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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면접보고 창업까지…느린 학습자 자립 도전기[경계선 속 외딴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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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고교 졸업 이후 취업난 직면
지자체, 일자리 지원책 허술
사회성 교육·놀이 체험에 집중돼
학부모, 조합 결성해 창업 선택

#서울 송파구에 거주 중인 구서영씨(56·가명)는 오전 8시면 아들 김우영씨(23·가명)와 함께 무인 카페로 출근한다. 두 사람은 이곳에서 바닥을 쓸고 테이블을 닦으며 카페를 청소한다. 일자리는 구씨 혼자 면접을 보고 구했다. 시급은 구씨 1명에게만 지급된다. 아들 김씨는 사실상 무급 근로를 하는 셈이다.


그래도 구씨는 행복하다. 아들에게 노동의 기쁨을 알려줄 수 있어서다. 초반에는 구씨도 아들과 함께 아르바이트 면접을 봤다. 사정이 딱하다며 출근을 하라던 점주들은 며칠 뒤 “어머니 혼자만 나와 달라”며 아들을 해고했다. 구씨는 외출을 거부하며 집안에 숨어드는 아들을 위해 직접 일자리를 구하기로 다짐했다.


학령기를 마친 느린 학습자는 성인 문턱에서 자립이라는 마지막 과제에 직면한다. 취업 시장에서는 눈치가 없고 섬세하지 않다며 이들을 반기지 않는다. 이들은 몇 달간 짧은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다 결국 구직 단념 청년으로 전락한다.


부모가 면접보고 창업까지…느린 학습자 자립 도전기[경계선 속 외딴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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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된 취업 실패…지원책 찾아 구청 떠도는 부모들

소속감 없는 일상과 사회의 지속된 거부는 이들을 무력감에 빠지게 한다. 서울 노원구에 거주하는 느린 학습자 이형욱씨(27·가명)는 하루 대부분을 지하철에서 보낸다. 2호선을 타고 서울 중심부를 한 바퀴 돌며 사람 구경을 하는 게 유일한 낙이다.


한때 이씨도 구직에 전념하던 시기가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직후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고자 편의점 수십곳을 찾아갔다. 어머니가 대신 써준 자기소개서를 들고 공공일자리 사업에도 여러 차례 지원했다. 그러나 어눌한 말투와 느린 대화 속도 탓에 면접의 고비를 넘지 못했다. 보다 못한 어머니들은 자녀 대신 구청을 돌며 취업 지원정책을 수소문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들을 대상으로 취업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지방자치단체는 손에 꼽는다. 서울 시내 25개 자치구 가운데 20개 자치구가 느린 학습자 지원 조례를 제정했지만, 대부분 평생교육 지원 사업 공모 형태로 사회복지관에 예산을 전달하는 방식에 그치고 있다. 구청 자체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도 학령기 청소년과 성인 느린 학습자의 정서 함양 또는 놀이 체험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부모가 면접보고 창업까지…느린 학습자 자립 도전기[경계선 속 외딴섬]
부모가 출자한 카페에 취업…고립 생활 끝내고 희망 생겨

구청을 떠돌며 지원 정책을 찾던 부모들은 결국 스스로 자녀의 일자리를 찾아 나선다. 성인 느린 학습자 일터인 서울 동대문구 소재의 ‘휘카페’는 이들의 자립을 바라는 부모들의 염원이 모여 탄생했다. 이곳은 느린 학습자 부모들이 결성한 ‘청년숲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협동조합은 동대문종합사회복지관과 협력을 통해 창업 아이디어를 냈다. 기획안이 서울시립대 캠퍼스타운 사업에 선정되면서 지원을 받게 됐다. 학부모들이 십시일반 모은 조합 출자금은 카페의 자본금으로 쓰였다. 지난해 9월에는 2호점을 오픈해 직원이 총 6명으로 늘었다.


휘카페는 길을 잃고 방황하던 성인 느린 학습자에게 길잡이가 돼줬다. 이곳에서 2년째 근무 중인 박우연씨(28·가명)는 취업 이후 처음으로 목표가 생겼다. 나만의 카페를 차리겠다는 꿈이다. 취업하면서 은둔형 외톨이 삶도 종지부를 찍었다. 박씨는 지난 2년간 가족들이 떠난 빈집을 지키며 홀로 집안일을 하는 데 하루를 보냈다.


잃어버렸던 자신감을 되찾는 이들도 있다. 휘카페에서 1년 6개월을 근무한 김정우씨(33·가명)는 제과제빵과 고객 응대에 대한 트라우마를 씻어냈다. 과거 근무했던 호텔 베이커리는 김씨가 섬세한 아이싱 작업을 하지 못한다며 3개월 만에 해고 통보했다. 이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지만, 점주는 손님 응대가 서툴다며 김씨를 재차 나무랐다. 휘카페는 달랐다. 복잡한 주문이 밀려들면 권오진 휘카페 대표가 수화기 너머로 해결 방법을 천천히 알려줬다. 순서대로 지시 내용을 따라서 하니 어렵던 주문도 척척 해결됐다.


부모가 면접보고 창업까지…느린 학습자 자립 도전기[경계선 속 외딴섬] 지난 4일 청년숲 협동조합에서 출자한 서울 전농동 휘카페에서 일하는 느린 학습자 청년들이 커피 음료를 만들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권 대표는 이들의 변화가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하기도 하다. 모든 느린 학습자들에게 이 같은 기회가 주어지기 어렵다는 것을 알아서다. 그는 “월급을 주지 않아도 되니 일하게만 해달라는 부모도 있었다. 그 정도로 일하고 싶어하는 느린 학습자가 많다”면서도 “현재 적자임에도 버티면서 영업을 하고 있지만, 공모 사업 성격상 지원이 지속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권 대표는 학부모들의 자력 구제가 아닌 정부와 기업 차원의 지원을 호소했다. 권 대표의 “일자리는 이들에게 사회성과 자립이라는 경제적 이득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며 “이들에게 적합한 일자리를 준다면 사회 가치 창출에 제 몫을 하는 재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편집자주'느린 학습자'라는 외딴 섬에 사는 이들이 있다. 전문가 추산에 따르면 지능지수 정규분포상 국민 10명 중 1명(13.6%)은 이 외딴섬에 산다. 이들이 어른이 되는 과정은 험난하다. 영·유아기 첫 진단을 시작으로 진로를 찾고 자립을 하는 모든 과정이 각자도생이다. 부모는 이들이 사회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월 수백만 원의 치료비를 감당하고 친구 관계와 직업까지 손수 찾아 나선다. 최근 들어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지원 조례를 내놓고 있지만, 허울에 그치거나 청소년기 지원에 한정된다는 문제가 있다. 아시아경제는 유아기·청년기 느린 학습자 자녀를 둔 6명의 학부모를 만나 이들이 마주한 문제점을 살펴보고 해법을 모색한다.



이지은 기자 jelee0429@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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