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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타그램]기분의 역할, 소리의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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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은 좋고 나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명사와 형용사를 품은 대명사 같은 것,
음악도 기분처럼 좋고 나쁨으로 말할 수 없는 다양한 감정의 이야기를 가졌다.

기분(氣分)이란 단어는 일본식이라고 했다.
언론인 이병철 선생은 기분은 좋거나 나쁘거나 둘 중 하나인 상태를 말하는 양분법적 명사로서, 사람의 기분을 그것들 외에는 없는 것으로 생각하게 한다('모국어를 위한 불편한 미시사', 천년의 상상)고 썼다. 그러나 기분이 스스로 상태를 결정하지 않고 수많은 형용사를 품는 그릇으로 역할 하는 것은 또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날아가는 듯한 기분' 이라든가, '골목대장이 된 기분', '봄볕에 살랑살랑 부는 바람을 등지고 풀밭을 걷는 기분' 같은 표현들이다. 좋거나 나쁜 개념 사이에만 있지 않고, 그 많은 명사와 형용사들을 차용하고 포용하는 대명사 같은 기분은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수많은 것들의 상태를 연결하는 관계의 이름이 된다.

[언스타그램]기분의 역할, 소리의 감정 태풍이 지나간 다음날 한강변에 핀 천인국(天人菊) 위로 나비 한 마리가 맴돌고 있다. (2005년 서울) 허영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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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을 건드리지 않는 고요한 잔물결 같은 노래들로 플레이 리스트를 만들어봤다. 음악이 기분과 무관할 수는 없지만, 마음에 격랑을 일으키지 않는 유유자적하고 완만한 음악이 필요할 때가 있다. 느린 바람처럼, 그런 바람에 흔들리는 활엽수 가지처럼, 그냥 노래는 노래대로 연주는 연주대로 흘러가는 느린 것들은 잘 질리지 않는다. 소리에도 '슬프다'거나 '발랄하다'거나 아름답거나 처연하거나 하는 감정이 있다. 소리 자체에 감정이 있다기보다는 사람이 듣고 느끼는 감정이 소리의 감정이 되고 그 감정은 사람마다 다른 얼굴로 나타난다. 감정도 얼굴처럼 세월과 걸어온 길이 그 속에 있다. 애절한 단조와 절창의 호소력을 잘 알지만 자주 가까이하기는 어렵다. 음악을 듣는 것은 생각을 채우고 있는 현실의 부스러기와 덩어리들 사이로 길을 내는 것과 비슷하다. 길은 넓은 직선로일 수도 오솔길일 수도 있다. 그만큼 비워지고 정리된 마음속 공간만큼 우리는 편안하거나 좋은 기분으로, 음악이 계속되는 동안 위안 같은 산책을 누린다. 딱히 위로나 격려를 말하지 않아도 잠시 이곳이 아닌 어딘가로 데려가 주기도 하고, 막힌 생각의 통로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 넣어 주는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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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타그램]기분의 역할, 소리의 감정 음악도 기분도 바람 앞에서 제각각 다르게 또는 함께 눕는 풀잎 같다. (2016년 제주도) 허영한 기자

노래가 가르쳐주지도 언급하지도 않은 것들에 대한 상념이 문득 노래 위에 얹힐 때가 있다. 처연하고 무위해서 늘어지고 졸리기도 한 간주와 2절 사이 어디쯤 흐느적거리고 떠다니다 보면 눈앞에 나비 한 마리 날아다니는 풍경을 보는 양 착각이 들 때가 있다. 그리고 문득 오래된 사진 한 장이 떠오를 때도 있다. 다만 이것은 음악이 기분과 감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야기다. 음악도 기분처럼 좋고 나쁜 것으로만 나눌 수 없다.




허영한 기자 youngha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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