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오버 더 모빌리티](32)
현대차, 자율주행 양산차·서비스서 뒤처져
선두그룹과 격차 확대…테슬라·BYD 공격 전략
모셔널, 자율주행 종합 순위 10단계 추락
현대차, SDV·자율주행 전략 총체적 문제점 분석
"현대차는 전통 완성차 업체 중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 전환 속도가 가장 빠르다."
현대차그룹의 소프트웨어 기술 전략에 대한 국내 자율주행 업계의 엇갈린 평가다. 얼핏 보면 두 주장은 상반된 평가 같지만 기저에 깔린 문제 인식은 동일하다. 현대차그룹은 업계의 선두 그룹보다 SDV 전환과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서 한발 늦었다는 사실이다. SDV 전환과 자율주행은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다. 소프트웨어로 차량을 제어할 수 있는 SDV 플랫폼 구축이 먼저 이루어져야 SDV 토대 위에 자율주행 기술을 펼쳐볼 수 있다. 즉, SDV의 킬러 콘텐츠가 자율주행이다.
최근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의 SDV 전략과 자율주행 기술 속도가 선두 그룹과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산차 분야에서는 레벨3(운전자와 차량이 교대로 주행) 기술 적용이 지연되고 있으며, 로보택시 등 서비스 시장에서도 현대차그룹의 자율주행 합작 법인 모셔널의 기술 개발이 더딘 상황이다. 현대차그룹 SDV 및 자율주행 전략의 한계는 무엇이며, 선두권을 따라잡기 위해 어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현대차 자율주행, 뒤처진 현실
2023년 기아는 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EV9에 고속도로 시속 80㎞로 주행 시 운전자가 손을 뗄 수 있는 '핸즈오프(hands-off)' 기능을 적용하려 했으나 결국 철회했다. 이 기능은 레벨3 자율주행으로 가는 첫 관문이다. 기아는 신차 계약과 동시에 대대적으로 홍보했고, 대리점에서도 해당 옵션 주문을 받았다. 그러나 최종 양산 차량에는 이 기능이 빠졌다. 우천이나 야간 주행 시 안정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대부분 국가가 '시속 60㎞ 이하'로 허용하는 규제 환경 속에서 기아만 속도를 높이게 되면, 더 높은 안전성 검증이 필요하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경쟁사인 메르세데스-벤츠가 올해부터 시속 95㎞까지 지원하는 레벨3 자율주행 양산차를 출시했지만 '세계 최초 레벨3 양산차'라는 타이틀에 비해 실제 판매량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기능을 옵션으로 추가했을 때 편익 대비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생각에서다. 쨍쨍한 맑은 날씨, 낮 시간대, 앞 차가 있는 고속도로 저속 차선에서만 사용 가능한 기능에 1000만원을 추가로 내야 한다면 아직 선택할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레벨3'라는 이름을 달고 출시되는 순간, 사고 발생 시 완성차 업체와 운전자 간 책임이 모호해진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수많은 사고로 인한 소송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셈이다. 이런 이유로 현대차그룹은 '최초의 레벨3 양산차'라는 타이틀을 무리하게 노리기보다는 안전성을 우선한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레벨2+'라는 이름 아래 자율주행 기능을 조금씩 확장해 나가면서도, 사고 책임은 운전자에게 남겨두는 전략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로보택시로 대표되는 자율주행 서비스 시장은 양산차 시장보다 더욱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선두주자는 미국 웨이모(구글)와 중국 바이두 같은 테크 기업들이다. 이 분야에서도 현대차그룹은 선두권에서 멀어지고 있다. 매년 자율주행 종합 순위를 집계하는 가이드하우스 인사이트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의 자율주행 합작 기업 모셔널은 2024년 순위에서 전년 대비 10계단 하락한 15위로 추락했다. 이 조사에서 모셔널은 2020년 이후 줄곧 5~6위권에서 상위권을 유지하다가 지난해 갑자기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사업 환경이 어려워지면서 상용화 서비스가 지연된 영향이다. 현대차와 공동 투자했던 앱티브가 지난해 모셔널에 추가 투자 중단을 선언했고, 모셔널은 최고경영자(CEO) 교체와 함께 500명이 넘는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운행하던 로보택시 시범 서비스도 중단됐다.
