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3일 아침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을 위해 공수처 관계자들이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 들어간 가운데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관저 근처 집회장으로 가면서 태극기와 성조기, 부정선거 검증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허영한 기자
무분별한 부정선거 의혹이 확산하자 일본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일본 공영방송 NHK는 지난 4일 "참의원 선거가 공시되며 본격적인 선거전이 시작된 가운데, '투표 내용이 조작된다'거나 '부정선거가 벌어질 것이다'라는 근거 없는 정보나 허위 정보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서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NHK에 따르면 도쿄도 의회 의원 선거에서는 "개표 작업에서 부정이 있었다"는 주장도 퍼졌지만, 도쿄도 선거관리위원회는 "개표 작업은 참관인의 입회 하에 적정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부정은 없다"고 부인했다.
6월 도쿄도의회 선거나 7월 3일 공시된 참의원 선거를 계기로 SNS에서는 부정선거를 의심하는 게시물들이 증가했다. NHK의 분석에 따르면, 2025년 들어 지금까지 SNS 플랫폼 엑스(X·옛 트위터)에서는 "부정선거가 있을 것이다"와 관련된 게시글(리포스트 포함)이 50만 건을 넘었다. 일부 정치인들조차도 자신의 SNS를 통해 이러한 의혹을 직접 주장한 사례가 있었다. 특히 6월 도의회 선거 기간 중에는 22만 건 이상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개표일 이후에는 "개표 작업에 부정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글이나 동영상이 퍼졌고, 선거관리위원회에 문의가 쇄도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특히 주목을 받은 사례는, NHK의 출구조사에서 당선권에 들어 있던 후보자가 실제로는 낙선했다는 점에 대한 반응이었다. SNS에서는"하위권 후보가 실제 결과에서는 상위로 올라가 있고, 당선권 후보가 낙선한 것은 이상하다", "특정 후보의 막판 득표 수가 선거관리위원회의 발표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무효표가 너무 많다. 부정이 있었던 것 아닌가" 등의 의혹들이 확산했다. 엑스,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에 올라온 관련 영상 중에는 130만 회 이상 재생된 영상도 있었다. 도쿄도 선거관리위원회측은 ""표는 정확하게 하나하나 세고 있기 때문에 부정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고 반박했다.
의혹 확산의 핵심에는 연필이 있다. 일본은 선거 때 한자나 히라가나(일본어 글자)로 후보자와 정당의 이름을 쓰는 관행이 유지되고 있다. 후보자나 정당의 이름을 제대로 써야하고 잘못 쓰면 무효표가 된다. 볼펜 등은 번질 우려가 있어 연필로만 써야 한다. 일본 지방자치단체들은 선거 때마다 연필을 준비해야 한다.
엑스에서는 "연필로 투표하면 나중에 내용을 바꿀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주장이 확산했다. "투표할 때 볼펜을 가져가야 한다"는 글도 많았으며, 350만 회 이상 조회된 게시물도 있었다. NHK가 세타가야구 선관위와 함께 실험해 봤다. 실제 투표용지와 동일한 재질의 시험용지를 사용, 연필과 수성볼펜으로 각각 작성해 비교했다. 연필로 쓴 글씨는 번지지 않았다. 그러나 수성볼펜은 용지를 반으로 접으면 뒷면에 잉크가 비치거나, 표면을 손으로 문지르면 번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세타가야구 선관위는 "투표용지가 접어도 쉽게 펴지는 플라스틱 재질이라, 개표 시간 단축에 효과적이고 볼펜 종류에 따라 번짐이 발생할 수 있어, 다른 투표용지에 잉크가 옮겨 무효표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필기구에 대한 특별한 규정은 없지만, 만약 가져오신다면 유성볼펜처럼 잘 마르는 펜이 좋다고 권하고 있다.
와세다대 데모크라시 창조연구소의 나카무라 켄은 NHK에 "개표 과정에서 사무적 실수가 있을 수는 있으나, 표를 고의로 조작해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NHK는 "한국, 미국, 브라질, 독일 등 전 세계적으로 근거 없는 부정선거 정보가 퍼지고 있다"면서 "한국에서는 보수 유튜버들이 반복적으로 부정선거 주장을 제기했고, 윤석열 전 대통령도 '북한의 해킹이 있었다'고 발언했다. 미국, 브라질 등에서는 허위 정보로 인해 의회 습격 사태로 번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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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비린대학 타이라 카즈히로 교수는 NHK에 "선거 관련 허위 정보의 확산은 민주주의 절차 자체를 왜곡시킬 수 있다는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면서 "인터넷에서는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정보일수록 퍼지기 쉽다. 허위 정보는 이를 노려서 자극적인 제목이나 영상으로 만들어진다. 혹시라도 그런 정보에 끌릴 때는, 그 계정이 어떤 정보를 발신해왔는지, 어떤 의도를 가진 계정인지 냉정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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