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잇단 땅꺼짐 사고에 안전관리 강화 방안 마련
인명피해 부르는 대형 지반침하 원인 1위 '굴착공사 부실'
복구율 공개해 지자체 압박…행안부 평가에 반영 추진
굴착공사 인근에서 땅꺼짐 사망사고가 잇달아 발생해 국민 불안이 높아진 가운데 정부가 직접 고위험 현장을 선제 점검하고, 문제가 발견되면 즉시 시정명령과 행정처분을 내리는 직권 지반조사를 실시한다. 그간 정부는 지방자치 원칙에 따라 지방자치단체가 요청했을 경우에만 해당 지역 지반탐사에 나설 수 있었다.
6월부터는 전국 땅속 빈 공간 위치를 국민에게 전면 공개한다. 복구율도 함께 공개해 관리 주체인 지자체의 신속한 복구를 유도한다. 우리 동네 '땅속 안전 성적표'가 공개되는 셈이라 복구 실적이 저조한 지자체는 주민 원성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국토교통부는 27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굴착공사장 안전관리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이 외에도 균열 등 지반침하 민원 접수 시 지자체 내 전문 조직이 즉시 대응하도록 하고 차수공법(물이 새지 않게 막는 공법) 기준 이행 여부 등 시공 현장 점검을 강화하며 계측 관리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또 올해 하반기 지하안전법 개정을 추진해 굴착공사 착공 후 지하안전조사를 부실하게 수행한 업체에 최대 1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제재 조항을 신설한다.
이번 방안은 국토부가 최근 5년간 지반침하 사고를 분석한 결과 대형사고(면적 9㎡·깊이 2m 이상)의 주요 원인이 '굴착 관련 공사 부실'로 나타난 데 따른 것이다.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발생한 지반침하 사고 867건 중 인명피해 우려가 큰 대형사고는 57건(6.6%)이다. 대형사고 원인으로는 다짐 불량(흙을 단단히 누르지 않은 것), 매설공사 부실 같은 굴착 관련 공사 부실(36.8%) 비중이 가장 컸다.
김태병 국토부 기술안전정책관은 "지난해 10~12월 전국 굴착공사장 94곳(각 지자체 선정)을 특별점검한 결과 공동(空洞·빈 공간) 68개를 추가로 발견했고, 이들 지역에서 발견된 공동 개수는 일반점검 구간보다 166% 많았다"며 "계측 기기 설치 미흡, 차수 공법 부적정, 토류판·흙막이 벽체 관리 미비 등 현장 시정이 209건에 달했다"고 말했다.
인명피해 낳은 땅꺼짐…지자체 요청 없어도 위험지역 선제 점검
국토부의 직권 지반탐사는 올해 하반기부터 즉시 시행된다. 국토부는 이달 '지하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개정해 직권으로 현장 조사를 수행할 수 있는 권한을 신설했다. 대규모 굴착공사 현장 중에서도 연약지반 위에 조성됐거나, 지하철 선로나 역사 등이 인접한 구간, 과거 지반침하 이력이 있는 지역은 위험도가 높다고 보고 먼저 조사한다. 서울, 부산 등 침하 사고가 잦은 지역과 광주 지하철처럼 민원이 많은 지역은 우선 점검 대상이다. 점검은 연 2회 실시된다. 우기 및 동절기 정기 점검과도 연계해 상시 관리 체계를 구축할 방침이다.
국토부 조사는 단순 점검을 넘어 행정 처분까지 가능해 현장에 안전 관리 압박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현장에서 설계도면과 다른 시공, 미세한 균열(0.3㎜ 이상), 누수 등 사소한 문제점까지 시정 명령을 내리고 따르지 않으면 행정처분을 내린다. 점검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한국도로공사, 한국지하안전협회 등 관련 분야 전문가와 동행한다. 점검은 통상 두 달 정도 걸린다.
김 정책관은 "우리 점검은 현장 관계자들이 '간담이 서늘하다'고 말할 정도"라며 "기업 최고경영자(CEO) 입장에서도 수천억 원에 달하는 사고 복구 비용보다 사전 예방 비용이 훨씬 적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 정부가 움직이면 현장이 먼저 조치에 나서는 나비효과가 나타난다"고 했다. 이어 "어느 현장이 점검 대상이 될지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에 전국 1100여개 굴착공사 현장 모두가 평소 안전 관리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고 했다.
탐사에는 땅속에 레이더를 쏴 상태를 파악하는 지표투과레이더(GPR) 장비를 투입한다. 현재 13대인 GPR 장비를 2029년까지 30대로 늘린다. 올해 국토부의 지반탐사는 직권 조사에 따른 구간 추가(500㎞)로 기존 목표보다 3700㎞로 늘었다. 또 지자체에서 수행하는 GPR 탐사 용역비를 1대1 매칭 방식으로 국비 지원해 지반탐사 범위를 대폭 늘린다. 지자체의 올해 GPR 탐사 예정 구간은 4360㎞다.
지하 빈 공간·복구율 공개…2026년까지 지자체 지하정보 통합 목표

지반 탐사 결과와 지하 빈 공간, 복구 현황은 국민에게 지하안전정보시스템(JIS)을 통해 지도로 공개한다. 2022년 구축했으나 활용도가 떨어졌던 지하공간통합지도에 건설 공사 정보, 지반 침하 이력, 연약지반 정보 등을 연계해 실효성을 끌어올리기로 했다. 2029년까지 80억원을 투입한다. 앞서 지난 16일 지반침하 사고 정보(발생일·위치·규모·피해상황·복구현황 등)를 공개하기 시작했다.
다음 달부터는 지반 탐사 결과와 국토안전관리원이 지난 5년간 지표투과레이더(GPR) 탐사로 발견한 공동 793곳, 복구율이 추가로 공개된다. 국토안전관리원이 발견한 공동을 지자체에 통보하고 있으나 복구가 완료된 곳은 393곳(49.6%)에 불과하다. 지자체 재정 부족과 책임 미루기가 주된 이유다. 지하엔 상·하수도, 통신, 난방, 전력 등 여러 시설이 겹쳐 있다. 사고 원인을 특정하기 어려워 복구 책임이 떠넘겨지는 경우가 많다. 정부가 강제할 법적 권한도 없어 지자체가 나서지 않으면 지하 빈 공간을 복구할 실질적 조치는 어렵다. 국토부는 지하 빈 공간 복구율 공개를 통해 '발견했지만 방치된 공동'을 추적하고 각 지자체에 실질적 조치를 강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이 지도에는 서울시와 부산시가 실시한 탐사 정보와 복구 현황은 각 지자체 요청에 따라 포함되지 않았다. 복구 실적이 낮을 경우 주민 민원이 늘어나거나 행정적 책임이 따를 수 있고, 지역 부동산 악재를 우려가 반영된 조치로 풀이된다. 실제로 서울시의 경우 자체 제작한 '지하위험지도' 정보가 지반 침하 위험 관련성이 낮고 통신·가스 등 매립 시설 보안 우려된다며 지도 공개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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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국토부는 "국민의 알 권리와 지하안전의 투명성을 위해 복구 실적까지 공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 정책관은 "2026년에는 전국 지자체를 설득해 지역 데이터를 JIS에 통합하는 게 목표"라며 "행정안전부와 협의해 지하 빈 공간 복구율을 지자체 평가 항목에 반영하고, 데이터 제출 시 가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참여를 유도할 계획"이라고 했다.
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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