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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로 전락한 조례…"생애주기 지원 모색해야"[경계선 속 외딴섬]

시계아이콘02분 38초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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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81개 지자체 조례 제정
강제성 없어 전시행정 전락
지원 종료되고 실태조사 부진
상위법 통해 종합 지원 나서야

느린 학습자에 대한 지원 부재 문제가 수면 위로 떠 오르자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앞다퉈 조례 제정에 나섰다. 2020년 서울시를 시작으로 지난 4년간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 중 81곳에 관련 조례가 마련됐다.


그러나 현장 반응은 예상보다 뜨겁지 않다. 조례 대다수가 학령기 청소년과 교육 분야에 한정된 탓에 지원 폭이 좁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례 특성상 강제성이 없어 전시행정으로 전락한 사례도 있다. 전문가는 느린 학습자 지원법을 제정해 조례가 해결하지 못하는 빈틈을 메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초·중등교육법 조례, 성인은 배제…교육 이외 지원은 허술

현행 지자체 조례는 평생교육법 또는 초·중등교육법 등 상위 법령에 근거해 제정된다. 초·중등교육법에 근거한 지자체 조례는 대개 지원 대상을 학령기 청소년인 만 19세 미만으로 한정한다. 또한 기초학력 부진 청소년을 위한 교육 위주로 지원책이 마련되는 사례가 많다. 사실상 성년 느린 학습자는 지원 대상에서 배제된다.

껍데기로 전락한 조례…"생애주기 지원 모색해야"[경계선 속 외딴섬]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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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지자체들은 근거 법령을 평생교육법으로 바꾸며 조례 개정에 나서고 있다. 평생교육법에 근거할 경우 지원 범위가 전 연령대로 확대되는 장점이 있다. 서울 서초구의 경우 지난해 11월 초·중등교육법에서 평생교육법으로 근거 법령을 바꿔 조례를 개정했다.


그러나 조례 개정에도 정책 만족도는 저조한 실정이다. 평생교육법 특성상 전 연령대에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데 목표를 두다 보니 지자체 지원도 놀이 등 체험 위주 프로그램에 쏠리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느린 학습자 지원 정책 수립을 위한 기초연구를 맡아온 이재경 한신대 민주사회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평생교육법은 전 연령대에 걸쳐 교육을 지원하는 데 방점을 둔다"며 "범죄 예방과 자립 등 교육 이외 측면의 문제는 지원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제성 없는 조례로 실태조사 미흡…조례 개정 시 지원책도 바뀌어

조례의 경우 강제성이 없는 탓에 지자체가 조항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사례도 수두룩하다. 예컨대 서울 시내 각 자치구 조례에는 '느린 학습자 지원 대책 수립을 위해 실태조사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으나 실제로 연구용역을 맡겨 조사에 착수한 사례는 희박했다.

껍데기로 전락한 조례…"생애주기 지원 모색해야"[경계선 속 외딴섬]

아시아경제가 서울시 자치구 9곳의 관할 구청(▲강서구 ▲양천구 ▲금천구 ▲동대문구 ▲서초구 ▲용산구 ▲중랑구 ▲송파구 ▲관악구)에 확인해 본 결과 이 중 실태조사를 위해 연구용역에 착수한 곳은 서초구가 유일했다. 금천구의 경우 지난해 선착순으로 지원자를 받는 형식으로 느린 학습자 선별검사를 지원했다. 송파구와 관악구는 느린 학습자 조례가 제정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조례 개정 과정에서 기존 사업이 종료되는 사례도 있다. 경기도 고양시는 2021년 청년기본법에 근거해 전국 지자체 최초로 청년 느린 학습자 대상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해당 조례는 이들이 사회생활과 여가를 즐길 수 있도록 맞춤형 교육과 고용 정책을 수립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2022년 고양시는 청년 희망 뉴딜 프로젝트 공모사업을 통해 청년 느린 학습자 단체를 지원했다.


그러나 고양시가 지난해 2월 근거 법령을 평생교육법으로 바꿔 조례를 개정하면서 해당 사업은 현재 종료됐다. 현재 고양시는 평생교육 지원사업 형태로 비영리 민간단체와 사회적협동조합 두 곳에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고양시 관계자는 청년 느린 학습자 지원 사업과 관련해 "기존 조례가 폐지되면서 현재로서는 경계선 지능인 평생교육 지원사업만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상위법 제정…생애주기·종합 지원 고민 담겨야

전문가는 강제성이 없는 조례의 태생적 한계를 지적하며 상위 법령 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자체 조례가 '해야 한다'가 아닌 '할 수 있다'로 끝을 맺어 강행 규정이 없다 보니 조례를 만들어놓고 방치하는 사례가 수두룩해서다.

껍데기로 전락한 조례…"생애주기 지원 모색해야"[경계선 속 외딴섬] 이재경 한신대 민주사회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 지난 5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느린 학습자 지원 정책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사진=이지은 기자]

이 연구위원은 "각 지자체가 조례만 만들어놓고 예산을 형식적으로 배치하는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며 "지자체장이 바뀌면 조례가 바뀌거나 사문화되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또 현행 조례 대다수가 교육 중심의 지원에 한정된 만큼, 상위 법령은 보다 포괄적인 종합 지원책이 담겨야 한다고 진단했다. 예컨대 발달장애인 지원 법률의 경우 이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 방지를 위해 국가와 지자체가 대책을 마련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또 사회에 녹아들 수 있도록 고용과 직업훈련에 대한 지원 규정도 명시돼있다.


이 연구위원은 "평생교육에 근거한 조례로 전 연령대 느린 학습자에게 교육에 대한 지원은 제공할 수 있다"며 "다만 범죄 노출과 가족 내 불화 문제 등 이들이 살아가며 겪는 다양한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해결은 불가능하다고"고 지적했다.


나이대에 맞는 맞춤형 지원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도 담겨야 한다. 느린 학습자들은 영·유아시기에는 진단, 청소년은 진로 및 사회성 교육, 성인기에는 자립 등 연령대별로 필요로 하는 지원책이 다르다.



이 연구위원은 "유아기 진단과 발굴을 시작으로 이들이 성인이 될 때 지역 사회에서 관계망을 형성할 수 있도록 생애주기 맞춤 지원을 고려해야 한다"며 "적합한 지원이 뒷받침되면 이들도 사회에서 제 몫을 하는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편집자주'느린 학습자'라는 외딴 섬에 사는 이들이 있다. 전문가 추산에 따르면 지능지수 정규분포상 국민 10명 중 1명(13.6%)은 이 외딴섬에 산다. 이들이 어른이 되는 과정은 험난하다. 영·유아기 첫 진단을 시작으로 진로를 찾고 자립을 하는 모든 과정이 각자도생이다. 부모는 이들이 사회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월 수백만 원의 치료비를 감당하고 친구 관계와 직업까지 손수 찾아 나선다. 최근 들어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지원 조례를 내놓고 있지만, 허울에 그치거나 청소년기 지원에 한정된다는 문제가 있다. 아시아경제는 유아기·청년기 느린 학습자 자녀를 둔 6명의 학부모를 만나 이들이 마주한 문제점을 살펴보고 해법을 모색한다




이지은 기자 jelee0429@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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