2020년 초반까지만 해도 이 항목의 선두그룹엔 제너럴모터스(GM), 포드, 폭스바겐 등 완성차 업체가 대거 포진해 있었다. 하지만 몇 년 사이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2024년 선두권에는 웨이모(구글), 바이두, 모빌아이(인텔), 엔비디아 등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가이드하우스는 기업 비전과 시장진입 전략, 사업 파트너, 상품전략, 기술력, 규제 준수, 혁신성 등 다양한 기준을 바탕으로 순위를 매긴다. 지난해 모셔널은 사업 파트너와 시장진입 분야(상용화) 전략에서 최하위 수준의 점수를 받았다.
SDV 플랫폼 구축에서도 현대차는 테슬라나 비야디(BYD) 같은 신생 업체보다 한발 늦었다는 평가다. 현대차그룹은 2024년 세계 최대 전자·IT 전시회 CES에서 고성능 컴퓨터를 탑재한 중앙집중형 전기·전자(E/E) 아키텍처 구축 비전을 제시했다. 시범용 차량을 2026년 3분기 출시하고 본격 양산은 2027년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또한 레벨2+ 수준의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을 적용한 차를 2027년 내놓는다는 목표를 세웠다. 문제는 현대차·기아가 2027년 내놓을 신호등 인식, 정차 차량 추월 등 기능을 테슬라나 중국 업체들은 이미 완성했다는 점이다. 포티투닷 관계자는 "중국은 실제 환경에서 동작하는 서비스를 만들어냈다는 자체로 우리보다 더 앞서 있다"며 "다만 주행 편의성이나 안전성 측면에서는 우리가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항변했다.
새로운 비전 발표에도 불구하고 현대차 주가는 제자리걸음을 거듭하고 있다. 현대차가 2026년에 내놓을 예정인 E/E 아키텍처는 시장 변화를 이끌어 낼 혁신 신기술은 아니기 때문이다. 테슬라가 이 아키텍처를 2019년 업계 최초로 도입했고, BYD는 이미 2023년부터 적용해 차종을 늘려가고 있다. 현재 개발 중인 고성능 아키텍처의 사양 수준도 신생 업체와 비교하면 크게 떨어진다. 현대차·기아는 현재 200TOPS(1초당 200조번의 연산 처리 능력)의 신경망처리장치(NPU)의 연산 수준을 2030년 800TOPS까지 점차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밝혔는데, 2025년 현재 시장에 출시된 테슬라나 중국 스마트카의 컴퓨팅 하드웨어 수준은 이미 500TOPS 수준까지 올라왔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지나치게 보수적이며 늦은 대응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대차, 자율주행 전략 어디서 막혔나
SDV 전환을 둘러싼 현대차의 문제점은 총체적이다. 우선 그룹 차원에서 신기술에 대한 투자가 지나치게 분산돼 있다. SDV와 자율주행뿐만 아니라 로보틱스, 미래항공모빌리티(AAM), 수소에너지 등 투자해야 할 신산업의 가짓수가 너무 많다. 시험에 비유하자면 국·영·수를 포함해 여러 과목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두루 공부를 해뒀지만 정작 1등 하는 과목은 없는 처지다. 차라리 가장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SDV, 자율주행 같은 과목에 집중 투자하고 돈과 시간을 쏟아부었다면 지금쯤 현대차그룹이 독보적인 자율주행 선도 기업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투자뿐만 아니라 현대차그룹 내의 자율주행 기술 역량과 인력도 여러 군데로 분산돼 있다. 그룹 내에서 자율주행 연구 조직은 로보택시 서비스를 개발하는 미국의 모셔널과 현대차·기아 남양연구소 AVP 본부, 그룹 소프트웨어 담당 계열사 포티투닷으로 나뉘어 있다. 인력과 기술 역량이 하나로 통합되지 못하면서 개발에 속도가 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또 다른 문제점은 현대차그룹의 완벽주의다. 현대차그룹은 품질과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왔으며, 그동안 쌓아온 신뢰도와 내구성 등을 포기할 수 없는 핵심 자산으로 여긴다. 이러한 가치는 지금의 현대차그룹을 글로벌 업계 3위까지 끌어올린 동력이 됐다. 그러나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개척하는 혁신에는 반드시 시행착오가 수반된다. 미국과 중국 기업들이 실패를 거듭하며 기술을 빠르게 보완해나가는 사이,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현대차그룹의 태도는 오히려 혁신의 속도를 늦추는 결과를 낳았다.
