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 닮아가는 미국 경제
美정부, 전략 산업 지분 확보 나서
"트럼프式 개입, 과거 일시적 구제와 달라"
자본주의 본산인 미국에서 국가자본주의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반도체에 이어 방위산업과 조선업까지 민간 기업 지분 확보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자유시장 원칙을 중시해온 미국이 국가 안보와 전략 산업을 앞세운 정부 개입 경제 체제로 이동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도체에서 방산·조선까지…전략산업 줄줄이 개입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인텔의 지분 10%를 미국 정부가 "완전히 소유하고 통제하게 됐다"며 이는 미국과 인텔 모두에 "매우 좋은 거래"라고 했다. 아울러 인텔 측이 그들의 지분 10%를 미 정부에 넘기는 데 동의했다며 "우리는 이 같은 거래를 많이 한다. 나는 (이런 거래를) 더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미 정부는 인텔의 보통주 4억3330만주를 주당 20.47달러에 매입해 지분 9.9%를 차지하게 되면서 기존 8.92%의 지분을 보유했던 자산운용사 블랙록을 제치고 인텔의 최대 주주가 됐다.
이와 관련해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인텔에 이어 다른 기업의 지분을 취득하는 거래가 또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며 "이번 경우는 반도체지원법(CSA)을 통해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 매우 특별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미 미국 정부는 이 같은 방식의 거래를 몇 차례 진행해왔다. 앞서 미 국방부는 희토류 채굴업체인 MP머티리얼스에 4억달러(약 5500억원)를 투자하고 우선주 15%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해 최대 주주에 올랐다. 또 트럼프 행정부는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를 승인하는 조건으로 미국 정부가 중요 경영 사항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황금주'를 확보한 바 있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은 US스틸 본사 이전 및 공장 폐쇄 등 핵심 조항이 포함된 황금주가 영구적으로 유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업계에서는 황금주가 향후 US스틸 경영을 구속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이어 트럼프 행정부는 방산업체 지분 인수 가능성도 시사했다. 러트닉 장관은 지난달 26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록히드마틴은 매출의 97%를 미국 정부에서 만든다. 그들은 사실상 정부의 한 부분"이라며 인텔의 지분 확보와 비슷한 방식으로 미국 방산업체의 지분 인수를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방산기업의 거래 대부분이 정부 계약과 관련된다는 명분으로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러트닉 장관의 이 같은 발언 다음 날에는 스콧 베선트 미 재무부 장관이 조선업을 지목했다. 그는 폭스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조선업처럼 우리가 재편하고 있는 산업들이 (지분 확보 대상에) 있을 수 있다"며 "이것들은 미국이 자급자족해야 하는 대단히 중요한 산업이다. 그러나 지난 20, 30, 40년 동안 방치돼 왔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칼럼니스트 질리언 테트는 "지금 백악관에서 엄청난 시대적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안보와 관련된 분야에서 국가가 주도하는 자본주의가 점점 힘을 얻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20년 전만 해도 서방 지도자들은 중국이 점점 미국의 자본주의 원칙을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이 오히려 중국처럼 보인다"며 "이는 역사의 기묘한 반전"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式 국가 개입, 과거와 달라…낭비·부패 우려도
국가의 경제 체제를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생산 수단을 누가 소유하고 운영하는가'이다. 공장이나 토지, 기계 등을 개인이 소유해 이윤을 추구하는 체제를 자본주의라 하고, 사회 전체나 국가가 공동으로 소유해 관리한다면 사회주의로 분류된다.
사회주의에도 다양한 형태가 있는데, 국가가 강력한 권력을 행사해 경제 전반을 계획하고 직접 운영하는 방식을 국가사회주의라 부른다. 옛 소련의 계획경제가 대표적인 사례로, 생산량과 가격을 정부가 정하고 기업은 이에 맞춰 움직여야 했다. 반대로 자본주의라고 해서 국가가 완전히 손을 떼는 것은 아니다. 특정 산업이 국가 안보나 전략적 이익과 직결될 경우 정부가 직접 개입해 지분을 보유하거나 경영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를 국가자본주의라 부른다. 즉 국가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외형을 띠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부가 전략 산업을 위주로 경제 전반에 깊이 관여하는 특징을 지닌다.
오늘날 중국과 러시아가 대표적이다. 중국은 석유·통신·철도·금융 등 기간산업을 국유기업이 장악하고 있으며, 이들은 시장에서 활동하면서도 정부의 정책 방향에 따라 움직인다. 러시아의 에너지 산업 역시 국가자본주의의 전형적인 사례로 꼽힌다. 가스프롬이나 로스네프트 같은 대형 국영기업이 천연가스와 석유를 통제하면서 국가가 국제 에너지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최근 미국 정부의 민간 기업 지분 인수 행보가 중국·러시아의 국가자본주의와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재임 시절 미 재무부 자문 역할을 맡았던 스티븐 래트너는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움직임은 중국식 국가자본주의를 연상케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접근 방식은 전통적인 공화당 원칙과 거리가 멀고, 정부 개입을 주장해온 민주당의 입장보다도 훨씬 강하다"며 "이는 정부와 기업 간 관계에 대한 합리적인 통념과 배치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즉흥적인 스타일로 정부 권력을 활용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기업들이 정부에 기대하는 '예측 가능성'과 '질서'가 크게 훼손되고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가 행하는 조치는 기업에 부당한 압박으로 느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정부가 민간 기업의 지분을 의도적으로 소유하는 것이 완전히 새로운 일은 아니다. 1820년대 각 주 정부가 은행·운하·철도 건설에 투자해 배당을 받은 전례가 있고,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미 정부는 시장 붕괴를 막기 위해 주요 대기업에 구제금융을 투입하며 지분을 확보했다. 특히 자동차 산업에서 제너럴모터스(GM)와 크라이슬러가 파산 위기에 몰리자 브랜드 축소, 공장 폐쇄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추진됐고, GM은 자산 매각과 노조 협상 등을 통해 회생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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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상황을 과거 경제 위기 때의 일회성 구제 조치와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제이슨 츠바이크 칼럼니스트는 "금융위기 때 정부가 기업 지분을 인수했던 경우는 긴급 상황에서 나온 '특별 대책'이었고, 지금 트럼프 대통령이 말하는 것처럼 '앞으로 더 많이 할 것'과 같은 성질을 띠는 큰 정책 변화는 아니었다"며 "이런 식으로 정부가 기업에 직접 개입하면 자본이 잘못 배분되거나 낭비와 부패, 이해관계 충돌이 증가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투자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 같은 권한을 일시적으로 행사하길 바라야 한다. 만약 정부가 투자자 역할을 대신하게 된다면 그 혜택은 중간에서 이익을 챙기는 일부만 누릴 뿐, 나머지 모든 투자자에게 결코 좋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승형 기자 trus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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