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 TF 재가동·포스코 자문단 구성
기업들, '재도전 준비' 본격화
하림그룹의 인수 무산 이후 멈춰섰던 HMM(옛 현대상선) 매각 논의가 1년여 만에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KDB산업은행이 외부 가치평가에 착수하고 정부도 지배구조 개편 로드맵을 마련하면서 매각 작업이 재부상하는 분위기다. 동원그룹과 포스코 등 주요 기업들이 다시 관심을 보이자 시장에서는 "민영화 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최근 회계법인 등을 대상으로 입찰 제안요청서(RFP)를 발송하고 HMM 지분의 공정가치 재산정 실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제한경쟁입찰을 통해 수행 기관을 선정한 뒤 내년 2월 말 최종 보고서를 받을 계획이다. 산업은행은 9월 말 기준 HMM 지분 35.42%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시장에서는 이번 실사를 "사실상 매각 재개 신호"로 보고 있다. 정부도 HMM 지배구조 개편과 본사 부산 이전 등을 포함한 종합 로드맵을 내년 초 발표할 예정이어서 매각 방식과 공적 지분 처리 방향 등 전체 구도가 윤곽을 드러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하림·JKL파트너스 컨소시엄과 약 6조4000억원 규모로 진행되던 매각이 무산되면서 HMM은 산업은행·해양진흥공사 등 채권단 체제에 머물러 있다.
식품사들이 해운사에 눈 돌리는 이유
이런 가운데 최근 인수전 구도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식품 기업들이 HMM 인수전에 다시 눈을 돌리는 이유는 불확실성이 큰 물류 환경이 기업 경쟁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원재료를 많이 들여오는 수산·식품 기업일수록 해상 운임이 오르거나 운송이 지연되면 곧바로 실적에 타격을 받는다. 이 때문에 안정적인 선복을 확보하고 해상 운송망을 그룹 내부에 두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안정된 물류망은 해외 시장 확대에도 필수적인 만큼, 해운 자산 확보를 글로벌 전략의 기반으로 삼으려는 흐름도 있다.
지난해 인수전에 뛰어들었던 동원그룹도 최근 내부 태스크포스(TF)를 재가동하며 다시 움직이고 있다. 동원은 당시 약 6조2000억원을 제시해 하림 측과 불과 2000억원 차이로 막판까지 경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은 경영진에 "HMM 재매각 가능성을 다시 점검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그룹 내부에서는 관련 자료 재정비, 인수 검토 등이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
동원그룹은 재무 여력과 물류 자산을 갖추고 있어 HMM과의 시너지도 크다는 평가다. 동원산업(수산), 동원로엑스(물류), 글로벌터미널부산(DGT·부산 신항 운영사)을 이미 보유하고 있어 HMM을 더하면 '해양?항만?물류?식품'으로 이어지는 수직 계열화를 구축할 수 있다. 원재료 조달부터 해상 운송, 항만 하역, 내륙 물류, 최종 가공·유통까지 묶을 수 있어 콜드체인 경쟁력이 강화되고, 해상 운임 변동 리스크도 자체 선복으로 흡수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반면 하림그룹의 재도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인수 당시부터 재무적 투자자(FI) 의존도가 높다는 문제가 지적됐고, 최근 서초구 양재동 화물터미널 부지 재개발(파이시티) 등 대규모 자금 소요 프로젝트가 겹치면서 추가 인수 여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포스코그룹도 HMM 인수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해 삼일PwC·보스턴컨설팅그룹(BCG)과 계약을 체결하고 대규모 자문단을 꾸린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이 보유한 지분을 우선 인수한 뒤, 2대 주주인 한국해양진흥공사(지분 32.28%)와 공동 경영구조를 검토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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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해운업계 일각에서는 포스코의 인수 추진을 우려한다. 포스코가 HMM을 품게 될 경우, 선대 운용이 철강 물량 중심으로 재편돼 전문 해운사의 독립적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HMM이 글로벌 해운사로서의 전략적 역할을 수행하기보다 철강 산업의 수송 보조 역할에 머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혜선 기자 lhs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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