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사상 최대 실적
메모리 위기 고부가제품 돌파
HBM3E 32단 제품까지 갈수도
HBM4도 하반기 양산 계획
매출 비중 확대 절반 수준 예상
내년엔 글로벌 83조 시장 전망
SK하이닉스가 매출·영업이익·순이익에서 창사 이래 최고 실적을 거둔 것은 회사의 간판 제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의 기술 우위와 인공지능(AI) 시장의 급성장이 맞물려 거둔 성과다. 2013년 처음으로 HBM을 세상에 내놓은 뒤 약 12년간 공들여 쌓아 올린 기술력이 빛을 발했다.
SK하이닉스는 이날 실적 발표를 계기로, HBM을 중심으로 한 기술개발 및 수익성 위주의 경영전략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연말 D램 가격의 하락과 HBM의 공급 과잉,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로 ‘메모리 시장’에 위기가 불어닥칠 것이란 업계의 우려를 뒤엎고, 고부가 가치를 자랑하는 HBM으로 견고한 실적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실제 SK하이닉스 내부에선 최근 HBM을 새로운 방식으로 개발, 다른 기술로 진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데 업무와 논의의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HBM3E 단수 높이고 HBM4까지 노린다
HBM 시장 주도권을 더욱 굳히기 위해, SK하이닉스는 차세대 HBM 개발을 전방위로 진행하며 박차를 가하고 있다. 5세대 HBM3E의 단수는 높일 수 있는 데까지 높인다는 계산이다. 현재 HBM3E 12단 제품을 양산해 고객들에 공급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11월에는 HBM3E 16단 제품 개발을 공식화했다. 올해 상반기에 샘플을 공급, 인증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어 SK하이닉스의 HBM3E는 16단을 넘어 20단, 24·32단까지 넘보고 있다. 이강욱 패키지 개발 담당 부사장은 지난해 10월 반도체 대전(SEDEX) 2024 기조강연에서 “HBM이 20단, 24단, 32단 어디까지 갈지 모르기 때문에 하이브리드 본딩을 중심으로 스택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기반으로 6세대 HBM인 HBM4까지 안정적인 발걸음을 내딛겠단 것이 SK하이닉스의 청사진이다. SK하이닉스는 HBM4를 이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양산할 계획이다. 중요 고객사인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공급을 당초 계획보다 6개월 앞당겨 달라”고 한 특별 주문에 따른 것이다. SK하이닉스는 최근 HBM4 제조의 기반이 되는 D램 공정 기술도 높였다. 다음 달부터 세계 최초로 10㎚(나노미터·1억분의 1m)급 6세대(1c) D램 양산에 돌입한다. 구체적으론 16기가비트(Gb) 더블데이터레이트(DDR)5 생산을 시작한다. 이 제품은 전 세대 대비 동작 속도가 11% 빨라졌으며 전력 효율은 9% 이상 개선된 것으로 전해진다. SK하이닉스는 앞으로 이 제품과 D램 공정기술을 차세대 HBM 제품군과 LP(저전력)DDR6, GDDR7 등 첨단 제품을 만들 때 활용할 예정이다.
HBM 매출 비중, 절반에 육박할 듯
SK하이닉스가 앞으로도 HBM에 전력투구하며 전체 매출에서 HBM이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가 이날 실적 발표와 함께 밝힌 D램 매출에서의 HBM 비중은 약 40%였다. 업계와 증권가에선 이 비중이 올해 더욱 높아져, D램 매출의 절반에 가까운 수준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증권사들은 보고서에서 올해 SK하이닉스의 HBM 평균 매출이 25조4155억원을 기록해 D램 전체 매출(54조9253억원) 중 46.3%를 차지할 것으로 추산했다.
HBM의 비중을 높이는 것을 SK하이닉스의 ‘생존방식’으로 보는 시각도 늘었다. 고부가 가치 제품인 HBM에 대한 수요를 확실하게 끌어들이고 공급량을 확보하는 전략이 메모리 업황에 크게 좌우되지 않고 계속해서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원천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류영호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경쟁사 대비 고부가가치 제품 비중이 높은 만큼 과거와 같은 하락 사이클 영향은 제한적”이라며 “전방 산업 수요 개선이 추가로 악화한다고 해도 출하 조정을 통해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는 체력을 보유했다”고 분석했다.
“HBM 시장, 내년엔 83조로 성장”
HBM 시장에 대해선 전 세계 외신, 전문가들도 여전히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다. 엔비디아에 이어 구글, 아마존, 메타 등도 인공지능(AI) 칩을 자체 개발하기로 함에 따라 HBM에 대한 수요는 보다 증가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 JP모건은 지난 21일 HBM 시장 규모가 올해는 380억달러(약 55조원)에 이르고 내년에는 580억달러(약 83조원)에 도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어 엔비디아가 여전히 HBM 시장에서 ‘큰손’ 고객으로 입지를 다지는 가운데서 2027년이 되면 구글, 아마존 등 다른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들의 수요가 약 29%가 될 것이라 전망하기도 했다. 일부 외신과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AI·가상화폐 정책 책임자(차르)로 임명된 데이비드 올리버 색스도 최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을 계기로, 제이슨 칼라카니스, 데이비드 프리버그 등 유력 투자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올해 가장 많이 오를 테마주’로 ‘HBM 반도체 제조사’를 꼽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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