 개발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서울이라면 한양도성 내곽 전체를 비롯해 외곽 인접 지역의 역사적 자연 공간을 서울시와 국가유산청이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고려할만하다. 그렇게 하면 지역 내 문화유산과 인근 경관에 대한 보존 방향을 열린 논의를 통해 정할 수 있을 것이다. 파리에서는 파리를 비롯한 인접 지역 일드프랑스 보존정책은 프랑스 문화부가 정하고 있다. 단순히 고도 제한 또는 건축 양식이나 디자인을 일률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넘어 넓은 지역 안에서 역사와 자연경관을 지키기 위한 관리 체제가 작동하고 있다. 1930년대 런던에서 도입한 '런던뷰 관리체계'도 참고할 만하다. 런던 전역에 20개 이상 주요 조망점을 지정, 런던의 문화유산과 도시경관을 볼 수 있는 공원이나 거리 등 공공장소 '전망권'을 보존하는 정책이다.
종묘 주변 개발 논쟁에서 중요한 것은 건물의 고도가 아니다. 그 위치와 전망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가 훨씬 더 중요하다. 그 중요성을 알고 있다면 종묘 바로 앞에 전망을 해치는 건물을 세우려는 계획은 애초에 세우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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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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