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정책으로 도시 정체성 재구성화
도서관·에코칼리지 등 지역 미래 제시
K-컬처 열풍이 전 세계를 휩쓴 지난 10여 년. 한국의 음악, 영화, 문학은 국경을 넘어 하나의 문화 코드를 만들었다. 특히 2024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책을 읽는 문화가 다시 '힙'해진 계기가 됐고, 이는 곧 도시 정책에도 변화를 예고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순천시는 대한민국 대표 생태도시로서 새로운 방향을 택했다. 단순한 환경보호를 넘어 '생태문화'라는 인문 기반의 도시 철학을 본격적으로 정책화한 것이다.
지난 2023년 980만명이 방문한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보여준 것은 도시의 물리적 자원만이 아닌, 이를 수용하는 시민들의 의식 수준이다.
전봇대를 뽑고, 논의 농법을 바꾸고, 국가정원을 조성하는 과정은 수많은 갈등을 수반했다. 그러나 순천은 시민의 공감과 협력으로 이를 하나씩 풀어내며 '생태적 합의'를 이루어낸 보기 드문 도시로 평가받고 있다.
민선 8기 들어 순천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도서관에 있다. 2022년 69만명 수준이던 도서관 연간 이용자는 2024년 100만8,000명을 넘기며 무려 146% 급증했다. 전국 평균 대비 압도적인 수치다.
그 배경에는 '도서관의 역할 재정의'가 있다. 시는 도서관을 단순한 자료 보관소가 아닌, 문화가 흐르고 책이 일상에 스며드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신대도서관(2023), 어울림도서관(2024) 등 신규 개관을 통해 시립도서관은 10곳으로 늘었고, 북크닉·애니메이션 연주회·작가전 등 다양한 시민 참여형 프로그램이 전개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교육발전특구 지정과 연계해 '학교와 도서관의 1대 1 매칭' 독서 인문 프로그램, 지역 서점과 함께하는 청년 책 프로젝트, '원시티 원북' 운동 등은 도시 전역에 '책과 함께 사는 문화'를 확산하고 있다.
2025년 순천시는 국내 지자체 최초로 생태문명 전환을 위한 '에코칼리지'를 시범 운영한다. 인간 중심의 도시에서 자연과의 조화 속에 지속가능성을 모색하는 '생태 감수성'을 길러주는 실험학교다.
6개월간의 시범 과정을 거친 뒤, 내년 정식 출범할 예정인 순천에코칼리지는 단순한 시민교육을 넘어 시민이 정책 동반자로 성장하는 플랫폼을 지향한다. 교실에 갇히지 않고, 전국 전문가를 직접 찾아가 배우는 커리큘럼은 고정된 배움의 형식을 깨뜨린다.
시는 이 과정을 통해 기후위기, 생물다양성, 생태경제 등 복합 위기에 대응할 '공감형 시정 동력'을 키우고자 한다. 생태 인식이 향상될수록 행정 추진의 갈등과 비용은 줄고, 도시 경쟁력은 높아지기 때문이다.
순천시는 정원과 책, 생태교육을 도시의 삶 속으로 끌어들이며 '자연과 함께 사는 도시'를 현실로 만들고 있다. 도서관은 복합문화공간으로 진화하고 있고, 에코칼리지는 시민이 스스로 생태문명의 주체로 성장할 수 있는 실험의 장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변화가 행정 주도가 아닌 시민과의 공감과 동행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봇대를 뽑아내며 순천만을 지켰고, 도시와 정원 사이에 경계를 허문 것도 결국 시민들이 함께 만든 선택이었다.
이제 순천의 생태문화정책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자연을 경험하고, 책을 통해 자신과 도시를 함께 돌아보는 순환구조가 정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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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는 보존이 아닌 삶의 방식이고, 문화는 전시가 아닌 공유의 언어다. 그 철학을 실천해가는 순천의 오늘은 곧 미래도시가 걸어야 할 길을 미리 보여주는 '푸른 예고편'이 되고 있다.
호남취재본부 이경환 기자 khlee276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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