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재상고 이유 살펴보니
"매출 감소 없었다" 대법 판단에 "고정비 추가 투입" 반박
개별 노조원 손배책임, 피해자 입증도 문제
"손배청구 불가능" 법조계 중론
한화오션 470억 소송에도 영향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공장 불법 점거 사건에 대한 2023년 대법원 판결은 재계와 노동계에 모두 커다란 파장을 낳았다. 공장을 불법 점거해 생산을 방해한 비정규직 조합원의 행위는 형사상 유죄가 확정됐지만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은 대부분 부정됐다. '생산 손실이 실제 매출 손실로 이어졌다는 점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 판결로 불법 쟁의행위에 대한 민사적 구제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사실상 경영상 피해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현대차가 재상고를 결심한 건 손실이 발생한 부분에 대해 법적 판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황용연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노동정책본부장은 "불법 쟁의행위로 손해를 끼친 경우에는 반드시 손해배상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불법행위 피해자의 손해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불법행위자의 이익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현대차는 대법원이 파기환송한 건 손해배상 판단 기준을 까다롭게 봤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파업으로 인해 발생한 생산 차질에 대해 대법원은 "사후에 추가 생산 등을 통해 매출 손실이 회복됐다"는 이유로 손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차는 추가 생산을 위해 고정비용을 더 투입한 점을 대법원이 간과했다는 입장이다. 파업으로 떨어진 매출을 만회하기 위해 대체 생산과 추가근무를 투입한 건 대법원 판단에서 '손해'로 보지 않은 것이다. 재판부는 회사가 입은 손해가 구체적으로 증명돼야 하고 단순히 조업이 중단됐다는 사정만으로는 손해를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현대차는 파업이 없었다면 생산을 만회하기 위해 인건비를 더 쓸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대차는 또 손해배상 책임을 노조원들에게 균등하게 부과해선 안 된다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도 문제가 있다고 봤다. 개별 조합원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선 각자 손해 발생 기여도를 피해자가 입증해야 한다고 했는데, 법조계에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현대차는 재상고 검토 과정에서 이런 법조계 판단을 반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정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피해자인 기업이 현실적으로 각 개인이 어떤 불법행위를 했는지 입증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결국 이 기준은 손해배상 청구 자체를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현대차 재상고는 유사한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화오션이 하청노조의 불법 점거로 인한 손실에 대해 제기한 470억원 손해배상 소송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사건에도 법원이 '현대차 판결'과 같은 기준을 적용할 경우, 기업 측 청구가 모두 기각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앞서 한화오션은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이하 하청지회)가 2022년 6월부터 7월까지 51일간 조선소를 점거해 약 8000억원의 피해를 봤다며 이 가운데 일부인 고정비 470억원을 배상하라고 청구했다. 사건은 현재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에서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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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조합원 개별 책임 입증' 기준 역시 현실적으로 매우 높은 장벽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현대차 판례를 그대로 적용하면 한화오션이 손해 입증 부담을 넘기 어려울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오현길 기자 ohk041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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