혁신 기업으로 평가받는 테슬라의 사례를 살펴보자. 테슬라는 완성도가 높지 않은 자율주행 기술을 소수의 운전자에게 무료로 배포해 안전성을 검증한다. 이 과정에서 결함이나 문제점이 발견되면 이를 반영해 다음 버전의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한다. 데이터를 꾸준히 수집하고 실패 사례를 개선하며 발전하는 구조다. 데이터 공유에 동의하는 운전자가 많을수록 기술은 더욱 빠르게 진화한다. 테슬라는 실패를 통해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 셈이다.
BYD를 비롯한 중국 완성차 업체도 비슷한 전략을 취한다. BYD는 최근 저가형 모델을 포함한 모든 차량에 자사 ADAS '신의눈(天神之眼)'을 기본 탑재하겠다고 밝혔다. 풀셀프드라이빙(FSD) 기능을 선택 옵션으로 제공하는 테슬라보다 훨씬 더 공격적인 정책이다. 더 나아가 BYD는 '신의눈' 기능을 사용하다가 사고가 발생하면 제조사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보상하겠다는 파격적인 방침도 내놨다. 실패와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방대한 데이터 수집을 통해 기술을 빠르게 발전시키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다.
마지막은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로서 속도가 현저히 떨어졌다는 점이다. 과거 빠른 추격자로서 현대차그룹은 누구보다 속도전에 강한 조직이었다. 독자 엔진인 알파 엔진을 9년 만에 만들었고, 전기차 전용 플랫폼도 5년여 만에 완성했다.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전환은 누구보다 빠르게 성공했지만, 소프트웨어 기업으로의 전환은 조직 체질 자체를 바꿔야 하는 과제다.
반면 신생기업인 테슬라와 중국 전기차 업체들은 무서운 속도로 치고 나가고 있다. 이들은 과거 개발해놓은 내연기관이나 하이브리드 같은 기존 자산이 없다. 따라서 개발 비용이나 설비 투자에 따른 감가상각 부담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 처음부터 새로 시작할 수 있었기에 혁신적인 플랫폼을 과감하게 도입할 수 있었다. 이들과 비교하면 현대차그룹은 거대 조직이다. 이미 축적해 놓은 자산과 시스템이 발목을 잡는 탓에, 기존의 체계를 모두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자율주행 선두를 위한 현대차의 과제는?
그렇다면 자율주행 시대에 현대차그룹의 미래는 없는 것일까. 아니다. 전통 완성차 업체로서의 강점을 충분히 살리면 된다. 자율주행 기술 발전에서는 데이터 확보를 통한 다양한 테스트가 중요하다. 현대차·기아는 짧은 기간 내에 대규모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글로벌 판매량 1위를 달성해 전 세계에서 방대한 주행 데이터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다. 전 세계에 현대차·기아 차량이 많이 팔릴수록 수집 데이터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퀀텀 점프의 기회가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이다. 2024년 글로벌 시장에서 현대차·기아는 720만대 차량을 판매했다. 이는 같은 기간 테슬라의 판매량(180만대)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보수적으로 가정해 연간 700만대의 절반 수준인 350만대 차량이 전 세계에서 자율주행 데이터를 수집하더라도, 방대한 학습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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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이 자국 데이터를 보호하기 위해 장벽을 세우면 어떻게 될까. 한국 시장만 해도 충분히 의미 있는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2024년 기준 내수 시장에서 현대차·기아 판매량은 120만대다. 시장의 크기와 인구를 고려할 때 결코 작은 수준이 아니다. 교통량과 유동 인구가 많고 통신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 한국에서는 양질의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같은 기간 중국 내 BYD 판매량은 427만대, 독일에서 폭스바겐그룹 판매량은 112만대, 미국 내 테슬라 판매량은 63만대다. 30년 가까이 자동차 산업을 분석해 온 고태봉 iM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택시를 포함해 매년 판매되는 현대차·기아의 일부만 데이터를 수집을 허용한다 해도 국내 자율주행에 필요한 지도 데이터의 대부분은 모을 수 있다"며 "앞으로는 이를 수집하고 인공지능(AI) 학습에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 센터 구축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우수연 기자 yes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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