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집단사직 일년, 의료진 피로도 쌓이고 진료 급감
정부의 일방적 정책 추진에 의료계 반발 지속
탄핵정국 속 동력 상실…이달 공청회서 대화 재개 가능성도
정부가 의과대학 정원 2000명 확대를 선언하면서 불거진 의정 갈등이 꼬박 1년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의료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은 돌아올 기미가 없고, 신규 의사 배출도 급감하고 있다. '응급실 뺑뺑이'와 '소아과 오픈런' 등을 개선하겠다던 정부의 의료개혁 추진방안은 본격적으로 실행도 하기 전에 탄핵정국에 막혀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6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국 221개 수련병원이 지난해 사직한 인턴 임용포기자 2967명을 대상으로 지난 3~4일 양일간 다음 달 수련을 재개할 상반기 인턴 모집을 실시했으나 지원자가 극소수에 그쳤다.
삼성서울병원과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이른바 '빅5' 상급종합병원 대부분이 지원자가 한 자릿수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의대생 집단 휴학으로 의사 국시 응시자가 줄면서 신규 의사 배출이 급감한 상태에서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마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수련을 재개하겠다는 레지던트도 소수에 불과해 지난달 15∼19일 사직 레지던트 922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상반기 전공의 모집에는 겨우 199명(지원율 2.2%)만이 지원했다.
과거 전공의 비중이 40%에 이르던 대형 병원들은 당장 환자 수 및 수술 급감 등으로 병원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빅5 병원 중 서울대병원과 서울성모병원,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등은 지난해 상반기에만 2000억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다. 수술실 등 전공의들이 빠져나간 공백은 교수와 전문의, 의료지원(PA) 간호사가 간신히 메우고 있지만, 병원마다 신규 환자의 외래진료를 제한하거나 2차병원으로의 전원이 급증했다.
정부는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개특위)'를 통해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중중·필수의료 집중 지원, 전공의 수련 혁신 등 1차 실행방안을 내놓으며 의료개혁에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의개특위 자체가 출범 당시부터 의료계 주요 단체를 배제한 채 논의를 강행한데다 의료 현장의 업무 과중, 환자들의 진료 지연 문제 등을 해결하지 못하면서 의료계의 반발이 계속됐다. 의정 갈등 봉합을 위해 추진했던 여야의정 협의체는 야당과 의사단체가 빠진 채 첫 회의를 열었지만 이내 무산됐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와 당시 포고령에 담긴 '전공의 처단' 문구가 갈등을 더욱 악화시켰다. 탄핵정국과 함께 정권 교체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의료개혁이 중단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이에 당초 지난해 연말 공개할 예정이었던 의료개혁 2차 실행방안은 확정되지 못한 채 발표가 계속 미뤄지고 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정부가 의대 증원 문제를 원점에서 재논의하겠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의료계는 당장 현재의 의료 개혁을 중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택우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은 "대통령 부재 상황에서 의개특위 활동은 의미를 잃었다"며 "정부는 고집스러운 태도를 버리고 잘못된 정책은 즉시 멈추라"고 요구했다.
정부와 의료계 안팎에선 오는 14일 국회에서 열리는 '의료인력 수급 추계위원회 법제화' 관련 공청회에서 의정 갈등 해결에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기대하고 있다. 서명옥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보건의료기본법 개정안'은 의료계 의견을 대폭 반영해 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를 설립하고 정원 조정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는 전 학년도 증원 규모에 따라 사회적 부작용이 발생했을 때 정원을 줄일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어 이를 근거로 2026학년도 의대 정원 감원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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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의대 정원 논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한편 정책의 연속성 차원에서 의료개혁 또한 계속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2026년도 의대 정원과 관련해서는 새 학기가 시작하는 3월 전까지 의협과 협의할 것"이라며 "실손보험 구조 개혁, 비급여 관리 강화 등을 담은 2차 실행방안도 이달 안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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