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리는 트럼프 피해 영국왕 초청한 캐나다…영국의 지지가 힘이 되는 이유

캐나다 총리, 英 국왕 방문 요청
찰스3세, 캐나다 독립 은연중 지지

26일(현지시간) 캐나다를 국빈방문한 영국 국왕 찰스3세와 카밀라 왕비가 캐나다 오타와 공항에 도착해 환대받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영국 국왕 찰스3세가 캐나다를 국빈 방문해 이례적으로 캐나다 의회 개원 연설까지 나선 이유가 있을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캐나다 합병 위협이 이어지는 가운데 영국 국왕의 캐나다 방문이 미국에 주권을 내주지 않겠다는 캐나다의 의지를 국제 사회에 보여주는 효과를 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캐나다 정부가 주권을 강조하기 위해 영국 국왕을 초청하는 정치적 이벤트를 벌였다는 것이다. 다만 영국 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와 관세 추가 협상을 앞둔 만큼 이번 찰스3세의 캐나다 지지 행보가 예상치 못한 걸림돌이 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英 국왕 초청한 캐나다 총리…"캐나다의 확고한 수호자"

26일(현지시간)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왼쪽)가 캐나다를 방문한 영국 찰스3세 국왕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번 찰스3세의 방문은 카니 총리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로이터연합뉴스

찰스3세는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부인 카밀라 왕비와 함께 캐나다의 수도인 오타와를 국빈 방문했다. 이번 방문은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의 초청에 따른 것이다. 카니 총리는 찰스3세에게 이번 방문 기간 동안 제45대 캐나다 연방의회 개원식에 출석해 연설해줄 것을 요청했다.

영국 국왕이 캐나다 의회에서 연설하는 것은 1977년 엘리자베스2세 여왕의 연설 이후 48년만의 일이다. 캐나다는 영연방 회원국으로 호주, 뉴질랜드 등 다른 영연방 국가들과 함께 영국 국왕을 공식적인 국가원수로 삼고 있지만, 영국 국왕은 헌법에 명시된 정치적 중립의무에 따라 영연방 국가에서의 정치적 행보를 멀리해왔다.

캐나다 정부는 찰스3세의 이번 방문 자체가 캐나다의 주권 수호와 연결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카니 총리는 "국왕은 캐나다의 확고한 수호자"라며 "이번 방문은 우리나라의 주권을 분명하게 강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취임 전후 캐나다를 합병하겠다는 발언을 이어가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맞대응이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1월 취임 전후로 "캐나다는 미국의 51번째 주"라고 발언하며 쥐스탱 트뤼도 전 총리에게도 "캐나다 주지사"라고 모욕적인 언사를 한 바 있다.

찰스3세, 캐나다 은연중 지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찰스3세는 그동안 미국의 캐나다에 대한 합병 위협과 캐나다의 주권 수호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여왔다. 트뤼도 전 총리는 지난 3월 찰스3세와 회담을 가진 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캐나다 국민에게 중요한 문제, 특히 캐나다의 주권과 독립의 미래를 논의했다"고 밝혔다.

찰스3세가 은연중에 지속해서 캐나다를 지지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찰스3세는 지난 2월 캐나다 국기 도입 60주년을 기념한 행사에 캐나다 훈장을 달고 참여했으며, 캐나다에 대해 '자랑스럽고 회복력이 강하며 자비로운 나라'라는 공식 메시지를 냈다"며 "올해 초 왕실의 나무 심기 행사에서는 단풍나무를 택하고 영연방 예배 행사에는 캐나다를 상징하는 의자에 앉는 등 캐나다를 지지하는 행보를 보여왔다"고 전했다.

캐나다 내에서는 그동안 국가원수인 국왕이 트럼프 대통령의 모욕적인 합병 언사에 무대응으로 나서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국가원수라면 캐나다의 주권과 독립을 존중하라고 미국 정부를 압박해야 한다는 것이다. 캐나다 헌법학자인 라일 스키너는 지난 3월 SNS를 통해 "캐나다 국토와 주권에 관한 국왕 명의의 성명이 나오길 고대한다"며 "국왕의 공개 성명이 없다면 많은 캐나다인이 실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미 관세 협상 급한 英 정부…외교적 마찰 우려

키어 스타머 영국총리. EPA연합뉴스

영국 내에서는 찰스3세의 캐나다 지지 행보가 자칫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세 협상에 불리하게 작용할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9월 영국 방문을 앞두고 추가 관세 협상을 노리는 상황에서 미국과의 외교적인 마찰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BBC는 영국 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찰스3세는 영국과 미국의 관계를 위태롭게 하지 않으면서도 캐나다 연대 메시지를 전달하는 균형을 맞춰야 할 상황에 놓여있다"며 "영국은 지난 2월 찰스3세의 국빈 방문 초청을 이용해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샀는데 이번에는 캐나다가 찰스3세를 통해 미국과 거리를 두려고 한다"고 전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지난 2월 미국과의 무역 협상을 위해 백악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찰스3세 국왕이 친필로 쓴 국빈 방문 초청장을 전달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산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초청에 따라 오는 9월 영국을 방문한다. 영국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 때 미국과의 관세 추가 협상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영국은 지난달 9일 미국과 첫 관세협정을 타결하고 철강과 자동차 품목 관세 25%를 철폐하는데 성공했지만, 기본 상호관세 10%는 아직 유지되고 있다.

반면 캐나다 정부는 영국이 트럼프 대통령을 초청한 것에 반발해왔다. 캐나다 합병 발언을 일삼는 트럼프 대통령의 국빈 초청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카니 총리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합병 압박을 받은 2월 당시 상황을 고려했을 때 캐나다 국민은 영국의 국빈초청에 감명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며 "우리의 주권 문제에 분명히 문제가 있었던 시기"라고 지적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