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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에 무너진 부모들…"살아있다는 게 감사하죠"[청년고립2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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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그 이후>
은둔 청년의 엄마로 산다는 건
주상희 한국은둔형외톨이부모협회 대표

편집자주퇴근 후 혼자 끼니를 때울 때, 휴대폰에 저장된 연락처는 수백개지만 힘든 일이 있어도 마음을 털어놓을 상대가 없을 때, 아프거나 돈이 없는데 도움을 요청할 수 없을 때... 아시아경제가 만난 20·30대 청년들은 이럴 때 고립감을 느꼈다고 털어놨습니다. 혹시 당신의 이야기는 아닌가요? '히키코모리', '은둔형 외톨이'와 같은 단어가 나와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왔다면 이제는 고립·은둔을 다시 제대로 바라볼 때입니다.
아들한테 "어버이날인데 뭐 없니" 물으니 "몰라" 하고 말더라구요. 사실, 카네이션도 필요 없어요. 살아있는 것에 감사할뿐입니다."

대학 중퇴 후 14년째 은둔 생활 중인 아들을 품고 있는 주상희(62)씨는 이달 4일부터 보도된 아시아경제의 [청년고립 24시] 기획을 읽고 고립·은둔 청년의 부모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며 먼저 연락을 취해왔다. 한때 잃을뻔한 은둔 청년 아들을 지키는 엄마이자 한국은둔형외톨이부모협회(부모협회) 대표로 활동하면서 은둔형 외톨이를 보호하고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을 알리는데 노력을 쏟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죄책감에 무너진 부모들…"살아있다는 게 감사하죠"[청년고립24시] 주상희 한국은둔형외톨이 부모협회 대표가 서울 서대문구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며 본인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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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대표는 지난 9일 본지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은둔 청년의 부모가 가진 '죄책감'에 대해 먼저 입을 뗐다. 그는 자신을 '나쁜 엄마', '일에 미친 엄마', '회사 인간' 등으로 표현했다. 아들의 은둔 원인 중 하나가 부모와의 애착 관계 형성 부족이라고 본 것이다.


"매일 아침 7시,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애를 깨워서 '밥 차려놨다" 해놓고 출근했어요. 졸업할 때까지 아들 입학식·졸업식을 한 번도 못 갔을 정도로, 그렇게 일에 미친 엄마였어요. 아이 입장에서 엄마의 부재가 얼마나 심했겠어요."


오재호 경기연구원 자치행정연구실 연구위원은 지난 2월 보고서에서 맞벌이 부모 증가와 이로 인해 취약해진 돌봄 여건이 은둔 청년 증가의 원인이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아이들이 혼자인 시간이 많아졌고 여기에 컴퓨터 보급·배달 문화 발달 등이 은둔 최적화 여건을 형성했다고 진단했다.


주 대표는 은둔 청년이 된 아들을 돌보는 과정에서 2016년 K2인터내셔널 등 국내·외 은둔형 외톨이 지원단체들과 협력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2019년 직업이었던 여행 가이드를 그만두고 2020년 1월 부모협회를 설립했다. 지금은 은둔형 외톨이 부모들 간의 연대를 주도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부모 입장에서 자녀의 은둔 사실을 인정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주 대표 역시 아들이 은둔형 외톨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 몇 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고 털어놨다. 그는 "대한민국 상위 몇 퍼센트 안에 든다고 자부심 갖고 살았는데, 아들이 은둔하기 시작하면서 인생이 꼬였다는 생각과 함께 현실을 인정하기 힘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부모협회에 모인 다른 은둔 청년 부모들 역시 교사, 공무원 등 사회적인 지위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부모 입장에선 나름대로 잘 교육했다고 생각하니까 아이가 은둔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힘들다"고 설명했다.


죄책감에 무너진 부모들…"살아있다는 게 감사하죠"[청년고립24시] 주상희 한국은둔형외톨이 부모협회 대표가 서울 서대문구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며 본인의 경험을 담은 저서 '나는 은둔형 외톨이 엄마입니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은둔 청년 부모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사회적 낙인'이라고 했다. 부모협회에는 약 900명의 회원들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활동하고 있지만, 오프라인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부모는 50명 남짓에 불과하다. 주 대표는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부모들은 실명이나 얼굴이 노출되는 일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며 큰 고민을 떠안고 있는 부모들 역시 고립·은둔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 사회는 자녀가 방안에 자신을 가두면, 부모 역시 양육 실패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거나 고립감이 전염돼 함께 침몰하기 쉬운 환경을 가졌다. 자녀의 대학 진학·취업 등 성취가 부모의 성취로 해석되는 사회 특성을 반영한다. 자녀의 은둔이 길어질수록 부모 역시 그 영향을 크게 받는다. 이는 주 대표와 부모협회 회원들이 심리학을 공부하고, 꾸준히 독서·자조 모임을 여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 대표는 "시중에 나온 심리학 서적은 안 읽어본 게 없을 정도"라며 "부모협회 회원 중 2명은 심리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고 말했다.

“아들이 20대 중반일 때는 곧 낫겠지 하는 희망이 있었어요. 그런데 서른살이 넘으니까 '이대로 아이가 사회생활을 못 하면 어떡하지' '세상 밖으로 못 나가면 내가 평생 얘를 짊어져야 하는데'라는 생각에 너무 불안하더라고요. 거기에서 또 좌절이 와요. 부모들 마음은 정말 말도 못 해요. 너무 힘들죠.”

