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유럽연합 넷제로 화두라지만
미국 화석연료 업체는 승승장구
유럽 업체는 각종 규제에 골머리
현실화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
정부·정치권 우회 비판이란 관측도
토털에너지스와 셸 등 유럽 ‘석유 공룡’들이 미국 증시로의 상장 기회를 엿보고 있다. 미국, 유럽연합(EU) 등 선진국 위주로 ‘넷제로(탄소중립)’가 화두인 가운데 여전히 유럽에 비해 미국 화석연료 업체가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유럽 화석연료 업체가 유럽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만큼 현실화할 경우 유럽 내 충격은 불가피할 전망이지만 실현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유럽의 주요 화석연료 업체인 토털에너지스(프랑스), 셸(영국)의 최고경영자(CEO) 발언을 인용해 이들 기업이 유럽 증시에서 미국 증시로 상장 전환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토털에너지스는 구체적인 실행 계획까지 세웠지만 셸은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언급에 그쳤다는 점에서 두 기업 간 온도 차는 있다.
토털에너지스의 패트릭 푸야네 최고경영자(CEO)는 NYT에 “(미국 증시 상장 전환)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이사회 논의 후 애널리스트들과 관련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셸의 와엘 사완 CEO는 미국 증시 상장을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으면서도 “현재로선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고 했다.
미국과 EU 행정부가 탄소중립을 적극적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미국 화석연료 업계가 잘 나가고 있다는 게 유럽 석유 공룡들의 미국 증시 상장을 이끄는 요인으로 꼽힌다. 미국은 지난해 주요 원유 생산국인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보다 많은 하루 1300만배럴을 웃도는 원유를 생산하며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으로 거듭났다. 또 지난해 말부터 엑손모빌, 셰브론 등 미국 화석연료 업체 간 합종연횡이 활발히 펼쳐지고 있다.
반면 유럽에서는 친환경 정책과 횡재세 도입으로 석유 생산량이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탄소 배출량을 줄여라”라는 행동주의 펀드의 목소리도 큰 편이다. 유럽 화석연료 업체에 투자하는 미국 투자자가 늘고 있는 가운데 유럽 시장과의 시차, 환율 변동 등도 유럽 화석연료 업체에는 약점이다.
투자은행(IB) 제프리스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미국 엑손모빌, 셰브론의 주가수익비율(PER)이 유럽 경쟁 업체 대비 3분의 1 이상 더 높은 것으로 분석했다.
다만 유럽 석유 공룡들의 미국 증시 상장 현실화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럽 본사를 미국으로 옮겨야 해서다. 정부·정치권 반발이 클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민심도 잃을 우려가 있다. 토털에너지스의 미국 증시 상장 계획이 알려지자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재무부 장관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토털에너지스의 움직임에 맞서 싸울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유럽 화석연료 업체가 정부·정치권에 비판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낸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변선진 기자 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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