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조력 존엄사 도입 반대
연명의료결정법 보완이 우선
현대의학으로 통증 조절 가능
조력 존엄사 도입을 반대하는 전문가들은 사회적 준비 부족, 호스피스 제도 미비 등을 이유로 시기상조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에 대한 해법 마련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성급한 조력 존엄사법 제정이 이뤄질 경우 환자들에겐 일종의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존엄사 ‘미화된 표현’ 비판
고윤석 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조력 존엄사를 제도화하기엔 사회적 준비가 부족하다”며 “기존 연명의료결정법 보완부터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고 교수는 존엄사는 미화된 표현이며 올바른 사회적 합의를 방해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약 82%가 조력 존엄사에 찬성한다는 결과가 나온 것은 '뭔가 편안하게 죽게 해주는 것인가 보다'라고 생각한 이들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며 “자살이란 용어를 사용하면 또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무엇을 논의 중인지 정확히 알기 위해 직관적이고 행위 중심인 ‘의사 조력자의 임종’이란 표현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현재는 의료계와 사회, 모두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상황”이라며 조력 존엄사의 성급한 논의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헌법소원을 낸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끼는 환자는 의료적으로 도와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임종 돌봄 관련 의료체계 개선 없이 조력 존엄사를 허용해버리면 가족들의 어려움, 경제적 이유 등 사회적 압박에 의해 환자가 결정하게 되는 상황이 나올 것”이라며 “실제 개인이 겪는 통증은 객관화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고 우려했다.
생애 말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 교수는 “법률과 제도뿐 아니라 돌봄의 질 향상을 위한 돌봄에 관한 인식의 개선, 환자의 권리 및 역량 강화, 시민들의 참여, 의료진의 훈련과 교육, 시민전문가 양성 등 다양한 정책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며 “보건의료 인력 개발, 자원 배분, 의료기관의 운영 등 전 분야에 걸쳐 수행돼야 할 정책 영역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호스피스가 존엄한 마무리
문지호 의료윤리연구회 회장은 “육체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호소한다면 통증을 조절하는 전문가와 협진을 통해 더 세밀하고 안전하게 통증을 완화해 줄 수 있는 것이 현대의학의 수준이다. 해외 사례를 보면 육체적 통증보다는 삶의 의미를 잃은 정신적·영적 고통 때문에 조력 존엄사를 택한 경우가 85% 이상”이라며 “환자의 마지막 생애의 육체적, 정신적 돌봄 방법을 어떻게 향상할 것인가를 논하는 것이 의학과 사회가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문 회장은 조력 존엄사를 선택하는 경우는 통증보다는 삶의 의미를 잃었을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대의학의 발전으로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더라도 대부분은 감당할 만한 수준의 통증으로 완화할 수 있다”며 “정작 죽고 싶어하는 이유는 일상을 유지하지 못하고, 병상에서 진통제로 겨우 살아가는 삶이 의미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문 회장은 “호스피스에서는 불필요한 치료에 집착하지 않고 환자들에게 삶의 이유를 알려준다”며 “가족 및 지인들과 삶을 돌아보며 화해와 용서를 구하고, 감사와 사랑의 인사를 나누는 일, 유산을 정리하고 장례를 준비하는 일, 곧 맞이할 죽음과 사후 세계의 궁금증에 대해 성직자들과 얘기를 나누는 일 등이 속한다”고 말했다.
조력 존엄사는 말과 달리 죽음을 존엄히 여기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문 회장은 “조력 존엄사는 존엄함도 없고 행정 처리만 있을 뿐이다. 신청자는 회원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상당한 회비를 내야 한다. 검토 비용, 체류비, 항공편 등으로 2000만원 정도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며 “이 비용이 있다면 생애 말기 호스피스에서 의료보험으로 돌봄 혜택을 받으면서 존엄하게 삶을 정리하는 것이 훨씬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최태원 기자 peaceful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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