“은둔형 외톨이 자녀들을 둔 부모들의 가장 기본적인 정서가 죄책감이에요. 자녀를 기르는 데 실패했다고 생각하니까. 제가 부모들이랑 독서 모임 하는 이유도 우리끼리 소통하면서 죄책감을 없애자는 의미거든요. 대부분의 가정에서 자녀가 은둔하면 엄마도 무너져요. 부모들도 단단해져야 해요. 엄마들도 회복 탄력성이 있어야 해요. 어떤 엄마들은 현실 파악을 하고 병이 오거든요. 우울증이 와서 2~3년 제 연락을 거부한 엄마도 있어요.”
죄책감에 무너진 부모들…"살아있다는 게 감사하죠"[청년고립24시] 한국은둔형외톨이협회는 매월 은둔형 외톨이 자녀를 둔 부모들의 자조모임을 열고 있다. [이미지제공=한국은둔형외톨이부모협회]

정부는 올해 고립·은둔 청년 사업의 첫 삽을 떴다. 지난해 최초로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를 시행했다. 아들의 은둔을 계기로 9년째 은둔형 외톨이 문제에 목소리를 내온 주 대표는 정부가 고립·은둔 청년 지원에 나서며 사회 분위기가 바뀐 것이 누구보다 반갑다고 했다. 주 대표는 은둔형 외톨이 지원사업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아웃리치'(outreach·적극적인 발굴 및 지원)를 강조했다. 그는 "진짜 은둔형 외톨이들은 방에서 나오지 않으니까 방문 여는 데에만 최소 1년 이상 걸린다"며 "사회 복귀까지도 최소 4~5년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들을 조기에 적극적으로 찾아내 도와주는 게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사회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입니다. 예전엔 우리나라 실정에 안 맞는 일본식 처방이 내려지거나, 심리학의 기본도 모르는 비전문가들의 지침들이 많았죠. 이젠 정부가 나선다고 하니까 반갑죠.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부모들 마음은 더 급해요. 정부의 지원 사업이 장기적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비영리단체는 수익이 없으니까 장기적으로 이어지기 힘들어요. 국가의 지원이 꼭 필요합니다.”

주 대표는 은둔 자녀를 둔 부모들이 사회가 정해둔 틀에 아이를 끼워 맞출 필요 없다고 조언했다. 주 대표는 "보통 부모나 선생님들은 학교 졸업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러지 마시라고 한다"며 "검정고시도 있고 대안학교도 있고 방법은 많으니까 아이가 스트레스받지 않는 쪽으로 하시면 된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사회 분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 대표의 아들은 현재 9개월째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회 복귀를 연습하고 있다. 남들에겐 평범할 수 있지만 집 밖을 나서는데 두려움이 있는 은둔 청년에게는 큰 마음을 먹어야 하는 일이다. 처음엔 일주일, 그다음엔 한 달, 또 석 달 만에 잘리기를 반복했다. 그런 아들에게 용기를 준 것은 사장의 격려였다. 주 대표는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 있던 한 편의점 사장님이 '네 덕분에 내가 다리 뻗고 잔다'고 아들한테 말해준 거예요. 아이가 그 말에 용기를 얻었다"며 "아들은 이번에 근무 기간 1년을 꼭 채우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 대표는 무엇보다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쇄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너무 많다"며 "언론에서 긍정적인 이미지를 많이 다뤄주면 좋겠다. 많이 알려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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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asiae.co.kr/list/project/2024050314290051322A


죄책감에 무너진 부모들…"살아있다는 게 감사하죠"[청년고립24시]

'청년고립24시' 기사가 읽고 싶다면
<1>아시아경제가 만난 고립·은둔 청년들
① 나는 28세 고립청년입니다…"1인분 역할 못하는 존재"
② 취업이 만든 고립…온종일 한마디 안한채 보낸 하루
③ 육아보다 힘든 게 '대화할 상대'가 없다는 것…그렇게 우울증이 왔다
④ 3년간 햇반·라면 먹고 온종일 게임만…정서적 불안 심해지면 결국엔

<2>2024 고립 인식조사
① 10명 중 6명 "외롭다"…관계단절·박탈감 고통 호소
② "회사서 홀로 선 느낌"…직장인 2명 중 1명 "고립감 심해져"

<3>곁에서 바라본 고립·은둔 청년들
① 코로나 학번'이 위험하다...올해 빗발친 상담전화
② 고립의 끝에 남겨진 흔적들…"엄마·아빠 보고 싶다, 미안하다"

<4>고립의 이유와 사회적 비용
① 취업 안돼 친구도 없어…손에 쥔 건 스마트폰뿐
② 경제 손실만 11조원 이상…방치하면 국가도 '흔들'

<5>한국 정책 3無의 한계
① 컨트롤타워 없고 지자체 조례만 213개 '중구난방'
② 54만 고립·은둔 청년을 32명으로 해결?…예산·인력·연구 태부족
③ 일본 따라하기의 씁쓸한 결말…한국형 정책 호소하는 청년들

<보도, 그 이후> 죄책감에 무너진 부모들…"살아있다는 게 감사하죠"



박현주 기자 phj032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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