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30원으로 결정…1.7% 인상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시간당 1만30원으로 결정했다. 올해 9860원보다 170원 오른 금액으로, 인상률은 1.7%다. 최저임금이 역사상 처음으로 1만원을 넘어섰지만 인상폭은 2021년(1.5%)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작았다. 올해도 노사 합의 없이 공익위원이 마련한 표준안 내에서 노사 최종안을 표결하는 방식으로 최저임금이 결정됐다. 극심한 노사 갈등과 심의 파행, 물리적 충돌 등이 올해도 어김없이 되풀이된 가운데 이를 계기로 최저임금 결정체계의 큰 틀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의기간 53일…12시간 밤샘 끝 표결 '막전막후'
최임위는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제11차 전원회의를 열고 내년도 최저임금을 이같이 의결했다. 최임위는 전날부터 이어진 밤샘회의 끝에 이날 오전 2시께 노동계와 경영계가 각각 제시한 최종안인 1만120원과 1만30원을 표결에 부쳤다. 경영계 안이 14표, 노동계 안이 9표를 받아 경영계 안인 1만30원으로 의결됐다. 월급 기준으로는 209만6270원(주 40시간·월 209시간 근무 기준)이다.
최임위는 노동계를 대표하는 근로자위원과 경영계를 대표하는 사용자위원, 그리고 정부 측 공익위원 각 9명씩 27명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투표 직전 민주노총 측 근로자위원 4명이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심의촉진 구간에 대한 반발로 투표에 불참하면서 23명만 참여했다. 공익위원 9명 중 4명은 노동계 안에, 5명은 경영계 안에 표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올해도 공익위원의 표가 승패를 가른 셈이다.
전날 오후 3시 회의가 시작됐을 때만 해도 이번주 최저임금안이 최종 결정될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해마다 노사가 팽팽한 신경전을 벌인 업종별 차등 적용을 비롯해 도급제 최저임금 도입까지 논의가 길어지면서 본게임인 최저임금 액수 논의가 마감일을 일주일 앞둔 지난 9일에서야 시작됐기 때문이다. 다음달 5일인 법정 고시일을 고려하면 내주 한두 차례 회의를 더 열 시간이 있어 내주 말께나 최종 결정이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그러나 회의가 개시된 후 4차례의 수정안 제시가 이뤄졌고, 이인재 취임위원장은 노사에 최종안을 요구했다. 지난 3월31일 고용노동부 장관의 심의 요청 이후 103일, 1차 전원회의가 열린 5월21일 이후 53일 만이다.
올해도 '성장률+물가상승률-취업자 증가율' 산식 활용
최종안 결정은 공익위원이 제시한 '심의촉진 구간'이 토대가 됐다. 노동계는 지난 9일 본격화된 최저임금 심의에서 최초 요구안으로 올해보다 27.8% 인상한 시급 1만2600원을 제시했고, 경영계는 동결(9620원)을 요구하는 큰 격차를 보였다. 거듭된 회의에도 4차 수정안의 격차가 900원에 달하자 결국 노사 위원들은 공익위원에 심의촉진 구간 설정을 요청했다. 심의촉진 구간은 공익위원이 최저임금의 상·하한선을 정해주고 노사가 합의에 이르도록 하는 방식이다
공익위원은 심의촉진 구간으로 1만~1만290원(인상률 1.4~4.4%)을 제시했다. 심의촉진 구간 하한선인 1만원은 올해 최저임금 9860원 대비 1.4% 오른 것으로, 근로자 중위임금 60% 수준과 지난해 심의 당시 노동계의 최종 제시안을 근거로 한 것이다. 상한선인 1만290원은 올해 대비 4.4% 인상안으로, 올해 경제성장률(2.6%)과 소비자물가 상승률(2.6%)을 더하고 취업자 증가율(0.8%)을 뺀 수치다.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주요 기관들이 전망한 지표의 평균치를 대입했다.
노사정 '협의 없는 협의체' 오명…제도 개편 시급
최저임금이 산고 끝에 결정됐지만, 이 과정에서 노사 간 초유의 충돌 사태가 벌어지는 등 수많은 기록을 남기면서 제도 개편 논의가 불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일 열린 회의에서는 경영계가 요구한 업종별 차등 적용 여부 표결 과정에서 투표 자체를 저지하려던 일부 노동계 측 위원들이 의사봉을 빼앗고 투표용지를 찢는 일이 발생했다.
업종별 차등적용 여부를 최임위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2016년 이후 노사가 표결 과정에서 충돌해 물리력 행사 사태까지 벌어진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최임위는 노·사·공 3자 협의체지만 실제로 최저임금 결정이 3자 합의로 이뤄진 것은 1988년 제도 도입 이후 단 7차례에 그쳤다. 가장 최근 사례는 글로벌 금융위기 영향이 이어지던 2008년과 2009년이 마지막이었다. 2010년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를 계기로 최저임금제의 큰 틀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최저임금제는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노사가 최저임금 액수, 업종별 차등 적용 방안 등 주요 쟁점을 매년 2개월 안팎의 단시간에 정한다. 이 때문에 노사는 각자 이해관계에 따라 첨예한 대립과 소모적 갈등을 반복하다가 정부 의중이 담긴 공익위원들이 시간에 쫓겨 졸속 표결로 결정하는 일이 매년 반복돼 왔다.
이 과정에서 이렇다 할 영향 분석이나 객관화된 산식이 없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최근 2개년(2021~2022년) 동안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을 더한 뒤 취업자증가율을 뺀 산출식으로 인상률을 제시했다. 올해는 이 산출식을 심의촉진 구간 설정에 활용했다.
전문가들은 최저임금 결정 산식을 객관화, 고도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저임금법(4조)에는 '최저임금은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과 소득 분배율 등을 고려해 정한다'라고만 돼 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사용하는 노동생산성과 소비자물가 지표뿐만 아니라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 투자 등 거시경제 변수들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메커니즘을 반영한 산식을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위원회 내부에서도 개편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 위원장은 이날 최저임금 결정 후 "지금의 결정 시스템으로는 합리적·생산적인 논의가 진전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고용노동부를 중심으로 제도 개편에 대해 심층 논의와 후속조치가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저임금법에 따라 최임위는 이날 의결한 내년도 최저임금안을 고용부에 제출하게 된다. 고용부는 다음달 5일까지 내년도 최저임금을 확정·고시하며, 효력은 내년 1월1일부터 발생한다. 고시를 앞두고 노사 양측은 이의제기를 할 수 있고 고용부는 이의가 합당하다고 인정되면 최임위에 재심의를 요청할 수 있다. 다만 지금까지 한 번도 재심의가 이뤄진 적은 없다.
세종=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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