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로 방일 외국인 소비 증가 현상
물가상승 탓에 일본 소비 시장 양분화
외국인 인바운드 vs 내국인 절약 지향
'엔바운드'는 달러에 대한 엔화의 가치가 떨어진 현상인 '엔저(円安)'와 '인바운드(Inbound)'가 결합한 용어다. 인바운드는 여행업계 용어로서 '외국인의 국내 여행'을 일컫는다. 다시 말해 엔화 약세로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의 소비 활동이 증가한 현상을 말한다.
엔바운드는 최근 일본 소비시장 트렌드를 대표하는 4대 키워드 중 하나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는 지난달 '4대 키워드로 본 일본 소비시장 트렌드와 한국 소비재의 기회' 보고서를 발간하고, 4대 키워드로 엔바운드와 함께 인플레이션·나 혼자·디지털을 제시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외국인 입국 방역 의무화 조치를 폐지했다. 그러자 외국인 관광객의 입국 규모와 여행 소비액은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다. 지난해 방일 외국인 관광객은 2506만명이다. 코로나19 유행 전인 2019년(3188만명)의 80% 수준이다. 이들 관광객의 여행 소비총액은 2019년 4조8113억엔(43조원) 대비 9.9% 증가해 역대 최고액인 5조2923억엔(47조원)을 기록했다. 1인당 소비액도 21만2000엔(193만원)에 달했다.
올해 2분기에도 외국인 관광객의 씀씀이는 후했다. 일본관광청(JNTO)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방일 외국인 1인당 소비액은 23만8722엔(215만원)이다. 여행 소비 총액은 2조1370억엔(19조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3.5%, 코로나19 유행 이전인 2019년보다 68.6% 증가했다. 일본 정부는 1인당 소비액 20만엔(180만원), 방일 관광객 수 2019년 실적 초과를 목표로 다음 해 관광 진흥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일본 내 주요 백화점과 면세점, 드럭스토어 등 매출도 덩달아 회복했다. 대표적인 소비처인 백화점 매출액은 28개월 연속 상승했다고 일본 백화점협회는 분석했다. 백화점 면세매출액도 27개월 연속 증가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일본 내 소비 경험에 대해 '가성비가 뛰어나다'고 인식하는 이유는 엔저 현상 때문으로 풀이된다.
엔바운드가 일본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만 주는 건 아니다. 내국인 소비시장의 물가상승이란 부정적인 요인으로도 작용했다. 관광지 내 수산물 외식 가격의 상승이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최근 일본 도쿄도 도요스 지역에 개장한 상업시설 센카쿠 반라이 내 매장의 회덮밥 가격은 6980엔(6만2800원) 수준이다. 도쿄 내 다른 지역보다 5000엔(4만5000원) 이상 비싼 가격이다.
일본 전문가들은 관광객의 증가에도 실질소득이 감소하면서 일본 내국인들의 체감 경기가 더욱 나빠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지난 9월 일본의 실질 소비지출과 실질 임금은 모두 2개월 연속 줄었다. 일본 체감경기를 나타내는 9월 실질 소비지출은 가구당 월평균 28만7963엔(259만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달보다 1.1% 감소한 수치라고 일본 총무성이 발표했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직원 5명 이상 업체의 노동자 1인당 평균 명목 임금은 월 29만2551엔(263만원)이다. 지난해 같은 달보다 2.8% 늘었지만, 물가 변동분을 반영한 실질 임금은 오히려 0.1% 감소했다.
이에 일본 소비시장은 양분화하고 있다. 엔화 약세로 구매력이 높아진 외국인 관광객이 프리미엄 제품 소비를 주도하는 '인바운드 소비(엔바운드)'와 일본 내국인들이 물가상승에 절약으로 대응하는 '절약지향 소비' 두 갈래다.
최호경 기자 hocan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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