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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연구개발 예산 증액보다 과기인 ‘치유’가 더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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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계 카르텔 '멍에' 씌워
연구현장 양극화 다극성 실종
과학자 명예회복 적극적 노력을

[논단]연구개발 예산 증액보다 과기인 ‘치유’가 더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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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도 주요 연구개발(R&D) 예산이 올해보다 13.2% 증가한 24조8000억원 규모로 늘어난다. 기획재정부가 오는 8월 말에 확정하는 일반 R&D 예산까지 포함하면 국가 연구개발 예산이 30조원에 육박할 수도 있다고 한다. 내년도 예산 증가율이 4% 선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국가 연구개발 예산의 증액은 단순한 복원·회복이 아니라 환골탈태 수준이라는 것이 대통령실의 입장이다. 국가 연구개발 예산을 ‘역대급’으로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고 한다.


정부의 재정 형편이 매우 어렵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그런데도 국가 연구개발 예산을 역대급으로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는 가상한 것이다. 국제 사회의 치열한 패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라도 알아차린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과학기술 현장의 분위기는 냉랭하다. 내년의 주요 R&D 예산이 올해보다 많이 늘어나기는 하지만 2023년도의 24조7000억원을 가까스로 넘어서는 수준일 뿐이라는 지적은 의미가 없다. 정부의 예산 편성은 대표적인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이다. 연구개발 예산을 증액하려면 다른 예산을 깎아야만 한다. 연구개발 사업이 중요하다는 이유만으로는 무작정 예산을 증액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문제는 예산의 ‘규모’가 아니라 ‘내용’이다. 대통령실이 자랑스럽게 내놓은 내년도 예산안에서는 지난 1년 동안 우리 과학기술계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카르텔’과 ‘악마’의 멍에를 벗겨주겠다는 ‘의지’를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떼도둑’과 ‘의새’로 전락해 버린 과학자와 의사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가시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이 전제되지 않는 예산 증액은 의미가 없다. 자연대·공대 학생들이 의대로 몰려가고, 의대생과 젊은 수련의가 병원을 떠나버리는 현실은 매우 심각한 것이다. 정부가 단순히 예산만 투입한다고 바로잡을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다.


지난해 과기정통부의 갑작스러운 예산 삭감은 합리적·이성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비효율을 걷어내고, 제도를 혁신했다"는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의 주장은 공허한 것이었다. 사실은 목표와 원칙도 없었고, 투명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과기정통부의 임기응변·중구난방식 예산 삭감으로 상황은 더욱 심각하게 악화해 버렸다. 결과적으로 연구 현장의 양극화가 더욱 심각해졌고 다양성은 실종되어 버렸다. 정부의 적극적인 치유 노력이 필요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요란한 ‘윤석열표’ 연구개발 사업도 볼썽사납다. 서울대와 수도권 대학에 ‘반도체’ 계약학과를 우후죽순으로 만들어놓은 것도 모자라 올해부터 투자를 시작한 AI-반도체·첨단바이오·양자 등 소위 ‘게임 체인저’ 분야에 무려 3조4000억원이 투입된다. 올해부터 대폭 증액된 ‘글로벌 R&D’에도 2조1000억원이 투입된다. 지난 3월 의결한 혁신·도전형 R&D도 1조원 규모로 시작한다. 새로 설립한 우주항공청의 ‘우주경제’도 어설프다.


‘역대 최대 규모’의 예산을 만들기 위한 꼼수도 눈에 거슬린다. 지난달 27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회에서 심의·의결한 예산안은 24조5000억원뿐이다. 정부 예산안이 확정되는 8월 말까지 3000억원을 더 추가하겠다는 발표는 명백한 꼼수다. 꼭 추가적인 예비타당성 조사 심의 결과와 기재부의 다부처 협업예산 확정을 기다릴 필요가 있었을까.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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