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인사 등 시위대 약 750명 줄체포
마두로, "명백한 쿠데타, 책임 물을 것"
베네수엘라 대선 개표 결과를 두고 부정 선거 의혹이 불거지면서 정부와 시위대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군과 경찰의 강력 대응 속에 야권 인사를 비롯한 시위대가 줄줄이 체포됨은 물론 사망자도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30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타렉 윌리엄 사브 베네수엘라 법무장관은 이날 749명의 시위대가 구금됐으며, 경찰 1명이 사망하고 48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발표했다. 이어 체포된 사람 중 일부는 테러 혐의로 기소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특히 야권 핵심 인사인 프레디 수페르라로 정책고문이 경찰에 붙잡히는 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재되기도 했다.
같은 날 인권단체 포로 페날은 SNS를 통해 중계한 기자회견에서 "베네수엘라 대선 관련 시위로 11명이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 중에는 15~16살의 미성년자도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이번 반정부 시위는 지난 28일 치러진 베네수엘라 대통령 선거에서 비롯됐다. 당시 베네수엘라 선거관리위원회(CNE)는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510만표를 얻으며 야당 후보인 에드문도 곤살레스 우루티아 후보(440만표)를 누르고 3선에 성공했다고 발표했으나, 야권 연합 측은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불복했다. 야권 지도자인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는 자체 조사 결과 우루티아 후보가 약 620만표를 확보해 마두로 대통령(270만표)을 크게 따돌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마차도는 이날도 우루티아 후보와 함께 수도인 카라카스 거리에 나와 "우리가 여기서 싸우고 있는 대상은 정권의 사기"라며 "우리는 모두 우루티아가 승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지지자들을 격려했다. 다만 "정부의 도발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며 평화적인 시위를 촉구했다. 외신은 초기에는 평화적인 시위가 진행됐지만, 행진을 막아서는 경찰과 난투극이 벌어지고,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는 등 점점 폭력적인 양상으로 변모했다고 전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이날 TV로 송출된 국방위원회 회의에서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범죄와 폭력, 사상과 파괴에 대해 우루티아와 마차도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블라디미르 파드리노 베네수엘라 국방부 장관은 "쿠데타가 진행 중"이라며 "마두로 대통령이 이를 막기 위해 나섰고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국민, 모든 기관, 군대도 그와 함께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쿠데타는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추종자들의 지원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백악관은 이날 성명을 통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완전하고 투명하며 자세한 투표 데이터를 즉시 공개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공표했다. 백악관 보도자료에 따르면 두 정상은 이날 통화에서 베네수엘라 선거 결과가 남미권 민주주의의 중요한 순간이라는 점에 동의하며 긴밀히 공조키로 했다. 이밖에 칠레, 멕시코, 에콰도르, 아르헨티나 정상들도 선거 결과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으면 마두로 대통령의 당선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이번 베네수엘라 대선은 차베스 전 대통령 때부터 25년간 이어져 온 좌파 독재를 야권 연합이 끊어내고 정권을 탈환할 수 있을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돼왔다. 앞서 서방 언론은 마두로 통치 기간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경제 붕괴와 반미 성향으로 인한 외교 관계 악화 등을 근거로 야권 우루티아 후보의 승리를 예상했다. 출구조사에서도 우루티아 후보가 65% 득표율로 마두로 대통령(31%)을 크게 따돌린 것으로 집계됐으나 선관위의 공식 발표에선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며 부정선거 의혹이 확산했다.
김진영 기자 camp@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