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 메달리스트 출전 무산
승마 종목 올림픽 퇴출 요구 계속
“폭력에 복종시키는 스포츠…동물 고통”
선수가 말을 조종해 겨루는 '승마' 종목을 올림픽에서 퇴출하라는 요구가 거세다. 2024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영국 승마선수 샬럿 뒤자르댕이 말을 1분 동안 24차례 채찍으로 내리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퍼지면서 승마 종목의 동물 학대 논란이 커지고 있다. 승마는 올림픽에서 유일하게 인간과 동물(말)이 호흡을 맞추는 종목이다. 1900년 파리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돼 124년 동안 이어져 오고 있다. 마장마술, 장애물 비월, 종합마술 등 3종목에서 개인·단체전 총 6개 매달이 주어진다.
말 학대 논란 중심에 있는 뒤자르댕 선수는 2024 파리올림픽 출전 자격을 잃었다. 영상 속에서 채찍질을 당한 말은 승마장 벽에 몰린 채 풀죽은 표정으로 도망가듯 구석으로 이동했다. 영상을 공개한 학생 선수는 "뒤자르댕이 서커스의 코끼리를 대하는 듯했다"고 했다. 동물 학대 논란이 커지자 뒤자르댕은 "매우 부끄럽다"며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사과했다.
뒤자르댕은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뿐 아니라 영국 선수단 개막식 기수 유력 후보로 꼽혀왔다. 예정대로 출전해 메달을 땄다면 사이클 선수 로라 케니(금메달 5개·은메달 1개)를 제치고 영국 여성 최다 올림픽 메달을 기록할 수도 있었지만 자초한 논란에 물거품이 됐다. 국제승마연맹(FEI)은 뒤자르댕의 국제대회 참가 자격도 박탈했다.
이후 국제 동물보호단체 페타(PETA)는 성명을 내고 "말은 스스로의 의지로 달리지 않는다. 폭력과 강압에 복종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올림픽에서 승마 종목을 빼라"고 요구했다. 페타는 "동물을 착취하는 종목은 올림픽에서 설 자리가 없다. 올림픽도 이제 현대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로 배 걷어차며 채찍질…스포츠인가 동물학대 인가
동물단체들은 '승마'를 단순히 '스포츠'로 보기엔 동물이 견뎌야 할 고통이 크다는 점에 주목한다. 승마에 투입되는 말에는 앞니와 어금니 사이에 통제용 금속 막대 '재갈'이 물려 있다. 선수가 말에 타 재갈을 당기면 말의 혀와 입술, 입천장 등에 고통이 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또 승마용 신발 뒤에는 '박차'가 부착돼 있다. 말 복부를 발로 차 자극해 더 달리게 하려는 용도다. 게다가 선수들은 채찍으로 말의 어깨나 엉덩이를 결승점에 도달할 때까지 여러 번 때린다. 실제 승마를 배울 때 가장 먼저 배우는 것도 '채찍질'이다. 이 과정에서 말은 엄청난 고통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물론 '말에게 불필요한 고통이나 압박을 주지 않는 것'이 승마의 정석이다. 승마 경기에서 말의 입이나 옆구리에서 피가 나는 경우 '실권 판정'을 받지만, 선수들이 더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재갈·박차로 말에게 압박을 가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동물단체들은 인간이 즐기는 '스포츠'를 위해 동물이 고통받으며 희생되지 말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근대 5종 이어 올림픽 종목서 빠지나
2020 도쿄올림픽 당시 근대 5종 경기(펜싱·수영·승마·육상·사격을 결합한 경기)에서 아니카 슐로이(독일) 선수 코치가 승마에서 배정받은 말이 말을 듣지 않자 주먹으로 내리치고 선수에게 계속해서 채찍질하라고 지시해 문제가 됐다. 국제 근대5종 연맹(UIPM) 집행위원회는 2028 로스앤젤레스(LA)올림픽부터 근대 5종의 5개 세부 종목 가운데 승마를 퇴출하고, 다른 장애물 경기로 대체한다고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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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학대 논란에 승마 종목을 올림픽에서 퇴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만큼 승마 종목 자체가 올림픽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앞서 줄다리기, 밧줄타기, 레슬링 등이 올림픽 종목에서 사라졌으며, 골프는 1900·1904년에 열린 뒤로 사라졌다가 2016년 112년 만에 돌아왔다. IOC는 경기 진행 방식, 정상급 선수들 참가 여부,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한 국가 수, 세계선수권대회 티켓 판매량, 미디어 노출, 개최국에서 얻는 인기와 비용 등 다각도로 고려해 종목을 정한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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