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세계 여아의 날' 계기 간담회 개최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 출연 노진해양 참석
매서울 칼바람이 부는 한겨울에도 학생들은 김일성 동상을 청소해야 했다. 온몸이 꽁꽁 얼어도 패딩 같은 건 입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헌화를 강요하면서 값비싼 꽃은 사비로 사게 했다. 북한은 '진짜 살기 힘든 나라'였다. 2019년 북한을 떠나 한국으로 온 10대 소녀의 이야기다.
탈북 소녀 노진해양(16)은 '세계 여아의 날'을 하루 앞둔 10일 통일부가 남북관계관리단에서 개최한 주한 여성 외교단 초청 간담회에 참석해 북한에서의 기억을 이렇게 회상했다. 진해양은 "저는 한국에 와서 메이크업도 하지만, 북한에 있는 친구들은 메이크업은커녕 씻는 것도 제대로 못 한다"며 "씻지 못해 냄새가 나는 친구들도 있지만, 서로 이해하며 살아야 했다"고 말했다.
진해양의 아버지는 배선공 일을 했고, 어머니는 장마당에서 돈을 벌었다. 그 덕분에 다른 친구들보단 사정이 나았다. 그럼에도 '샤워'는 밖에서 떠온 물로 온 가족이 같이 씻어야 할 만큼 '사치'에 가까운 일이었다고 한다.
소녀는 "학교를 마치면 풀을 캐러 산에 가거나, 그 풀을 팔러 가는 친구들도 있었다"며 "그런 친구들의 집에 가보면 못 산다는 게 티가 날 정도로 아주 힘들어 보였다. 노력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란 걸 아니까 마음이 더 아팠다"고 했다.
한국에 온 뒤로는 샤워도, 화장도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영아가 쓰인 옷도 자유롭게 입고 다닐 수 있어 좋다는 진해양의 이야기는 영락없는 10대 소녀다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남한에서 탈북민으로 살아가는 삶이 쉽지만은 않다고 이야기할 땐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하루는 목숨을 걸고 탈북한 과정을 친구에게 털어놨더니 그 친구가 소문을 내겠다며 협박한 일이 있었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할 때 진해양은 울음을 애써 참느라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진해양은 어머니 우영복씨(54)와 함께 북한을 탈출했다. 남한에 도착하기까지 중국·베트남·라오스 등을 횡단한 여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가 지난해 개봉했다.
통일부는 한국 사회에 정착한 탈북 여아들의 미래를 응원하고 북한에 남아 있는 여성·여아들의 열악한 인권 문제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이번 간담회를 마련했다. 이날 간담회엔 과테말라·체코·헝가리·유럽연합(EU)·콜롬비아 공관 소속 여성 외교관이 참석했다. 김수경 차관은 "북한에서의 생활과 탈북 과정에서 겪은 차별과 편견, 폭력의 경험을 딛고 기회를 찾아, 꿈을 찾아 한국으로 온 탈북민 여아들의 꿈을 우리가 반드시 지켜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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