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투입되자 美·英·佛 장거리 미사일 허용
러 '핵 카드' 꺼내들며 반격
트럼프 승리 '변곡점'…"美대통령 취임일 겨냥"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1000일을 넘겨 세 번째 겨울을 앞두고 있지만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백악관 복귀를 앞두고 종전 협정 가능성이 거론되지만, 양측은 미사일 공격을 주고받으며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다.
지난 3년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인 도네츠크·루한스크·자포리자·헤르손 등을 강제 병합해 우크라이나 영토의 약 5분의 1을 차지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쿠르스크를 침공했으나 점령지의 약 40%를 잃었다. 전반적으로는 전쟁 초반부터 큰 변화 없이 전선을 유지했다는 평이다.
美·英·佛 장거리 미사일 허용에 전세 급변
그러나 최근 미국을 시작으로 영국, 프랑스 등이 ‘장거리 미사일 지원 불가’ 방침을 돌연 해제하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사실상 러시아 본토 공격을 허용한 셈이다.
우크라이나는 지난 19일(현지시간) 미국산 지대지 미사일 에이태큼스(ATACMS), 20일 영국의 공대지 순항 미사일 스톰섀도로 이틀 연속 러시아 본토를 타격했다. 개전 이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를 서방 장거리 미사일로 타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3일엔 장 노엘 바로 프랑스 외무장관이 언론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가 ‘자기 방어 논리’에 따라 러시아에 프랑스산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가 프랑스의 스칼프(SCALP) 미사일까지 투입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스칼프와 스톰섀도는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 개발한 미사일로, 사실상 동일하다. 그간 러시아 본토 타격을 위한 무기를 지원하는 것에 소극적이었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국가들이 방침을 변경한 것이다. 여기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2년 되살렸던 대인 지뢰 금지 규정을 뒤집고 우크라이나에 대인 지뢰도 지원하기로 했다.
서방 국가들이 태세를 전환한 이유는 지난달 북한군의 전장 투입이다. 러시아는 북한의 포탄을 공급받은 데 이어 북한 병력을 서부 접경지 쿠르스크에 배치하고 우크라이나를 거세게 압박했다. 여기에 CNN은 우크라이나 본토인 마리우폴과 하르키우 지역에서도 북한군이 목격됐다고 보도했다. 서방 국가들은 이를 ‘대규모 긴장 고조’ 신호로 보고 있다. BBC는 "서방은 며칠간 급격한 결정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신호를 세계에 보냈다"고 설명했다.
'핵 카드' 꺼내든 러, 연일 반격…韓에도 경고
러시아는 강력히 반발하며 연일 반격에 나서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9일 ‘핵 카드’로 맞불을 놓았다. 핵보유국의 지원을 받은 비(非)핵보유국에도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핵 교리(독트린) 내용을 개정한 것이다. 사실상 우크라이나를 핵 공격 타깃에 포함한 것이다. 이어 21일 최신 중거리 미사일 시스템 중 하나인 ‘오레시니크(개암나무)’로 우크라이나 드니프로를 타격하며 우크라이나와 동맹국들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날렸다. 미 국방부는 해당 미사일이 개조를 거치면 핵탄두를 장착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24일 한국에도 "한국산 무기가 러시아 시민을 살상하는 데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면 양국 관계가 완전히 파괴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AP통신은 "약 3년간 이어진 전쟁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며 "바이든 대통령이 오랜 정책을 바꿔 우크라이나에 미국산 장거리 미사일을 허가하면서 시작됐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새로운 탄도 무기로 공격하면서 끝났다. 이는 국제사회를 경각심에 빠트리고 추가 긴장 고조에 대한 두려움을 높였다"고 평가했다.
유엔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으로 인한 민간인 사망자는 최소 1만2162명, 부상자는 2만6919명에 달한다. 2022년 4300만명이던 인구가 현재는 3500만명으로 약 5분의 1이 줄었다. 경제 타격도 심각하다. 우크라이나 당국에 따르면 경제 규모는 전쟁 전보다 78%로 쪼그라들었다.
러시아가 입은 피해도 만만치 않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지난 1일 러시아군의 하루 사상자가 1200명 이상이라고 밝혔다. 전체 사상자 수는 70만명가량으로 추정된다. 러시아 경제도 곪아가는 것은 마찬가지다. 경제 제재와 전쟁 자금 투입으로 인플레이션이 극심해지며 러시아 중앙은행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연 21%로 올렸다.
'24시간 내 종전' 트럼프 집권 앞두고 막판 신경전
양측 모두 심하게 타격을 받은 상황에서 확전 위험까지 무릅쓰며 전쟁이 고조되는 이유는 미국 정권 교체 영향이다.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승리가 변곡점이 됐다. 내년 1월 취임하는 트럼프 당선인은 바이든 행정부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부정적이다. 푸틴 대통령과 친분을 과시하기도 했고, 취임 시 "24시간 이내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고 선거 운동 기간에 여러 차례 공언했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인 마이크 왈츠 하원의원은 트럼프 당선인이 종전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며 "우리가 논의해야 할 것은 합의든 휴전이든 누가 협상 테이블에 앉느냐, 어떻게 하면 양측을 테이블에 앉힐 수 있느냐, 거래(deal)의 틀을 어떻게 하느냐다"고 말했다. 종전이 임박한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막판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우크라이나가 돈바스와 크림반도를 포기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점쳐지며 우크라이나는 한 치의 땅도 절실한 상황이다.
필립스 오브라이언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대 전략연구교수는 "트럼프 당선인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공급을 중단해 전쟁을 강제로 끝내려고 할 수 있다"며 "트럼프 당선인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고 휴전으로 이끈다면 러시아는 지금 가능한 한 많은 영토를 확보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강대강’ 구도로 보이지만, 실상은 큰 타격이 없다는 분석도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장거리 미사일 전투는 최전선 전투와 함께 벌어지고 있지만, 지상전에 눈에 띄는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고 있다"며 "군사적 목적보다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행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발사한 서방 미사일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반격한 새 미사일 모두 전황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만한 무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1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드니프로를 타격하는 데 사용한 신형 미사일 ‘오레시니크’에는 가짜 탄두가 장착됐다는 추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로만 코스텐코 우크라이나 의회 국방 및 정보위원장은 러시아의 미사일 타격으로 생긴 구덩이 폭이 약 1.5m에 불과하고 주변에 눈에 띄는 피해도 없었다며 "만약 미사일이 정말 빈 채로 발사됐다면 우리는 그것을 실제 군사적 목적이 아닌 순전히 과시적 공격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발렌틴 바드라크 러시아 연구센터(CRS) 군사분석가는 우크라이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푸틴의 행동은 오늘이나 내일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트럼프 당선인이 대통령이 되는 1월20일을 겨냥한 것"이라며 "그는 트럼프에게 더 많은 영향을 미치고, 더 많은 것을 흥정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오수연 기자 syo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