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문화축전에서 '아침 궁을 깨우다' 해설
"보름 동안 거의 매일 답사하며 준비…행복해"
"새로운 땅의 역사, 현지인 이해하는 단서"
프랑스 방송인 파비앙은 창덕궁 숲길의 길잡이다. 지난 4일 끝난 궁중문화축전에서 외국인 전용으로 마련된 '아침 궁을 깨우다'의 해설을 맡았다. 개장 전인 아침마다 외국인 서른 명을 인솔해 2시간 동안 산책했다. 궁의 운치와 자연의 풍광으로 안내하며 창덕궁의 역사와 전통을 소개했다. "저기 보이는 건물은 '부용정'이라는 정자예요. 조선의 왕이 학자들과 정사를 논하거나 낚시를 즐겼던 곳이죠. 왕실 가족의 휴식 공간이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지난 2일 외국인 관람객들은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설명을 경청했다. 몇몇은 이동하는 틈을 타 질문했다. 파비앙은 막힘없이 영어와 프랑스어, 스페인어로 답변했다. 비결을 묻자 "열심히 준비했을 뿐"이라며 웃었다. "창덕궁을 온전히 감상하려면 2시간만으로 부족해요. 꼭 가볼 만한 곳들을 골라서 동선을 짜야 했죠. 보름 동안 거의 매일 답사하며 준비했어요. 예약하기 힘든 후원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요."
이날 관람객 국적은 미국, 프랑스, 영국, 브라질, 중국, 일본 등으로 다양했다. 한국인이 아니라서 맞춤형 안내가 필요했다. 파비앙은 출발지인 금천교에서 기본적인 지식부터 들려줬다. "간략하게라도 조선에 대한 정보를 알아야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어요. 그래서 유교 사상, 5대궁(경복궁·창덕궁·창경궁·덕수궁·경희궁)이 세워진 배경, 한양 천도의 역사 등을 이야기해줬죠."
경험에서 우러나온 구성이다. 파비앙은 2007년 한국을 처음 방문해 조선의 궁에 매료됐다. 이듬해 한국에 정착해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한국인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과정이라고 여겼다. "역사를 알아야 새로운 땅에 수월하게 정착할 수 있어요. 그것이 현지인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는 단서거든요. 수수께끼처럼 하나씩 풀어나가는 재미가 있죠. 그렇게 책을 많이 읽다 보니 어느 정도 지식이 쌓였어요. 그걸 바탕으로 다양한 일을 하다 보니 전문적으로 파고들게 됐고요."
이제는 한국 알리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영주권은 물론 한국인도 합격하기 어렵다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자격증(1급)까지 취득했다. 최근에는 국립문화유산연구원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튀르키예 공동학술조사, 아시아권 문화유산 보존 전문가 역량 강화 프로그램, '세계의 고고학' 학술행사 등에 참여한다. 파비앙은 "한국의 문화유산을 소개할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관람객들의 만족한 얼굴을 확인할 때가 가장 뿌듯하죠. 사실 출근길부터 신나요. 창덕궁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입장해 궁의 고즈넉한 정취에 휩싸이면 스스로 '재미있게 잘살고 있구나'라고 생각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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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궁에서의 활동은 더 많아질 수 있다. 국가유산청과 국가유산진흥원이 올해부터 궁중문화축전을 글로벌 축제로 육성한다.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브랜드 인지도를 제고한다. 파비앙은 실현 가능성을 크게 본다. 전문 해설사로 자리 잡아 새로운 변화에 일조하고자 한다. "조선의 궁은 고층 건물들에 둘러싸인 풍경만으로도 외국인에게 매력적이에요. '아침 궁을 깨우다'와 같은 프로그램을 많이 펼쳐진다면 그 문화까지 실감 나게 즐길 수 있을 거예요. 기회가 된다면 더 재미있고 깔끔한 해설로 돌아올게요."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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