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약 맞으면 음식물 인지만 해도 포만감
GLP-1 모방 물질이 시상하부에 작용한 결과
국내 연구자가 위장관 호르몬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이 음식을 보거나 냄새를 맡는 등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포만감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밝혀내 올해 첫 '이달의 과학기술인상'을 받았다.
1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은 이달의 과학기술인상 1월 수상자로 최형진 서울대 뇌인지과학과 교수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대사질환과 심뇌혈관질환 치료제로 알려진 GLP-1의 식욕억제 기전을 밝혀내 비만 및 대사질환 개선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등 유명인이 많이 사용하는 다이어트약으로 이름을 알린 비만 치료제 '위고비'의 세마글루타이드도 GLP-1을 모방한 물질로 알려졌다. 최 교수는 지난해 6월 국제적인 학술지 '사이언스' 온라인판 게재 논문에서 "GLP-1이 뇌의 시상하부에 작용해 포만감을 유발하고 식욕을 조절한다"라고 설명했다. 시상하부는 자율신경계와 호르몬 분비 등을 조절하며 신체 항상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 뇌의 한 부위다. 아울러 이는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나타나는 반응이 아니라 즉각적인 반응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음식을 먹지 않아도 호르몬이 작용해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치킨 실험'을 통해 GLP-1의 효과를 보여줬다. 한 그룹에는 '비만 치료제'를 주고 다른 그룹은 비만 치료제를 주지 않았다. 두 그룹에 치킨을 제공한 뒤 포만감의 정도를 수치화했다. 실제로 나타난 결과는 놀라웠다. 비만 치료제를 맞지 않고 치킨을 '먹은' 그룹보다 비만 치료제를 맞고 치킨을 '보기만 한' 그룹이 더 배부르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비만약을 맞은 참가자들은 치킨을 상대적으로 적게 먹었고 이는 체중 감소로 이어졌다.
쥐 실험에서도 결과는 유사했다. 연구진이 광유전학을 활용해 쥐에게 GLP-1 수용체 신경을 인위적으로 활성화하면 즉시 식사 중단을 유도했고 반대로 억제할 경우 식사가 이어진다는 점을 입증했다.
해당 연구 결과는 GLP-1 식욕 억제제의 뇌 작용 기전을 명확히 규명한 중요 성과로 평가받았다.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던 위고비 등의 식욕 억제 작동 원리를 설명한 것이다. 최 교수는 "이번 연구는 식욕이 뇌에서 어떻게 조절되고 GLP-1 식욕 억제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뇌과학 도구를 활용해 규명한 의의가 있다"며 "현대인들의 대사질환 발병 원인을 규명하고 새로운 식욕 억제제 개발에 도전하겠다"라고 수상 소감을 전했다.
구나리 기자 forsythia2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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